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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인가 영웅인가 빅브러더 폭로자 운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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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에드워드 스노든과 오바마 대통령 사진이 11일 홍콩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있다. [홍콩 로이터=뉴시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민간인 e메일·통화기록 수집 실태를 폭로한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29)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그는 미국 실정법을 위반(국가기밀 유출)한 혐의의 용의자 신세다.

 그는 지난달 20일부터 머물렀던 홍콩의 미라 호텔에서 10일 체크아웃한 뒤 잠적했다. 영국의 가디언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실명 인터뷰를 게재하며 그의 소재를 밝힌 지 수시간 뒤였다. 가디언은 그가 홍콩을 벗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11일 보도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홍콩의 미국 중앙정보국(CIA) 지부와 미국 영사관 직원들이 곧 바빠질 것”이라며 자신과 이들의 숨바꼭질을 예고했다.

 스노든은 아이슬란드를 가장 원하는 망명지로 꼽았다. “인터넷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내무부 장관은 “직접 망명 요청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검토 자체를 할 수 없는 단계”라고 말했다. 반면에 아이슬란드 해적당 소속의 국회의원 비르기타 욘스도티르는 “망명 허용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해적당은 저작권의 제한을 뛰어넘는 정보 유통의 자유와 철저한 개인정보 보호를 주장하는 정치 단체다.

 러시아는 그가 망명을 요청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일간지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궁 대변인은 “신청이 오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노든이 러시아를 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같은 나라는 나에게서 미국의 기밀을 얻고 싶어 하겠지만 개인적 이득을 위해 정보를 팔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 대표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에 용기로 맞선 그가 프랑스로 망명할 수 있도록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 관련 조치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스노든에 대한 체포와 송환 작업에 착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과 홍콩특별행정구는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고 있지만 정치적 사안으로 판단되면 서로 이를 거부할 수 있다.

 미국 내 여론은 갈려 있다. 국가 안보를 해친 반역자로 보는 시각과 불의에 맞선 영웅으로 평가하는 의견이 공존한다.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그를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백악관의 인터넷 청원 사이트인 ‘위 더 피플’에는 ‘스노든을 사면하라’는 글이 10일 올라온 뒤 하루 새 수만 명이 동의를 표시했다. 1971년 미국 국방부의 베트남전 관련 비밀 문서를 뉴욕타임스에 건넨 당시의 국방부 전략분석가 대니얼 엘스버그는 “스노든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내부 고발을 한 영웅”이라고 칭찬했다.

 폭로 전문 인터넷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미국의 외교 문서들을 공개했던 줄리안 어산지는 1년째 은신처로 삼고 있는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국가의 대중 감시를 만천하에 드러낸 위대한 인물”이라고 스노든을 평가한 뒤 “남미로 망명할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어산지에 대한 망명을 수락했으나 영국은 그가 대사관 밖으로 나오는 순간 체포하기 위해 주변에 경찰관을 배치해 놓고 있다. 한편 스노든으로부터 제보를 처음 받은 가디언의 글렌 그린왈드 기자는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NSA 첩보 수집과 관련한 대중이 알아야 할 매우 가치 있는 기사를 준비 중”이라고 말하며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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