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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장화 신은 여성들을 욕하는 이유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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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나는 장화 애호가다. 눈·비 오는 날마다 장화를 신은 지 3년 됐다. 비 맞는 걸 워낙 싫어해서다. 내가 장화를 재발견한 건 해외연수차 미국 뉴욕에서 살 때였다. 이 도시 사람들은 눈·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나왔다. 패션? 아니다. 환경 때문이다. 맨해튼에선 눈이 오면 며칠씩 거리가 진창이 되고, 비가 오면 인도에 서 있어도 금세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기 일쑤였다. 또 걷다가 개똥 밟는 게 일상일 만큼 거리가 더럽다 보니 장화가 아니면 견디기 힘들었다. 쨍쨍한 날도 장화 신은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건 이 도시를 아는 뉴요커들이 비 올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 싶으면 신고 나와서다.

 서울의 비 오는 날 환경도 썩 좋진 않다. 거리에 개똥은 없지만 오염물질 걱정까지 없는 건 아니다. 비가 오면 각종 오염물질을 쓸고 온 빗물에 신발은 물론 발까지 흥건히 젖고, 직장에선 씻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견디는 게 예사다. 그래도 장화 신는 문화가 없던 터라 혼자 튈 수 없어 구두를 적셔 망가뜨리며 그냥 살았다. 그러다 3년 전부터 거리에서 장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참에 장화를 샀다. 그러더니 올여름엔 장화가 유행이다.

 한데 느닷없이 인터넷에 장화 신는 여성들에 대한 비난이 들끓는다. 장화가 70만원짜리인데도 없어서 못 파는 과시욕의 산물이라는 뉘앙스의 한 매체 보도가 발단이 됐다. 인터넷엔 “모내기할 때나 신을 법한 장화를 70만원이나 주고 산다고? 미쳤구나” “몸매 생각은 안 하고 유행이라면 개나 소나 다 따라 한다”는 등 장화 신은 여성을 ‘된장녀’인 양 싸잡아 욕하는 글이 난무한다.

 그래서 알아봤다. 정말 70만원짜리가 그렇게 불티나게 팔리는지. 몇 년 전 한 외국 브랜드에서 유명 디자이너와 컬래버레이션한 제품 값이 그 정도 됐단다. 현재 백화점에서 가장 비싼 장화는 38만원대. 주류는 백화점에선 7만~20만원대, 인터넷 쇼핑몰이나 마트에선 1만~3만원대다. 국내 유명 제화점도 4만원대로 내놨다. 거리에 보이는 장화들은 딱 봐도 2만~3만원대가 대세다. 장화 신은 여성들이 ‘된장녀’로 욕먹을 이유도, 무턱대고 지르고 보는 온라인 욕설의 희생양이 될 이유도 없다는 얘기다.

 오염된 빗물에 발을 담그느니 장화로 발을 보호하는 게 건강에도 이롭고, 구두나 운동화가 빗물에 망가지는 걸 막을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도 이롭다. 요즘엔 구두처럼 신는 레인슈즈도 많으니 남성들도 도전할 만하다. 참고로 내 장화는 2만8000원짜리다. 그래도 며칠 전 한 동료가 “70만원짜리?” 하고 물었을 정도로 근사하다. 마트·홈쇼핑 뒤지면 싸고 멋있는 장화가 많다. 쾌적한 장마철 나기 용품으로 장화를 권하고 싶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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