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502> 서울시내 조선 왕릉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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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기자

“정종? 정조?…정약용?”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서울 정릉에 사는 주인공 서연이 “정릉이 누구 무덤이냐”는 교수의 질문에 한 대답입니다. 이 장면을 보고 많은 이가 웃었지만 이 중에 실제 정릉의 주인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됐을까요. 620여 년간 수도였던 서울엔 왕릉(王陵)이 많습니다. 지명으로 익숙한 능도 있습니다. 지하철역과 선수촌이 각각 떠오르는 선릉과 태릉처럼요. 서울시내 조선 왕릉들의 사연을 살펴봤습니다.

이승호 기자

서울시내 조선 왕릉은 총 8기다. 폐위된 연산군 묘까지 포함하면 9기다. 전통 예법상 왕릉이 수도 안에 있는 것은 맞지 않다. 조선 11대왕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가 안장된 태릉. [사진 문화재청·중앙포토]

27대까지 이어진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의 무덤, 왕릉은 총 40기다. 서울시내에는 8기가 있다. 정식 왕릉은 아니지만 폐위된 연산군의 묘를 합하면 왕들의 무덤은 9기다. 원래 조선 전통예법에선 왕릉이 수도 안에 있는 것은 맞지 않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은 “능역은 한양성 사대문 밖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실제 조선시대엔 모든 왕릉이 당시 수도인 한양성 밖에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을 거치는 사이 서울의 행정구역이 넓어지면서 왕릉들이 서울로 편입됐다. 이 중 경종과 순조의 능인 의릉·인릉을 제외한 무덤 7기의 왕과 왕비들은 각별하고도 처절한 인연으로 얽혀 있다.

◆정적 이었던 신덕왕후·태종이 묻힌 정릉과 헌릉

9대 왕 성종의 무덤인 선릉. [사진 문화재청·중앙포토]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貞陵)엔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가 묻혀 있다. ‘건축학개론’에 나온 정릉이 바로 이곳이다. 정릉은 조선 최초의 왕릉이다. 신덕왕후 강씨가 조선 최초의 왕비였기 때문이다. 태조에겐 첫 번째 부인으로 신의왕후 한씨가 있었다. 한씨는 조선 건국 1년 전인 1391년 세상을 떠났고 신덕왕후가 이듬해 왕비로 책봉된다. 정릉은 도성 안에 조성됐던 유일한 왕릉이기도 하다. 신덕왕후가 1396년(태조 5년) 승하하자 태조는 현재의 덕수궁 자리인 중구 정동에 능역을 조성하고 봉분 우측에 자신이 묻힐 자리도 마련한다.

 정릉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건 신덕왕후의 아들이자 정적인 3대 왕 태종 때다. 태종은 아버지 태조가 승하한 다음 해인 1409년(태종 9년) 정릉을 이장한다. 왕릉이 도성 밖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지만 실은 새어머니인 신덕왕후를 깎아내리기 위해서였다. 태종과 신덕왕후는 태조가 여덟 번째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왕위 계승 문제로 대립했다. 방석은 신덕왕후가 낳은 아들이다. 태종은 신덕왕후가 죽은 뒤 왕자의 난을 통해 신덕왕후 소생인 방번과 방석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태종은 신덕왕후의 지위를 후궁으로 강등시켰다. 능의 격(格)도 묘로 낮췄다. 아버지 태조의 능도 유지와 달리 따로 마련했다. 심지어 태종은 정릉을 지키던 신장석(神將石)을 1410년 청계천의 돌다리인 광통교를 세울 때 석축으로 썼다. 신덕왕후는 죽은 지 260여 년 뒤인 1669년(현종 10년)에야 왕비로 복위된다. 정릉도 이때 이름과 지위를 되찾았다. 현재 정릉의 시설들은 이때 조성된 것이다.

중종이 묻힌 정릉. [사진 문화재청·중앙포토]

 태종과 부인 원경왕후의 무덤, 헌릉(獻陵)도 서울에 있다. 헌릉은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지난 11일 한강문화재연구원은 보금자리주택 건설 예정지인 서울 강남구 수서동 대모산 기슭에서 15~16세기 조선 초기 건물 터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최고급 기와 등이 쓰인 걸로 봐서 조선 전기 왕릉 관련 사찰이나 시설로 추정된다. 특히 이 유적지가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의 무덤 영릉(英陵)의 원래 자리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종은 왕비 소헌왕후가 1446년(세종 28년) 승하하자 헌릉 곁에 자신과 왕비의 능 자리를 정하고 4년 뒤 자신도 같은 자리에 묻혔다. 하지만 풍수지리적으로 불길하다는 의견이 대두되며 영릉은 1469년(예종 1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 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영릉의 원래 자리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라며 “아직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지만 대모산 유적지는 영릉 또는 헌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종서 명종까지 질긴 인연으로 얽힌 무덤 5기

 서울에 있는 왕의 무덤 중 5기의 주인은 3대에 걸친 가족이다. 우선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선릉(宣陵)은 조선 9대 왕 성종과 성종의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의 무덤이다. 1495년(연산군 1년) 성종이 이곳에 안장된 뒤 1530년(중종 25년) 정현왕후가 죽자 함께 안장했다. 선릉 바로 옆에는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인 조선 11대 왕 중종이 묻힌 정릉(靖陵)이 있다. 이로 인해 3명의 무덤은 선정릉(宣靖陵) 또는 삼릉으로도 불린다. 선릉과 정릉은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진 아픔도 있다.

 중종은 성종의 장남이자 자신의 이복형인 연산군이 반정으로 폐위되며 왕위에 올랐다. 연산군은 1506년 폐위된 뒤 강화도로 유배를 갔고 그해 숨을 거뒀다. 강화도에 묻혀 있던 연산군의 시신은 7년 뒤 지금의 도봉구 방학동으로 옮겨진다. “시신만이라도 옮겨 달라”는 연산군의 부인 폐비 신씨의 간청을 중종이 받아들여 이장했다. 연산군은 폐위됐기 때문에 능이 아닌 왕자묘의 형식을 따른다.

 중종의 정릉은 왕만 안장된 단릉(單陵)이다. 조선왕릉 중 왕비 없이 왕만 홀로 묻힌 곳은 중종의 정릉과 태조의 건원릉(경기도 구리), 단종의 장릉(강원도 영월) 3곳뿐이다. 태조는 ‘왕자의 난’으로 집권한 아들 태종 때문에, 단종은 자신의 왕위를 빼앗은 숙부 세조로 인해 각각 홀로 묻힐 수밖에 없었다. 중종 역시 사후 벌어진 정치적 암투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선릉 옆에 홀로 묻혔다.

 중종이 승하한 다음 해인 1545년(인종 1년) 인종은 생모인 장경왕후 윤씨가 묻힌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 아버지를 안장했다. 하지만 인종이 왕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숨지며 상황은 급변한다. 중종의 세 번째 왕비였던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 인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문정왕후는 중종의 능이 풍수지리적으로 장마 때 물이 차오르는 형국이라며 정릉을 1562년(명종 1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겉으론 풍수를 내세웠지만 본인이 사후 중종의 곁에 묻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이장한 곳은 지대가 낮아 장마철이면 침수를 면치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1565년(명종 20년) 문정왕후가 승하하자 명종은 이런 지리적 단점을 들어 풍수지리적으로 국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믿는 자리에 어머니 문정왕후를 따로 안장한다. 문정왕후도 자신이 내세운 풍수 때문에 중종 곁에 묻히지 못한 셈이다.

 문정왕후의 무덤이 바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泰陵)이다. 태릉은 일반 왕후의 능보다 훨씬 화려하고 웅장하다. 명종을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의 위세를 느낄 수 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이 훈련을 벌이는 ‘태릉선수촌’은 태릉 남쪽에 있다. 명종도 문정왕후 승하 2년 뒤 어머니 옆에 묻혔다. 바로 강릉(康陵)이다. 태릉 서쪽에 자리한 강릉은 원형 보존과 관리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오랜동안 비공개 왕릉이었다. 베일에 쌓여 있던 능의 모습은 올해 공개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1월부터 일반인에게도 강릉 관람을 허용했다.

◆아버지 그늘에 가린 경종과 순조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한 의릉(懿陵)은 20대 왕 경종과 선의왕후의 능이다. 이 일대는 1960년대 초 중앙정보부 건물이 있던 탓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았다. 이후 중앙정보부가 떠나가고 훼손된 능을 정부가 10년에 걸쳐 복원한 뒤 1996년 5월 일반에게 공개했다.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로 생모는 사극 등으로 잘 알려진 희빈 장씨(장희빈)다. 경종은 13세 때인 1701년(숙종 27년) 서인과 남인 간의 권력 다툼 과정에서 숙종이 남인 출신인 장씨를 사사(賜死)하는 일을 경험한다. 많은 학자는 장씨의 죽음이 왕권 강화를 위해 붕당정치를 극단적으로 이용한 숙종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본다.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경종은 재위 내내 왕위를 위협받는다. 자식까지 없던 경종은 결국 서인 중 노론 세력이 내세운 이복동생 연잉군(후일 영조)을 재위 중 왕세제(王世弟)로 책봉하고 즉위 4년 만에 승하한다.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 인릉(仁陵)에 부인 순원왕후와 안장된 23대 왕 순조도 아버지의 그늘을 크게 느낀 왕이다. 순조는 1800년 조선 후기 융성기를 이끈 아버지 정조가 49세로 승하하자 열한 살에 즉위한다. 결국 증조할머니 격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에 들어갔고, 정순왕후는 천주교를 금하고 이를 빌미로 정조가 아끼던 이들을 숙청하는 신유사옥(1801)을 벌인다. 1804년부터 친정(親政)을 시작했지만 이번엔 장인인 김조순이 주축이 된 순원왕후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며 60여 년간 이어지는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인릉은 태종과 원경왕후의 무덤인 헌릉과 같은 곳에 있어 ‘헌인릉’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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