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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국수의 신'엔 복수극 너머 진한 휴머니즘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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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인권 화백이 국수 가닥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그는 홀가분해 보였다. ‘국수의 신’ 연재를 마치고 나서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고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담배가 늘었고 임플란트를 두 개 했다. 지난 2년간 중앙일보에 만화 ‘국수의 신’을 연재한 박인권(59) 화백 얘기다.

 박 화백은 지난달 28일 마지막 원고를 넘겼다. 2011년 9월 첫 연재를 시작했으니 만 2년 동안 국수에 빠져있던 셈이다.

 지난 17일 만난 그는 “첫 종합일간지 연재라 지면의 품위와 만화의 재미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품의 최종 승부처는 휴머니즘이었다”고 말했다. “국수 때문에 인간이 있는 게 아니고 인간 때문에 국수가 있어서다. 국수보단 인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말처럼 국수의 신은 ‘쩐의전쟁’ ‘대물’ ‘야왕’ 등 전작과 달랐다. 전작들이 돈·정치·욕망에 주목했다면 국수의 신은 단순한 복수극을 뛰어넘어 사랑과 성공, 그리고 용서라는 감정에 천착했다. 박 화백은 “세상사 모든 것엔 명과 암이 있는데 이번 작품에선 최대한 밝은 부분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수 명인 명이의 복수극을 다룬 국수의 신에는 300명이 넘는 캐릭터가 등장해 생동감을 부여했다. 여기에 박 화백의 꼼꼼한 취재가 더해져 디테일을 살려냈다.

 그는 대기만성형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은 알려진 것과 조금 다르다.

 1980년 첫 작품인 만화 ‘무당나비’로 데뷔하자마자 대박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후 십 년간은 자신의 표현대로 ‘음지’였다. 제대로 된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다.

만화 ‘국수의 신’에서 주인공 명이가 국수를 만들고 있는 장면.

 “첫 작품으로 대박이 나서 차도 사고 집도 샀어요. 세상이 쉬운 줄 알았죠. 출판사 관계자들이 찾아와선 한 상에 백만원짜리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딱 일 년을 보내니 슬럼프가 오더라고요.”

 박씨의 전국 유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문하생들과 무인도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고 유원지에서 노숙을 했다. 화물차가 실수로 떨어뜨린 짜장라면을 주워 끼니를 때운 적도 있었다. 무주구천동 계곡에도 들어가 그리고 또 그렸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한 출판사 사장은 사무실로 찾아간 그에게 “오해하지 말고 들어. 어떡하냐, 인기 떨어진 작가는 눈에 안 보인다”고 했다.

 그는 90년 ‘칼새 신디게이트’로 재기에 성공한다. ‘음지에서 얻은 깨달음’ 덕분이었다. “나만 보이면 죽은 글이다. 독자가 원하는 걸 그려야 나도 산다. 그런 생각을 하니 독자가 보이고 길이 보이더라.”

 박 화백은 독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소재들을 밑바닥까지 파고 들어갔다. 사채업자, 자동차 영업사원 등 흔치 않은 소재와 치밀한 디테일로 인기를 얻었고 다수의 작품이 드라마로 제작됐다. 연재를 마친 국수의 신도 내년에 드라마화 될 예정이다.

 그는 전통주를 주제로 한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내년 3월 중앙일보에 연재를 시작할 예정이다. 박 화백은 “프랑스의 와인, 러시아의 보드카, 일본의 사케 등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있는데 우리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술이 없다. 우리 전통주를 가지고 세계로 나가는 것이 새 작품의 모티브”라고 귀띔했다.

 “국수는 술에 비하면 조금 정적이에요. 추억을 되새기는 낭만을 담고 있는 음식이죠. 하지만 술은 그 자체가 스토리에요. 절망과 희망의 역사엔 꼭 술이 등장했어요. 술을 마시는 이유는 복잡다단합니다. 즐거울 때도 화가 날 때도 술을 마시니까요. 두 번째 연재니 새 작품에선 진검승부를 할 겁니다.”

글=강기헌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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