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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포퓰리즘 경고 … 보고서보다 피켓이 효과 크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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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대선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6월 임시국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과 불공정한 가맹점 계약을 무효화하는 가맹점주 보호법 등이 주 쟁점이다. 여야는 6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제동을 거는 분위기다.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경제민주화 입법에는 적극 대응하겠다”고 한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언급(18일)이 그 예다.

의회의 입법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 단체들의 시위도 시작됐다. 보수 성향의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지난 17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포퓰리즘 경제악법 저지’를 주장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를 시작으로, 조동근(명지대)·김민호(성균관대)·김정호(연세대)·남정욱(숭실대)·송정석(중앙대)·양준모(연세대)·이지수(명지대)·조윤영(중앙대)·조희문(인하대)·허희영(한국항공대) 교수 등과 대학생들이 돌아가며 피켓을 든다.

 이들은 “한국을 둘러싼 대내외 상황은 매우 급박하다”며 “포퓰리즘 법안의 입법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릴레이 1인 시위 첫 주자로 나선 바른사회시민회의 유호열(58) 공동대표를 만났다.

그는 “1인 시위는 신고할 필요가 없고 장소 제한도 없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제민주화는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 아니었나.

 “국회와 정부가 대선 때부터 경제민주화를 얘기했지만 보수정당이 주장해야 할 내용은 아니다. 또한 지금은 수출시장에서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때다. 일본도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중국 등 개발도상국이 빠르게 산업 성장을 이루면서 조선·철강·석유화학·전자·건설·해운 등 우리 주력 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있다. 그 때문에 기업 규제보다는 투자 활성화를 우선시해야 한다.”

 -경제민주화 대신 ‘포퓰리즘 경제악법’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혹자는 ‘경제악법’이란 단어가 너무 감정적이라고도 하지만 ‘경제민주화’란 단어부터 문제의 소지가 컸던 거다. 법안을 만들 때는 깊이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의 정치적인 함의가 깊이 있는 토론을 방해해왔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법안의 내용이나 기대효과를 분석하고 나서 입법해도 늦지 않다.”

 -대기업과 계열사 간 불공정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은 필요한 게 아닌가.

 “거래의 불합리성들은 고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모든 대기업을 부당한 갑, 중소기업을 힘없는 을로 규정해서 한번에 규제하려는 건 위험하다. 그러면 기업은 투자 대신 재산증식을 택하거나 해외로 탈출하려 할 거다. 이게 지금 당장은 아무렇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성장동력을 잠식하는 일이다. 개구리를 끓는 물에 넣으면 팔짝 뛰지만 서서히 끓이면 뜨거워지는 줄 모르고 죽어버리지 않나. 10년 후 재생산 기반이 사라지면 그때 우린 뭘 먹고 살 건가.”

 - 순환출자 금지법도 시기상조인가.

 “총수의 비리나 대기업의 전횡을 용납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순환출자는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중요하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너무 많은 돈을 쓰게 되면 자연스레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와 같은 기업구조에서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외국자본이 갑자기 들어와 경영권을 빼앗기 쉽다. 외국기업들은 장래가 아니라 당장의 이윤을 보기 때문에 ‘먹튀’를 해도 막을 수 없다. 이 좋은 기업들을 눈뜨고 빼앗겨선 안 된다.”

 -정부도 속도조절론을 내놨다.

 “그렇다. 시장제재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단계별로 시행돼야 한다. 이를 임기 5년, 그것도 집권 초반에 해내려고 하면 일거리만 벌여놓고 수습하지 못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의 모델로 삼는 핀란드나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경쟁력을 잃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도 중요하다. 무조건적 규제 대신 대기업의 이윤 재투자, 사회환원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동력을 마련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1인 시위에 나선 계기는.

 “가만히 보니 시위를 할 사람이 우리밖에 없더라. 정부의 관료들은 대통령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기업들도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국회의원들은 당장 다가올 선거가 10~20년 후의 먹거리보다 더 시급하기 때문에 국민 정서를 좇는다. 결국 이해 당사자가 아닌 지식인들이 이런 문제들을 중장기적으로 전망하고 얘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난 주식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웃음)”

 -교수라면 다른 방법도 많지 않나.

 “굳이 1인 시위를 택한 이유에 대한 질문들이 많은데 답은 ‘하도 답답해서’다. 우리 단체는 경제민주화 입법의 위험성에 관한 세 차례 세미나에서 정부와 국회에 ‘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이 저하된다’는 보고서를 보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정치적 파급력도 있고 기업들도 귀를 기울인다. 반대로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내면 정부와 국회, 기업들이 ‘으레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지나치는 것 같더라.”

17일 유호열 교수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바른사회시민회의]

 -그래서 택한 게 1인 시위인가.

 “논의 끝에 ‘기존의 정적인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 ‘우리의 문제의식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현장을 찾아 몸으로 보여주는 게 제일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낯설었을 텐데.

 “나는 1인 시위가 처음이었다. 결의는 있었는데 막상 자리에 서니 또 쉽지 않더라. 교수들은 주로 서명운동이나 기고를 통해 의사표현을 하니까. 처음엔 혼자 덩그러니 서 있으려니 겸연쩍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차분해지고 결연해지더라.”

 -1인 시위 후 반응이 좀 있었나.

 “보고서보다 피켓이 효과가 크더라. 많은 분들이 ‘지식인들이 의견 전달을 위해 나섰구나’라고 봐줬다. 국회 보좌관들과 얘길 나눴고 국회의원들의 문자도 여러 통 받았다. ‘포퓰리즘에 휩쓸리지 않고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겠다’는 내용들을 보니 뿌듯했다.”

 -국회 논의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보나.

 “우리의 릴레이 시위는 진보가 아닌 보수에게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며 국회에 입성한 여당 의원들이 표를 의식해 국가의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이 잘못된 법안 추진을 두고도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며 휩쓸려가고 있지 않나.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의미로 ‘옐로 카드’를 든 것이다.”

 -목표 달성을 한 건가.

 “내 페이스북에 1인 시위 사진을 올렸더니 대학생들이 ‘감사합니다. 지지합니다’라는 댓글을 많이 달았더라. 페이스북 내용을 지지하는 ‘좋아요’도 114명이나 클릭했다. 함께 릴레이 시위에 참여하는 대학생들도 여러 명 된다. 난 이게 1인 시위의 효과 라고 본다.”

 -국회 앞에는 늘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는 계기도 됐겠다.

 “내가 시위한 날, 서너 분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장애인법 개정 요구, 해병전우회 등이 나와 있었다. 집회는 2인 이상이고 신고해야 하지만 1인 시위는 시위라기보다는 의사표현의 방식이기 때문에 신고가 필요없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게 매력이다. 그러고 보면 참여연대가 1인 시위 문화는 참 잘 개척한 것 같다(웃음).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포퓰리즘에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

 바른사회시민회의의 릴레이 1인 시위는 7월 2일까지 계속된다.

글=채윤경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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