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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진드기? 물려도 멀쩡히 지나가는 경우 많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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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산행을 하려고 마음먹고 등산복에다 등산화까지 장만했는데 ‘살인’ 진드기 때문에 한번도 못 나갔어요.”(서초구 박상호씨)

 “모처럼 가족이랑 야외로 캠핑을 가려고 했는데 아이가 진드기 무섭다고 절대 안 간대요. 정말 그 정도로 위험한 건가요.”(서초구 김모씨)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몸에서 진드기 비슷한 벌레가 나왔어요. 강아지를 아이들이랑 떼어놓아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돼요.”(동대문구 강원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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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드기가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SFTS) 바이러스를 지닌 일부 작은소참진드기가 흡혈(吸血) 도중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겨 지금까지 국내에서 30여 명이 SFTS에 감염됐다. 2명은 숨졌다. 이 진드기가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지, 또 야외활동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진드기는 한번 사람 몸에 붙으면 강력 본드처럼 피부에 딱 달라붙어 최장 10일 동안 피를 빤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사람을 ‘진드기 같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래서다. 진드기는 SFTS 외에도 다양한 병을 옮긴다. 털진드기는 쓰쓰가무시병, 광대참진드기는 홍반열, 참진드기는 라임병(病)을 옮긴다. 집먼지진드기는 꽃가루 등과 함께 알레르기 유발물질이다.

 영어권에선 진드기를 크기에 따라 틱(tick·큰 것)과 마이트(mite·작은 것)로 구분한다. SFTS를 매개하는 작은소참진드기는 틱의 일종이다. 가을철 열성(熱性) 감염병인 쓰쓰가무시병을 옮기는 털진드기는 육안으론 보기 힘든 마이트다.

 박미연 질병관리본부 질병매개곤충과 과장은 “작은소참진드기는 유충(幼蟲) 때 크기가 1㎜가량이어서 시력 좋은 사람은 맨눈으로도 발견할 수 있다”며 “성충(成蟲)이 되면 3㎜로 자라며 피를 빤 뒤엔 그 10배인 3㎝에 달한다”고 말했다.

 작은소참진드기는 국내 산야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야생 진드기다. 농촌지역 풀숲이나 야산 주변에 사는 야생 진드기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김영택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장은 “도시 수풀이나 시가지 주변 풀숲에서도 작은소참진드기가 드물지만 존재한다”며 “도시 주변이라도 우거진 풀숲이나 야산에서 활동할 때는 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작은소참진드기는 원래 뇌염을 매개하는 곤충으로 의심받아 왔다. 그러나 국내에선 작은소참진드기에 의한 뇌염 발생 사례가 아직 없다. 설령 야외에서 작은소참진드기에 물린다고 하더라도 SFTS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다. 국립보건연구원 조사 결과 진드기 776풀(pool·1풀은 진드기 10여 마리로 구성) 가운데 32풀이 SFTS를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근거로 방역당국은 작은소참드기에 물린 사람이 SFTS에 걸릴 위험은 최소 0.4%, 최대 2.2%로 추산했다.

 현재 SFTS 감염 경로로는 SFTS를 소지한 작은소참진드기가 사람 피를 빠는 과정에서 사람이 감염되는 것만 확인됐다. SFTS가 감염된 사람→사람이나 작은소참진드기→개·소·염소 등→사람으로 전파된 사례는 없다. SFTS는 감기·독감 등 호흡기 감염이나 콜레라·이질 등 소화기 감염과는 달리, 작은소참진드기란 매개 곤충이 꼭 있어야만 감염되므로 일상적인 생활환경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파되지는 않는다. 공기를 통해서는 물론 물보라를 통해 SFTS에 감염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집에서 키우는 개 등 반려동물에 진드기가 붙어 있다면 이 진드기가 사람을 물 수 있지만 도시 지역 반려동물에 작은소참진드기가 잔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지적했다.

 우리 국민이 이번 SFTS 발병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살인’ 진드기란 별명 때문이다. 현재 SFTS의 치사율은 6%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치사율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의료계의 반응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중국에서도 SFTS 치사율이 30%에서 12%, 다시 6%로 계속 떨어졌다”며 “신종 질병의 발생 초기엔 사망자 등 상태가 위중한 감염자 위주로 집계되므로 치사율이 높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떠들썩했던 신종플루도 발생 초기엔 치사율이 1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종 치사율은 0.03%로 일반 독감과 별 차이가 없었다. SFTS에 감염돼도 특별한 증상 없이 가볍게 넘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SFTS가 중국의 야생 진드기 때문이란 표현도 잘못된 것”이라며 “중국 외에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한 데서 알 수 있듯 중국을 여행하지 않았어도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SFTS는 증상만으론 정확한 진단이 힘들다. 초기 증상이 독감이나 식중독 등 다른 원인에 의한 증상과 비슷해서다. SFTS 바이러스를 지닌 진드기에 물리면 1∼2주의 잠복기를 거친 뒤 감기 증상 비슷하게 열이 나거나 근육통이 생긴다. 더 진행되면 설사나 근육통이 심해진다. 나중엔 의식이 희미해지는 뇌 증상을 보이다가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져 숨지기도 한다. 따라서 야외활동 후 열·구토·설사 증사를 보이면 가까운 병·의원을 찾아 원인을 정확히 밝히는 게 좋다.

 현재 SFTS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백신이나 치료약은 없다. 진드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대처법이다. 특히 작은소참진드기의 활동이 활발한 봄~가을이 요주의 시기다. 풀숲·덤불 등 진드기가 많이 서식하는 장소에 들어갈 때는 긴 소매·긴 바지, 다리를 완전히 덮는 신발을 착용해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야외활동 후엔 진드기에 물린 흔적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진드기에 물렸을 때 무리하게 잡아당기면 진드기의 일부가 피부에 남아 있을 수 있다. 흡혈 중인 진드기의 침을 손으로 털어내지 말고 핀셋 등으로 뽑아내는 것이 좋다.

작은소참진드기

 진드기를 쫓는 곤충 기피제(repellents)를 이용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곤충 기피제는 주로 모기를 쫓기 위해 사용되지만 진드기 접근을 막는 ‘진드기 전용 제품’도 시중에 나와 있다. 곤충 기피제는 디에틸톨루아미드(DEET)·이카리딘·유칼리유·정향유를 함유한다. 다만 성인용 제품은 어린이에게 뿌려선 안 된다. 성인도 눈과 입 주위는 피해서 뿌려야 한다.

 다만 일부 기피제 성분은 어린이나 호흡기 질환자에게 두통 등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예민한 사람에겐 피부에 붉은 반점을 생성시키기도 한다. 또 상처 부위나 햇볕에 탄 피부엔 자극을 유발한다.

 클로브(정향) 오일은 가장 효과적인 곤충 퇴치제로 알려져 있다. 서양 사람들은 정향 오일을 알코올(보드카)이나 올리브 오일에 희석시켜 곤충 퇴치제로 사용한다. 인도 사람과 아프리카 사람은 곤충에 물리지 않기 위해 신선한 바질 잎으로 피부를 문지른다. 페퍼민트·스피어민트를 비롯한 민트류 허브엔 피페리톤이란 강력한 곤충 퇴치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유칼립투스·월계수 잎도 곤충을 쫓는 데 효과적인 에센셜 오일을 함유하고 있다. SFTS 의심환자에 대해선 수액치료·영양공급·지혈제·인공호흡기 등 보조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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