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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중앙시평

'악의 축', 북한-시리아를 잇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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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2002년 2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이란·이라크·북한을 겨냥해 ‘악의 축’이란 표현을 썼다. 이는 즉각 전문가들의 비판을 불렀다. 함께 언급된 이란과 이라크는 상호 동맹국이 아니라 전통적인 적국이라는 것이다. 또한 ‘악’이라는 적대적인 단어를 사용하면 외교 협상이 어려워진다는 비판도 많이 제기됐다. 이 연설 직후 북한의 유엔대표부 사절단을 만난 일이 있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의 표현이 “평양의 최고 지도자를 불쾌하게 만든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의 표현은 말일 뿐이며 북한과 포괄적 협상을 하자는 제안도 하지 않았느냐고 설명해줬다. 그러자 북한 사절단은 이 연설에 대한 비판을 중단했으며 그 1주일 뒤에는 미국과의 회담을 수락했다. 이후 이 회담은 2002년 10월로 연기됐다. 그해 6월 29일 남북 간에 제2연평해전이 벌어지고 뒤이어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공개된 때문이었다. 결국 ‘악’이라는 수사는 협상을 실제로 가로막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축’이라는 표현은 어떨까. 이라크와 이란은 역사적인 적이었으나 이라크전의 결과로 바그다드의 시아파가 이제는 테헤란 정권과 상당히 밀접한 사이가 돼버렸다.

 하지만 이란과 이라크를 잇는 악의 축이 2002년에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북한이 이란 및 시리아와 위험한 유대를 맺고 있다는 증거는 날로 늘고 있다. 이 두 나라는 핵 확산과 인권 침해의 축이 되고 있으며 이는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한다. 북한은 이란과 탄도미사일 개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보기관이 오래전부터 의심해 왔다. 또한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북한의 도움으로 크게 발전할 위험이 있다고 의심할 만한 근거가 있다.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은 디자인이 매우 유사하며 두 나라의 수도 간 통행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 이란이 협력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공개된 적은 없다.

 이란의 대리인인 시리아와 북한이 협력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는 존재한다. 2007년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가 건설 중인 키바르 원전 단지를 폭격했는데 당시 현장에 있던 북한 기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앞서 2003년 북한은 미국에 대한 억지력 확보의 일환으로 자국 핵무기 능력을 해외에 이전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는 동기와 무기·범죄가 모두 존재했던 사례다.

 지금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은 이란과 헤즈볼라를 비롯한 동맹들에 자국의 대중 소요를 진압하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 필사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이 정권과 긴밀하게 제휴하고 있다는 추가 증거가 있다. 북한 관리들이 지상에서 알아사드 군대의 병참을 지원하고 있다는 보도가 시리아 반정부 단체에서 나오고 있다. 시리아의 화학무기고가 평양의 부분적 지원으로 만들어졌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평양은 세계 최대 규모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알아사드 정권이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한국은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국제사회는 이를 강력하게 비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평양은 국제사회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지켜볼 것이 분명하다. 알아사드 정권에 단호한 제재조치를 내리지 않는다면 장래에 평양이 혹시라도 화학무기를 사용할 위험에 대한 억지력이 크게 약해질 것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는 이 같은 결론에 이르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지만 이제는 화학무기 사용을 이유로 시리아 반군에 무기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을 수 있다.

 북한이 알아사드의 군대를 지상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독립적인 확증은 아직 없다. 시리아의 화학무기고와 평양을 연결하는 상세하고 공개적인 증거도 없다. 그렇지만 키바르 원전을 포함한 여타의 증거를 보면 북한과 시리아가 연계돼 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북한을 남북관계나 동북아라는 렌즈로 보던 사람에게 이 같은 관점은 분석의 시야를 넓혀줄 것이다. 김일성 자신이 한국은 ‘해방’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위한 전제조건의 하나가 제국주의자들(미국)이 중동의 분쟁에 끌려 들어가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는 미군이 세계 두 곳의 전쟁을 동시에 치를 능력을 확보하고 있을 때였다. 오늘날 이 같은 능력은 당시보다 약해졌다. 따라서 평양의 입장에서 중동에서 워싱턴에 적대적인 정권을 유지시켜 미국의 안보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것은 완벽하게 논리적이다. 국제관계에서 가장 오래된 격언 중 하나는 ‘나의 적의 적은 친구’라는 것이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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