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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의 중턱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혀가차고 이빨이 혼들린다는 옛말이있다. 나의 동기동문이 몇 안되는 중 그래도 서울에 여섯이 있었다. 그런데 충무로에서 내과개업을 하던 김종섭박사가 3년전에, 서울대의대 흉부외과장을 하던 이찬범박사가 재작년에, 미아리에서 소앗과, 개업을 하던 김지혁박사가 지난봄에 각각 암으로 별세하였다. 그래서 졸문을 무릅쓰고 오직 정감으로 비문을 써서 비석을 세웠고 또 세우려고 하고 있다.
요사이 가끔 남은 셋이 어쩌다 만나면 못마시는 주량에 그나름으로 주선도에 입문하려고 별러보나 이것도 우리 마음대로는 그리 쉽사리 안된다.
일과후에는 못 치는 「테니스」를 쳐본답시고 젊은 동료들과 겨루어보나 쉰셋이라는 나이가 다시 생각해 보라고 무엇인가 타일러 주는 것 같다. 하는 수없이 법조계의 몇분이 하는 산우회, 우리욋과대학 노동교수님들이 하는 자운산수회의 「그룹」에 억지로 끼여들어서 등산 아닌 산행을 수 삼년래 강행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만시지탄을 못 면한다.
요 몇해 사이에 동문 선배님들의 수연잔치 통지가 갑자기 부쩍 늘어서 그런대로 심심치 않게는 지내고 있다. 또 어떤 분들은 교육공무원 정년법으로 퇴관, 환야하시는 분도 차츰 생겨나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무엇이라고 인사 말씀을 올려야 할지 정말 어이가 벙벙하다. 그래도 회갑잔치때가 훨씬 말씀을 올리는 쪽이나 받으시는 분이 즐겁기만한 법이다.
돌아오는 4월30일은 대선배님이시며 고려대학에 계신 아능 조용만박사의 수연날이다. 이 분은 특히 나의 선친(육당 최남선씨=편집자)께 대한 향념이 평생을 두고 변치 않으셨고 또 내가 무슨 가슴 답답한 일이 있으면 우선 여쭈어 보는 몇분 안되는 분 중의 한 분이시다.
지난 2월 어느 주일날 서울대의대 자운산수의 「그룹」과 도봉산 자운봉아래 만월암에서 점심을 지어먹고 푸른하늘을 쳐다보며 잠깐 누웠을때 갑자기 이생각이 나서 다음과 같은 수시를 지었다.
일중 김충현 선생의 붓을 빌어서 병풍채라도 하나꾸며 보려고 생각하고있다.
낙락장송 움켜쥔 채 주저앉은 너바위 강하의 힘 상전벽해 땅 모습은 바꾸어도 천색지기 정소어린 솔 향기야 앗아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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