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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칼럼]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 절제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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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헐리웃 스타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절제술이 세간의 화제다. 유전체 검사 결과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 예방차원의 중대 결심을 한 것이란다. 도대체 유전체 검사가 뭐길래. 몸이 재산인 유명 여배우의 멀쩡한 유방을 잘라내도록 만들었을까?

병원 문턱이 높던 과거에는 몸이 아파야만 병원을 찾았다. 요즘은 아픈 데가 없어도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각종 검진 때문인데 암과 같이 무서운 질병의 경우 조기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비만이나 흡연처럼 과거에는 체형, 습관으로 여겨지던 것들도 건강증진 차원의 의료분야로 포함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유전자 검사로 병을 예측해 미리 대처한 졸리의 선택은 낯설지만 이해가 가기도 한다. 실제로 졸리의 유전체 검사에서 발견된 BRCA1이라는 유전자는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병 관련성이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다.

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한쪽 유방에 암이 발견된 경우에 재발을 막기 위해서 반대쪽 유방을 미리 절제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이런 시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규칙적인 정기검진을 받아서 조기 발견한 후 수술을 해도 큰 차이가 없다거나, 고환암 발병위험이 높다고 해서 멀쩡한 남성의 심볼을 제거할 순 없는 노릇 아니냐고 주장한다. 졸리의 경우는 유방절제술 뒤에 재건술(성형)도 받았기에 어차피 좀 망가진(?) 모양도 회복한 셈인지라, 관련 회사가 뒷돈을 대었을 것이라는 음모론이 돌기도 한다. 그녀의 유명세로 볼 때 수술의 위험과 이득에 대해 최대한의 정보를 들었을 것이고,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는 적어 보인다. 오히려 그녀의 용기있는 소신결정에 찬사를 보내는 이도 있다.

진짜 염려되는 바는 이런 류의 검사가 상업적으로 악용될까 하는 점이다. 벌써부터 본인이 암이나 치매 등에 걸릴 확률을 알 수 있는 검사에 대한 문의가 의료기관마다 급증하고 있다. 이미 발 빠른 유전체 분석 회사들은 유명 병원의 검진센터와 제휴하여 수백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문제는 이런 검사의 유용성에 대한 기초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전적 소인이 80%나 차지한다고 하는 신장(키)의 경우 지금까지 유의하다고 발표된 50개 이상의 유전자마커를 모두 합해도 개인의 신장 변이를 4∼6% 정도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BRCA1처럼 유용성이 인정되는 항목은 아직 많지 않으며 보건복지부 고시에 의하여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

꼭 필요한 유전적 검사는 국가와 전문단체가 그 효능을 인정한 항목에 한해서 필요한 사람이 이용하면 된다. 유전체 검사는 절대로 미래의 건강을 예측하는 마법의 구슬이 아니며 불필요한 걱정거리만 안길 수 있다. 너무 앞서 나가다간 대장암 확률, 치매 확률 같은 불안한 숫자들이 당신의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 것이다.

당신의 건강을 최첨단의 값비싼 검사가 지켜 줄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라. 대신 지금 바로 신문을 덮고 동네 뒷산이나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시라.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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