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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외국인 유학생 9만 명 … 무너지는 코리안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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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유학 오는 외국 학생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2005년 2만2526명이던 외국인 유학생은 2년 뒤인 2007년 곱절인 5만 명을 넘어섰고 지금은 10만 명을 바라보는 수준이다. 미래의 지한(知韓)파 네트워크의 주축이 될 유학생들은 과연 국내 대학에서 받는 교육과 유학생활에 만족하고 있을까. 전국 21개 대학을 찾아가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을 만나보았다.

해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유학생 수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유학생은 취업정보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실업자가 돼 귀국하기 일쑤다. 사진은 네팔에서 충북대로 유학을 온 아노트 마하루전(24·미생물학과 2년)이 27일 캠퍼스 국제교류원에서 한국어 이력서 작성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김경빈 기자]

#1. “마음 같아선 당장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요.”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A씨(여·24)는 인터뷰 내내 한숨만 쉬었다. 이슬람권 국가 출신인 그는 2011년 8월 한국에 유학 왔다. 싱가포르와 일본 등을 놓고 고민하다가 한류 붐이 지구촌 전역으로 퍼지는 것을 보면서 한국행을 결심했다. 학교 측은 전액 장학금을 제시하면서 “한국어를 잘 못해도 수업에 지장이 없다”고 안심시켰다.

 막상 입학하고 보니 전공과목 가운데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전혀 없었다. 학과사무실을 찾아가 “한국어를 못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더니 “실기 수업이 많아 말이 안 통해도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친절하게 유학 상담에 응해주던 학과장도 입학하고 나니 만나기가 어려웠다. 1년이 지나자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어능력시험(토픽) 4급 이상을 따지 않으면 더 이상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통보였다. 갑작스레 정부 방침이 강화돼 학교 측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입학 수속을 밟을 때와는 얘기가 다른 게 너무 많아 속은 느낌”이라며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호감도 점점 악감정으로 변해 간다”고 말했다.

한국 국위 상승, 한류 붐 타고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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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릴 적부터 열성 K팝 팬이었던 중국인 B씨(24)의 유학 생활 역시 실망의 연속이었다. 그가 입학한 건국대에선 멘토(mentor) 한 명을 지정해줬다. 알고 보니 이미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 만날 틈이 없었다. 유학생에 대한 맞춤 지도나 정보 제공을 기대한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결정적인 실망은 마지막 학기에 찾아왔다. 지도교수에게 추천서를 받아 다른 학교 대학원 서너 군데에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지도교수가 써 준 추천서는 단 네 줄, 간단한 소개와 B씨가 들었던 수업 및 성적을 열거한 데 이어진 끝 문장은 이랬다. “다른 외국인 학생보다는 열심히 하려 하지만, 한국 학생과 비교해 수학능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B씨는 유창한 한국말로 항변했다. “솔직하게 표현한 건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추천서를 안 써 준 것만 못하지 않습니까.”

  취재진은 전국 21개 대학 53명을 인터뷰했지만 유학생활에 만족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손가락을 헤아릴 정도에 불과했다. “당장이라도 다른 나라로 옮기고 싶은 심정”이라거나 “동생이나 후배가 한국 유학을 온다고 하면 반드시 말리겠다”는 유학생이 적지 않았다.

언어 장벽 … 왕따 생활에 일자리도 제한

 한국에 오는 외국인 유학생이 늘어난 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강화되고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높아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고교 졸업생이 대학 정원을 다 못 채울 만큼 줄어들면서 국내 대학들이 밖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줄어드는 내국인 신입생의 빈자리를 채울 대안으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렸다. 수도권보다는 지방대학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 충북 청주대의 경우 중국 78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해마다 이들 대학을 순회하며 유학설명회를 열고 있다. 김윤배 총장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지 않으면 대학 운영이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교육부도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Study Korea Project)’를 내세우며 유학생 유치를 장려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상당수 대학들이 학생 선발과 입학 후 유학생 지원 및 관리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제대로 된 수학 능력 검증 절차가 없어 입학의 문턱이 낮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제대학원 등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일부 과정을 제외하면 국내 대학 유학에 한국어 능력은 필수적이다. 교육부는 2011년 외국인유학생 인증제도를 도입하면서 ‘입학은 토픽 3급 이상, 졸업 전까지 4급 이상 취득’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를 엄격하게 준수하는 대학은 그리 많지 않다. 교육부 김민선 대학학사평가과 사무관은 “토픽 4급으로 기준을 강화했다가 유학생 유치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학들의 반발로 한 단계 낮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령 토픽 3∼4급을 따도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유학생들은 불법취업 전선으로 빠지기도 한다. 충북대 후문 식당가에는 울산·거제의 조선소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타깃은 외국인 유학생이다. 인력송출업체 관계자는 “철근 등 무거운 물건을 나르거나 용접보조 일을 하는데 한 달에 200여만원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며 “방학이 아닌 학기 중에도 조선소에서 일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출입관리법 위반으로 적발된 외국인 유학생 가운데 활동범위 위반 1208명, 불법취업 714명이 포함돼 있었다. 경희대 외국인지원센터 이진섭 계장은 “노래방 도우미 등 불법취업으로 적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을 위해 대학당국이 제공하는 지원 프로그램도 부실하긴 마찬가지다. 미국·일본 등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은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멘토링’ 시스템을 꼽는다. 일본 쓰쿠바 대학에서 유학했던 여갑동 전 계명대 교수는 "맨투맨 방식으로 지정된 멘토가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수강신청, 도서관 이용 방법, 리포트 작성 방법 등은 물론 학교 밖 일상까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선진국처럼 멘토링 시스템 활성화해야”

유학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대학도 있다. 창원대는 한국어 실력이 부족한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방과후 특강을 개설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하지만 국내 대학의 사정은 다르다. 한국 유학 11년째인 몽골 출신의 오트공바야르(39·서울대 박사과정)는 “사립대와 국립대를 다 다녀봤지만 멘토 제도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한양대 등 극소수 대학을 제외하면 외국인 유학생 멘토 시스템이 아예 없거나 설령 있다 해도 형식적인 운영에 그치는 학교가 대부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편견이나 따돌림도 유학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한 수도권 대학의 유학생은 “중국인은 지저분하다는 편견 때문인지 빈자리가 있는데도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려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유학생활 중 마음의 상처를 입은 적이 여러 차례 있다”고 말했다. 부산 부경대에 다니는 말레이시아 출신 유학생(24)은 “외국 유학생은 MT에 오지 말라고 하는 등 학과 행사에서 왕따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학업을 마친 유학생들에게 취업은 ‘산 넘어 산’이다. 유학생들에게 국내 취업은 바늘구멍이다. 그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취업 정보를 제공해 주는 곳조차 없다는 점이다. 모든 대학이 졸업생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통계에서 제외되는 유학생에 대한 지원은 전무에 가깝다. 한국어로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도 거의 없다. 연간 1만여 명씩 배출되는 외국인 유학생 졸업자 가운데 국내 취업자는 100명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졸업과 동시에 본국으로 귀국하는 길 이외엔 달리 선택지가 없다는 얘기다.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올 때 품었던 희망은 본국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실망으로 바뀐다. 적지 않은 유학생들의 가슴에는 반한 감정이 쌓인다.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2010년 국내 중국인 유학생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40%가 ‘유학생활 도중 반한 감정을 갖게 됐다”고 답했다. 유학생활을 하기 전의 기대치와 실제 만족도 간의 격차도 큰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개발연구원이 지난해 도내 중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66.1%가 유학 전 기대치보다 만족도가 크게 낮아졌다고 답했다.

강성진 고려대 국제처장은 “다수의 지한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핵심 친한파 엘리트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며 “ 유학생 유치 정책을 ‘질’위주로 바꾸고, 일본 문부성 장학생 제도와 같이 외국의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광역취재팀=위성욱·신진호·윤호진 기자
사진=김경빈·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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