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연리뷰] 다닐 트리포노프 독주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11일 공연에 앞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허설 중인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구부정하게 연주에 집중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22)의 독주회가 지난 11일 열렸다. ‘차세대 기대주’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그다.

 이날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는 음대 교수나 현역 연주자 등 ‘업계 종사자’들이 유독 많았다. 공연장에는 콩쿠르 심사장 같은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트리포노프는 2010년 쇼팽 콩쿠르 3위, 2011년 루빈스타인 콩쿠르 우승, 그리고 몇 주 뒤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조성진이 나란히 2, 3위를 차지한 그 대회다.

 첫 곡인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의 피아노 소나타 2번에선 첫 음부터 동시대 피아니스트 중 가장 가벼운 터치를 보여줬다. 가벼운 터치에서 피아노를 부숴버릴 듯한 엄청난 다이내믹까지. 그는 피아노로 못할 게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큰 키와 그에 비례해 긴 팔과 다리,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 러시아산 비르투오소(대가)들의 신체적 특징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은 트리포노프는 음악에 몰입할 때면 긴 상체를 구부려 고개를 건반에 처박듯 연주했다. 이런 행동은 빠르고 강렬한 악절에 앞서 습관처럼 이어졌다.

 두 번째 레퍼토리인 리스트(1811~ 86)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리스트의 유일한 피아노 소나타이자 난곡 중의 난곡이지만 트피포노프는 너무나 쉽게 연주를 이어갔다. 무지막지한 옥타브 연타에 이어 피아노(여리게),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로 이어지는 곡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의 상체는 건반 속으로 사라질 듯 활처럼 휘었다가 풍성한 울림을 남기고 천천히 떨림을 멈추는 하프의 현처럼 꼿꼿이 세워졌다. 분위기가 고조될 때는 무섭기까지 할 정도였다. 곡의 절정을 향해 치달을 때는 리스트의 피아니즘을 얘기할 때 왜 ‘악마적’이라는 표현이 따라다니는지를 절감케 하는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했다. 초반부와 중반부에서 한 번씩 미스터치를 했던 게 인간적으로 보일 정도로 완벽한 연주였다.

 중간 휴식 다음에 이어진 쇼팽의 24개 전주곡은 트리포노프의 손가락이 가벼울 뿐만 아니라 달콤하다는 것을 알려줬다. 가장 유명한 15번 ‘빗방울 전주곡’에서 서정성을 담뿍 담은 전반부와 좀 과하다 싶게 몰아치는 중·후반부를 들려준 그는 마지막 24번 하강 스케일 후 최저음 세 번 연타에서 홀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피아노로 하지 못할 게 없는 피아니스트였다.

최윤구(음악평론가·국민대 강사)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최윤구 음악평론가) : 피아니스트 아르헤리치의 평가를 복창하자. 그는 모든 것을 가졌다.

★★★★(강기헌 기자) : 오직 음악만 들리게 하는 능력 . 성숙함이란 양념이 더해지면 거장 반열 오를 듯 .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