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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와 헤어진 지 6582일 … 아빠의 시계는 그때 멈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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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25일은 세계 실종 어린이의 날이었습니다. 국내에도 실종 아이를 찾아 헤매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1995년과 97년 실종된 김하늘군(당시 34개월)과 조하늘양(당시 5살)의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같은 아이를 둔 엄마 아빠의 애끊는 심경을 ‘편지’에 담았습니다. 양의 아버지 조병세씨는 직접 편지를 보내 왔고, 김군의 어머니 정혜경씨는 몸이 편찮은 관계로 구술로 전해 왔습니다. 혹시라도 이 아이들의 소재를 알고 계신 분은 경찰청 실종아동돕기센터(국번 없이 182번)로 연락 바랍니다.

송지영 기자

조하늘양의 아버지와 김하늘군의 어머니가 실종 당시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그리워하고 있다. ① 실종 당시 조하늘양 사진(당시 34개월) ② 18세 때의 추정 사진(현재 23살). ③ 실종 당시 김하늘군 사진(당시 35개월). ④ 19세(현재)로 추정한 모습. [사진 경찰청]▷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 하늘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행의 씨앗. 때는 신록이 한참 우거지고 아카시아향이 끝나갈 무렵인 1995년 6월 16일 금요일. 이틀 전인 14일 하늘이 생일에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아빠는 천안에서 부랴부랴 달려왔단다. 도착하면 늘 내게 안겨 뽀뽀해주던 우리 하늘이. 그런데 집에 도착하니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엄마가 “하늘이가 이웃집에 갔는데 안 돌아오고 있다”고 하더라. 한참을 찾아다녔지. 며칠을 그렇게 헤매다, 순간 다리가 풀리면서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머리를 뭔가에 얻어맞아 가슴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단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의 딸 하늘이가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다니. “아빠 보고 싶어”라는 이틀 전 너의 귀여운 목소리가 마지막이었을 줄이야.

 하늘이가 우리 가족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8년이 지나 6582일째가 됐다. 시간으로는 15만7104시간…. 아빠의 시계는 하늘이와 헤어진 그 순간에 멈춰 있는데, 그 긴 시간 속에서 다섯 살에 헤어진 유치원생 하늘이는 벌써 스물세 살의 어엿한 숙녀가 되었겠구나. 정상적이라면 대학 졸업반일 텐데…. 그런데 아직까지 하늘이의 그림자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것이 나의 운명, 아니 하늘이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구나.

 꽃보다 예쁜 하늘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단다. 요즘 딸 바보라고들 많이 하는데, 아빠는 늘 하늘 바보였지. 천사처럼 웃던 사랑스러운 너의 모습이 매일 밤 네가 사라졌을 시간이면 눈앞에 아른거린단다. 추운 날이면 그 작은 손을 아빠 가슴에 갖다 대고 호호 녹이며 아빠 품에서 슬며시 잠들던 너의 모습이 그리워 아빠는 매일 밤 가슴이 먹먹해진단다.

 하늘아, 너는 어디에 있니. 수많은 세월, 수많은 시간을 찾아다녔지만 도대체 왜 너를 찾지 못하는지 알 길이 없다. 단 한 번, 우리 하늘이가 7살쯤 됐을까. 아빠 회사 전화로 ‘전 조하늘이에요. 우리 아빠는 조병세예요’라며 전화를 걸었다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전화가 끊어졌던 그때. 그때 말고는 아빠 앞에 나타나지 않는구나. 꿈에서라도 나타나주면 좋으련만….

 너를 찾아다니다 남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고, 서러움도 많이 겪고, 길에 주저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네가 죽었다면 가슴에라도 묻고 살아갈 텐데’라는 생각까지 했단다. 아빠는 지금도 믿고 있어. 우리 하늘이가 이 땅 어딘가에 꼭 잘 살아 있을 거라고. 혹시 기억이 남아 있을까 봐 우리 하늘이가 다니던 구로동 벧엘유치원 상가에 있는 아파트에 계속 살고 있단다.

 하늘아, 너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우리 하늘이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갈 나이면 늘 아빠는 전국에 있는 학교와 교육청을 돌아다니며 하늘이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곤 했는데, 지금 이 순간 아빠 옆으로 하늘이가 지나가면 과연 알아볼 수 있을는지…. 아빠는 너를 찾지 못해 세상을 등져볼 생각도 해봤단다. 그런데 하늘아, 너를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야 해. 왜냐면 이 아빠가 너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니까.

 세상을 살다 보니 자식을 낳기만 했다고 부모가 아니더라. 하늘이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죄, 너를 사랑으로 키워주지 못한 죄, 하늘이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죄,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죄, 이 모든 죄에 대해 너에게 용서를 빌어야 아빠가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 하늘아, 아빠의 소원이야. 이 아빠에게 용서를 빌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으련. 너무도 보고 싶다. 어디에 있든 건강하고. 사랑한다. 하나뿐인 내 딸…. 

못난 아버지가

보고 싶은 아들 하늘이에게

 하얗고 큰 잉어가 엄마 팔뚝에 쑥 올라와 반짝반짝 빛나던 날, 엄마는 너를 가졌단다. ‘보통 꿈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엄마는 열 달 동안 너를 품고 매일 너랑 만나는 상상을 했단다. 그렇게 하늘이가 세상에 나와 너의 작은 몸이 엄마 품에 쏙 안겼던 1994년 6월 29일. 엄마는 ‘하얀 잉어가 드디어 사람이 돼 엄마에게 나타났구나’라며 감사해했단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아빠는 지방에서 일하고 엄마는 늘 돌아다니며 일을 해야 했지만 하늘이는 그런 엄마와 아빠의 사정을 이해하기라도 하듯 한 번도 칭얼대지 않았지. 매일 엄마랑 차를 타고 다니며 한 번 지나간 길은 정확히 기억하곤 했던 우리 아가. 만 네 살이 안 됐던 시절에도 ‘이 길은 우리 집 가는 길이야’ ‘이 길은 아닌데’라는 우리 하늘이를 주위 사람들도 모두 예뻐해 주셨지.

 그런데 우리 하늘이가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어. 의정부 집에서 서울역 소아아동병원까지 매일 다녔지만 두꺼운 주사바늘을 울지도 않고 잘 참아냈잖아. 그렇게 두 달을 다닌 탓일까. 결국 엄마도 병을 얻고야 말았지. 하늘이는 최고의 의사 선생님이었어. 누워 있는 엄마 이마에 손을 얹어보고, 엄마 옆에서 한참을 놀다가 힘들면 집 근처에서 흙장난을 하곤 했잖아. 그렇게 엄마를 지켜주던 우리 하늘이가 평소와 똑같이 나갔는데 다신 돌아오지 않고 있구나….

 네가 수차례 장난감을 들고 왔다갔다 하는 소리가 분명 들렸는데, 곧 돌아올 줄 알고 주변을 살폈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단다. 우리 하늘이가 그날 엄마랑 헤어질 걸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전에 같이 먹었던 미역국을 갑자기 먹고 싶다고 했었잖아. 그날 엄마는 하늘이에게 미역국을 해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단다. 마침 지방근무하던 아빠에게도 ‘아빠, 집에 오면 안 돼? 아빠 보고 싶어’라고 했었지. 하늘이와의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아빠는 매일같이 하늘이가 보고 싶어 울며 지냈단다.

 하늘아, 마지막으로 우리 하늘이를 본 사람들은 밖에 나갔다가도 집에 잘 찾아오던 우리 하늘이가 평소랑 다르게 집 근처 시장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고 했어. 하늘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러다가 울면서 30대쯤 돼 보이는 여자와 택시를 같이 탔다고 했어. 하늘아, 그 순간 기억나니?

 우리 하늘이…. 올해로 스무 살이 되었구나. 성년의 날을 맞아 거리에 장미꽃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서 엄마도 마음 속으로 장미꽃을 전했단다. 어릴 때부터 ‘고놈 참 잘 생겼네~’라며 동네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우리 하늘이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겠지? 엄마는, 미국에서 만들어준 하늘이의 현재 추정 모습을 핸드폰에 담고 다니며 늘 너와 마주치길 상상하고 기도해.

 사랑하는 하늘아. 이제 군대도 가겠구나. 곧 있으면 집으로 입대영장도 날아오겠지. 엄마는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단다. 전국의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하늘이를 찾아보려고 해. 엄마는 하늘이를 보기 전까진 두 눈을 감을 수가 없단다. 엄마의 눈이 세상을 볼 수 있을 때까지 하늘이를 찾을 거야. 엄마는 늘 너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하늘이를 알아볼 순 있을지가 걱정이란다.

 하지만 우리 하늘이가 엄마를 알아봐줄 거지? 이제 우리 하늘이가, 어렸을 때지만 기억을 되살려 의정부 집 앞에서 뛰놀던 그 시절을 기억해 주고, 잠깐이라도 생각나면 엄마를 찾아와 주지 않을래? 죽어서도 잊지 못할 내 아들 하늘아,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구나. 엄마가 우리 하늘이 만나면 그날 하늘이가 먹고 싶어했던 미역국 꼭 끓여줄게.

  하늘이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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