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칠성(75)씨는 올해 초 창고에 오랫동안 묵혀 뒀던 자전거를 꺼냈다. 고령이 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20~100㎞를 달렸다. 16일 열린 ‘2013 하이 서울 자전거 대행진(서울시·중앙일보·JTBC 공동주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행사에서 추씨는 최고령 참가자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했다. 상급자 그룹에서 주행을 마쳐 주변을 놀라게 한 것이다. 추씨는 “두 다리로 힘껏 페달을 밟아 도심을 가로지르니 몇 십년은 더 젊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올해 5회째를 맞는 자전거 대행진이 16일 오전 열렸다. 평소 자동차로 가득했던 서울도심과 강변북로가 이날은 녹색 유니폼을 입은 시민들과 자전거 5000여 대로 물결을 이뤘다. 구름이 약간 껴 따가운 햇살도 없는 쾌적한 날씨였다.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원전 하나 줄이기’. 참가자들의 자전거엔 ‘네 바퀴는 낭비, 두 바퀴는 절약’ 등 에너지 절약 구호가 적힌 번호표가 붙었다. 전력대란으로 에너지 절약이 절실해진 상황에서 시민들은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총 21㎞ 구간을 달렸다.
출발지점인 광화문광장엔 오전 7시부터 시민 5000여 명이 자전거를 끌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정세균 민주통합당 의원, 질 로슈 에어프랑스-KLM 한국지사장, 김진철 서울사이클연맹 회장, 김교준 중앙일보 편집인 겸 JTBC 뉴스총괄 등도 함께 참석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김찬호 국민체육진흥공단 아나운서가 오전 8시 정각에 맞춰 출발 구호를 외쳤다. 그러자 자전거 5000여 대가 썰물 빠지듯 광화문광장을 빠져나갔다. 태평로~숭례문을 지나 서울역 앞까지 막힘 없이 통과한 대열은 어느덧 원효대교~마포대교~가양대교 등을 차례로 가로질렀다. 이날 강변북로 코스 구간은 서울지방경찰청의 협조로 차량이 전면 통제됐다. 4차로를 가득 메운 자전거 5000여 대가 일제히 달리는 광경은 이번 행사의 압권이었다. 가양대교 북단에서 상암동 쪽으로 빠지는 오르막 구간에서 참가자들은 마지막 힘을 짜냈다. 오르막 을 넘자 월드컵로의 푸른 가로수가 펼쳐졌다. 오전 10시 종착지인 상암 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 다다르자 참가자들은 피로도 잊고 성취의 환호성을 질렀다. 평화광장에선 걸그룹 ‘쥬얼리’와 트로트 가수 ‘윙크’가 축하공연을 펼쳤다. 일부 참가자들이 작은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행사는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행사장엔 가족단위 참가자가 눈에 많이 띄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사는 김순기(49)씨는 아내, 두 딸과 함께 4년 연속 자전거 대행진에 참가했다. 김씨는 “차 없는 강변북로에서 마음껏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도 행사의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글=손국희·정종문 기자 <9key@joongang.co.kr>
사진=김형수·박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