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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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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정부가 지난 4일 ‘고용률 70% 로드맵’을 확정해 발표했다. 핵심은 정규직 근로 시간을 줄여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노동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옳은 방향”이란 시각과 “전시행정·통계행정에 그칠 수 있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노사정 협력으로 여성 경제활동 늘릴 수 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용률 70%가 얼마나 원대한 목표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다. 최근 역대 정부들이 창출한 일자리의 두 배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쉽게 다가올 것이다. 이 목표를 단지 희망사항이라고 간단히 비판하기 어렵다. 선진국들의 수준이 그 정도다. 우리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목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특단의 방안들이 필요하다.

 이전 정부들에서도 시간제 일자리의 확대 필요성은 논의돼 왔다. 특히 노동 공급 측면에서 양질의 여성 인력이 경제활동에 불참하는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높은 게 현실이다. 노동 수요 측면에서도 우리의 장시간 근로 현실을 선진국과 같은 수준으로 맞추기만 한다면 대량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이러한 셈법은 시간제 일자리 창출 전략을 고려해 볼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정부의 로드맵에서도 가장 강조되는 것이 장시간 근로 규제와 대량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이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은 여성들의 일과 가정 양립, 창의적이고 효율적 인재 활용 차원에서 단지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직접적 성과와 더불어 많은 장점이 있다. 고령화로 인한 중·고령 인력의 노동시장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예전에 인턴 수준에 머물던 청년들에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준다는 의미도 있다. 예컨대 지금처럼 노량진에 들어가 몇 년 동안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느니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엔 직장 경험을 가지면서 다음 경력을 준비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다만 모든 분야에서 시간제 일자리가 저절로 늘어나긴 어렵다. 총량적 수준에서 93만 개라는 시간제 일자리 창출 목표를 넘어 개별 업종 차원에서 차별적인 시간제 일자리 창출 전략이 보완돼야 한다. 아울러 왜 노조를 비롯한 일부 사회집단이 “시간제 일자리는 결국 질 나쁜 비정규직 일자리의 확대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하는지도 경청해야 한다. 좋은 시간제 일자리는 정부만이 아니라 결국 노사의 형편과 기대에 부응하면서 서로 간의 협력이 있어야 제대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민간 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협력의지가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이를 추동할 노사정위원회도 맥이 빠진 상태이고 그나마 시간제 일자리 창출 여력이 많은 사업장을 조직 배경으로 한 민주노총은 처음부터 협력 구도에서 비켜나 있다. 또한 좋은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직무에 대한 보상이 공정해야 하는데 직무 구분 기준이 엉성한 연공제 인사제도를 고쳐 보려는 의지는 정부를 빼고는 노사 양쪽 모두에서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정부 부문 일자리도 결연한 정책의지가 필요하다. 가장 직접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공무원이다. 정부가 고용안정·급여·복지 등에서 반듯한 시간제 공무원 일자리를 우선 창출할 방침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방만하다고 비판받는 공무원연금제도에 어떻게 추가로 편입시킬지, 주변부 직무가 아닌 핵심 직무에도 파트타임 공무원을 둘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모든 면에서 인심 쓰듯 혜택을 주면서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셈이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전환하려는 획기적 조치 없이 숫자만 늘어난 시간제 공무원은 결국 주변부의 하찮은 자리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고용률 70%라는 특단의 정부 목표가 달성되려면 그에 걸맞은 특단의 개혁 노력과 고통 분담방안이 필수적이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중소기업 일자리 만드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음식을 먹을 때 주요리가 있고 전채요리가 있다. 요리사의 입장에서는 주요리가 가장 먼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애석하게도 일자리 정책의 전채요리가 주요리인 것처럼 발표되고 있는 느낌이다. 시간제(파트타임) 일자리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간 역대 정부들도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논의했으나 찬반양론 속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지 못했다. 이번 정부에서는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보다 핵심적인 과제로 설정해 가고 있다. 공무원과 공기업에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할당하고 이를 점차 민간기업으로 확대해 간다는 계획이다. 비정규직 색채를 줄이고 정규직 혹은 무기(無期)계약의 시간제로 만들어 가겠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으로 판단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말의 내용이 좋으나 문제의 정곡은 아니다. 시험을 볼 때 문제가 어려우면 쉬운 문제부터 푸는 것처럼 파트타임 일자리 창출은 가장 손쉬운 일자리 확대 방법이다. 그러나 정권 초기에 개혁적이고 어려운 일자리 창출 과제를 풀지 못하면 손쉬운 문제 하나 풀고 다른 문제는 영영 방치하는 격이 된다.

 그렇다면 맥을 짚는 일자리 창출 정책, 정권 초기에 핵심으로 설정돼야 할 일자리 창출 정책은 무엇일까에 관한 돌직구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 우리 노동시장에 촌철살인적인 정책혜안은 보이지 않고 손쉬운 정책들만 부각돼 왔다. 이번 시간제 정책도 이명박 정부의 ‘청년 인턴’ ‘행정 인턴’처럼 처음에는 잘 굴러가다 정권 후반에는 지지부진해지는 전시행정·통계행정의 산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정도(正道)의 일자리 창출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에서 이뤄진다”는 대명제를 잊어선 안 된다. 산업정책 차원에서 창업이 왕성하게 이뤄지도록 사회 분위기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글로벌 네트워크 및 연구개발(R&D) 지원을 강화하고 중소기업 장기근속자에 대해선 특단의 우대조치를 취해 중소기업 기피 문화를 해소해야 한다.

 과거 규제완화 차원에서 풀어줬던 산업안전 등 필수 업무 인력 고용을 의무화하되 정부가 임금을 파격적으로 보조하고 중소기업 집중지역에 거주문화시설 등 근로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공정거래정책 차원에서는 소기업이 대기업에 착취당하는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 소기업들은 정부에 대해 “우리도 중견기업으로 커갈 수 있도록 엄정한 심판자가 돼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 정년연장, 통상임금 범위 확대, 대체휴일, 사내하도급법, 근로시간 단축 등 다양한 입법들이 차분히 로드맵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우려스러운 건 이런 이슈들이 쉴 새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포퓰리즘적 입법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기업들 사이엔 투자와 고용 창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 입법은 중소기업엔 ‘그림의 떡’이어서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독일이 노동시장 개혁을 목표로 진행했던 하르츠 개혁은 손에 피를 묻히더라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핵심 정책에 과감히 도전하자는 것이었다. 파트타임 일자리 등 무늬만 하르츠 개혁이 아니라 맥을 짚는 바른 정책이 시급하다.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을 핵심 일자리 정책으로 재고하길 바란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