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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된 포르셰도 뚝딱, 장가이버 "난 생명을 지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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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993년부터 자동차 정비업을 하고 있는 장인수 대표는 정확한 진단과 재빠른 공정, 합리적인 수리비용 등으로 매니어층을 만들었다. 그는 “해외에서 부품을 직접 구매해 수리 비용을 낮췄다”고 소개했다. [오종택 기자]

서울 도심에서 천호대로를 따라 20㎞ 남짓. 자동차 경정비 센터인 ‘장가이버’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없이는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자동차 정비소라면 으레 교통 편리하고 눈에 띄기 쉬운 큰길가에 위치해 있는 것이 ‘상식’인데 장가이버는 길가에서 300m쯤 떨어진 강동구 상일동 물류창고 단지에 자리 잡고 있다. 간판도 작아서 수리를 위해 주차 중이던 자동차 10여 대가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하지만 장인수(53) 장가이버 대표는 “2011년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미사지구(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서 3년간 영업했는데 거기는 논바닥 한가운데였다”며 “그래도 ‘어떻게 (손님이) 여기까지 찾아오겠나’라는 걱정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논바닥에 카센터를 세운 사연을 먼저 들려준다. “원래는 창고로 만들어놓은 건물이었어요. 직접 가보니 층고가 높길래 카센터로 적당하겠다 싶어서 계약을 하러 갔는데 건물주가 ‘금세 문을 닫을 것’이라며 거절하더군요. 그래서 ‘망해도 내가 망한다. 관리비 못 내면 그때 쫓아내라’고 설득해서 입주한 겁니다.”

 장가이버 카센터엔 다음날부터 손님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장 대표의 주특기는 수입차 정비, 그것도 10년 이상 된 중고차를 수리하는 일이다.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도저히 못 고친다’고 포기한 3세대 골프도, 경남 거제도에서 견인차에 실려 온 폴크스바겐 제타도 장씨의 손을 거친 다음 다시 쌩쌩해졌다. 차량 내부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고 찾아온 아우디 A4, 우회전을 할 때 차체가 심하게 쏠리는 그랜저 등 사연도 다양하다. 1960년대 생산돼 국내에는 단 한 대밖에 없는 포르셰550 스파이더의 엔진을 교체한 진귀한 경험도 있다. “한 번은 인천에서 어느 손님이 ‘시속 120㎞만 넘으면 힘을 쓰지 못한다’며 87년식 볼보240을 정비 의뢰했어요. 서비스센터에서 연료 펌프와 호스 등을 교체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배전기를 열어 보니 코일 다섯 가닥 중 한 가닥이 끊겨 있더군요.”

장인수 대표가 엔진과 클러치를 신품으로 교환한 1960년대 생산된 포르셰550 스파이더. [오종택 기자]

 곧바로 중고 프린스에 장착돼 있던 배전기 코일을 떼다 볼보에 이식했다. 장 대표는 “차가 오래 되다 보니 고무코일 쪽에 이상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며 “프린스 배전기도 보쉬에서 만든 것이라 작동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을 통해 명성이 퍼지며 손님들이 전국에서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의 별명이자 현재 상호인 ‘장가이버’도 손님이 지어줬다. 워낙 정비 솜씨가 뛰어나 무엇이든 척척 수리하고 발명해 내던 외화 시리즈 맥가이버를 연상케 한다는 의미다. 2008년부터 단골인 오재용(40·서울 화곡동)씨는 “족집게같이 정확한 진단과 빠른 처방이 ‘자동차 명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한 번만 다녀가면 누구나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 대표는 정식으로 자동차 정비를 전공한 게 아니다. “광주광역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큰형님께 이끌려 전남 고흥으로 내려갔지요. 그때 형님이 자동차 운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와 브리사·포니 등을 뜯어내고 재조립하는 모습을 실컷 지켜봤지요. 이때 경험이 밑천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자전거 바퀴살을 조립했다는 장 대표는 93년 고흥군 도화면에 정착해 ‘장인수공업사’를 차렸다. 아내를 조수로 두고 자동차와 경운기·오토바이를 정비했다.

서울 상일동에 있는 ‘장가이버’ 정비소. 처음 가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오종택 기자]

 서울로 올라온 것은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큰딸을 도시에서 키우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2002년 보증금 2000만원을 주고 인천 심곡동에 카센터를 세내고, 서울 신월동에 5600만원짜리 연립주택을 얻었다. 서울살이를 막막해하던 그에게 ‘영업 메신저’가 돼준 것이 인터넷이다. 장 대표는 87년부터 고흥에서 PC통신 자동차 동호회에서 활동했다. 이것이 인터넷 커뮤니티로 진화해 있었는데, 마침 동호회 회원 한 명이 인천에 있는 그의 카센터를 찾았다가 실력을 확인하고 인터넷에 소문을 낸 것. “이즈음부터 ‘혹시나’ 하고 찾아오는 손님이 하나둘 생겼어요. 마침 디지털카메라가 유행이었는데 카센터 사진이 올라오면 며칠 뒤엔 손님이 서너 명으로 늘었지요. 나중에는 하남으로 이전하는 자금을 빌려줄 만큼 단골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포인트 한 가지. 장가이버 카센터, 절대 친절하지 않다. 원두커피 서비스? 손님이 대기하는 휴게실? 그런 거 없다. 장 대표는 “나는 차와 대화하는 사람이지 손님과 대화 나누는 사람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차에 집중하고, 차에 대한 얘기만 하면 된다는 거다. 수입차 매니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믿고 맡길 수 있는 데다 정비 비용이 저렴해서다. 김지현(63·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씨는 “여기서는 부품 이것저것을 바꿔야 한다고 겁을 주는 일이 없다”며 “(장 대표는) 진짜 고객만족이 무엇인지 아는 전문가”라고 평가했다. 장 대표는 “자칫 2차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세트 교체가 무조건 틀린 말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나는 충분히 설명을 한 다음 손님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사용할 수 있는 부품인데 ‘미리’ 교체하는 것도 추천하지 않는다. “나도 낭비, 손님도 낭비, 국가도 낭비여서”다.

 “주행거리가 7만여㎞인데 타이밍 벨트를 교체하겠다고 하는 손님이 가끔 있어요. 일단 ‘주로 운행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본 다음 시내 출퇴근용이면 10만㎞, 장거리 위주라면 15만㎞쯤 달린 다음에 다시 오라고 돌려보냅니다.”

 정비 비용이 저렴한 것은 해외에서 부품을 직구매하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A브랜드의 공기 압축기는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150만원이 넘지만 인터넷으로 사면 85만원”이라며 “직구매 덕분에 전체 비용은 정식 센터보다 20~40%가량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정비 요령은 뜻밖으로 간단하다. 기본을 철저히 지키면 된다는 것이다. ▶작업 중에는 잡담하지 않는다 ▶정비 매뉴얼을 절대 존중한다 ▶직접 눈과 손으로 확인한다 같은 기본 중의 기본 원칙들이다.

장 대표의 서울행을 결심하게 했던 큰딸은 현재 모 대학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자녀 교육도 성공하고 사업도 성공한 셈인데, 이왕 잘되는 사업을 더 키워보고 싶은 욕심은 없을까? 장 대표는 “사업 자금을 댈 테니 서비스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여러 번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유는 더 간단하다. “자동차 정비는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눈과 손·귀 등 ‘5감(感)’으로 하는 일인데 사업을 키우면 ‘입’이 더 바빠지잖아요. 그러면 서비스에 하자가 생기고 신뢰에 금이 가겠지요. 대신 누구든 전화로 자동차에 대해 물어오면 100% 최선을 다해 가르쳐줍니다. 제가 쌓은 30년 정비 노하우를 풀어주는 게 장가이버식 사업 확장입니다.”

글=이상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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