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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우대가 백인 역차별? … 미국은 공정사회 논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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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텍사스주 스티븐 F 오스틴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애비게일 피셔는 2008년 텍사스 대학에 지원했다. 피셔의 고등학교 졸업 성적은 674명 중 82등, 대학입학자격시험(SAT)에선 1180점(1600점 만점)을 받았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당시 텍사스 대학 신입생들의 SAT 성적은 1120~1370점 사이. 피셔는 SAT 점수가 합격선보다 높았다는 점, 자신보다 졸업 성적이 낮았던 소수인종 동급생들은 합격했다는 점 등을 들어 대학에 항의했다. 자신이 백인이라 낙방했다며 텍사스 대학을 상대로 소송도 제기했다. 미국 수정 헌법 제14조항이 보장한 평등권을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피셔 측 변호사는 “소수자 우대 정책이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면서 누구나 동일한 적용을 받아야 하는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 신입생 모집에 피부색을 얼마나 고려해야 하나. 소수인종 등 사회 후발주자의 도약을 돕기 위해 마련된 미국의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가 갈림길에 놓였다. 5년째 이어지고 있는 ‘피셔 대 텍사스 대학’ 소송은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방법원(2009년)과 항소법원(2011년)은 텍사스 대학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시작한 연방대법원 심리는 피셔에게 유리하게 진행돼 각계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법원은 앞으로 수일 내에 대학의 인종에 대한 배려와 일정한 특전이 인종과 종교,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한 보호를 보장한 미국 수정 헌법 14조를 침해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1978·2003년 두 차례 소송선 합헌 유지

 텍사스 대학은 미국 대학 중에서도 소수 인종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대학이다. 가장 강력한 조치는 텍사스주 소재 어느 고등학교에서든 졸업 성적이 상위 10% 안에 들면 자동으로 입학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학군이나 SAT 성적을 따지지 않는다. 2008년엔 신입생 중 흑인 학생의 20%, 히스패닉 학생의 15%가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다. 나머지 90%는 학업 성취도와 방과후 활동, 문화적 배경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입학이 결정된다. 대학 측은 “대학 구성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며 인종은 입학 자격의 종합적인 판단을 위한 잣대 중 하나”라는 입장이다.

 적극적 우대 조치는 1960년대 인권운동과 함께 태어났다. 이후 40여 년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의 근간으로 활용돼 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61년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0925)으로 소수인종 등의 적극적인 지원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린든 존슨 대통령은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 연방 계약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이를 강화해 나갔다. 하지만 지난 40년간 피셔처럼 개인의 노력보다 인종이 중요한 변수로 사용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항의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비차별 정책의 일환으로 발생한 차별’에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법원은 일관되게 적극적 우대 조치 찬성론에 손을 들어줬다. 시작부터 불리했던 소수인종에 대해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간극을 줄이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78년 캘리포니아 리전트 대학교, 2003년 미시간 법과대학교를 상대로 진행된 소송에서도 유지됐다.

 적극적 우대조치가 다시 쟁점화되는 이유는 임박한 피셔 대 텍사스 대학의 판결이 과거와 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9명의 대법관이 심리하는 대법원 판결은 사안에 따라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 갈려 찬반이 팽팽하다. 2006년 중도 성향의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이 퇴임하면서 현재 연방 대법원의 저울은 우대 조치 반대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게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이번 결정의 스윙 보트를 쥐고 있는 중도 성향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2003년 미시간 대학 판결에서 적극적 우대 조치에 반대표를 던진 적이 있다.

이번엔 대법관 성향상 위헌 쪽이 우세

 대법원이 소수인종의 입학 특전이 평등권을 위배한다고 판결할 경우 미국 사회에 미칠 파장은 막대하다. 다문화사회인 미국에서 소수자의 존재를 반영하고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 정책의 근간이 뿌리부터 흔들리기 때문이다.

 소수자 우대 조치가 미국을 평등한 사회로 만드는 데 얼마만큼 기여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특히 보수 진영에선 효과가 없거나, 적다는 연구 결과도 자주 나온다. 혜택을 받아야 할 지원자보다 제도를 잘 활용한 영리한 지원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제도적 허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 결과 아시아계 신입생은 백인보다 140점, 히스패닉보다 270점, 흑인보다 450점 높은 SAT 점수를 받아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디애나 대학교 모어 법과대 케빈 브라운 교수도 “우대 정책은 과거의 차별을 바로잡고 캠퍼스 다양화를 위한 것인데, 과거의 차별을 바로잡는 기능은 떨어진다”고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하버드 대학의 라니 기니에르, 헨리 루이스 게이트 교수도 뉴욕타임스를 통해 “하버드에 입학하는 흑인 학생의 약 3분의 2는 해외 이민자이거나 이민자의 자녀, 혹은 국제결혼을 한 커플의 자녀”라고 밝혔다. “(미국 노예제도 등 때문에) 차별받은 가정의 후손들이 이 제도의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70여 개 단체 "폐지 안 된다” 연대성명

 대법원의 피셔 대 텍사스 대학 판결과 별개로 소수자 우대 정책에 어떤 형태의 변화·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빌 켈러는 10일 “대학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를 찾아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인종에 초점을 맞춰 생기는 부작용을 줄이고 보다 건전한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 창조적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물론 인종별 간극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대안 없이 적극적 우대조치를 폐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거세다. 아프리카계 미국 학생 연맹 등 70여 개 단체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연대성명운동을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어떤 쪽으로 나든 사회 약자를 보호할 때 누구를 약자로 봐야 하는지 논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영선 기자

적극적 우대조치 쟁점

1. 소수인종 배려가 비소수인종 차별 유발했나

애비게일 피셔 측 변호사 “텍사스 대학이 흑인·히스패닉에게 가산점을 준 결과 백인인 애비게일 피셔는 만인에게 동등한 대우를 보장한 수정헌법 14조의 평등권을 거부당했다.”

2. 적극적 우대조치는 불평등사회 개선 위한 필요악인가

웬디 코프 ‘미국을 위한 교육’ 대표 “미국 상위 340개 대학 졸업자 중 아프리카계는 5%, 히스패닉은 6%에 불과하다. 대학 교육에서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은 여전히 필요하다. ”

3. 흑인·히스패닉 우대로 아시아계가 차별받고 있나

토머스 에스펜세이드 프린스턴대 교수 “1997년 미국 사립대의 SAT 점수 분석 결과 아시아계 학생은 백인보다 140점, 히스패닉보다 270점, 흑인보다 450점 높아야 입학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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