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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비리, 국민 생명·안위를 개인의 사욕과 바꾼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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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정현 홍보수석, 모철민 교육문화 수석,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곽상도 민정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 수석은 이날 오후 정무수석에서 홍보수석으로 임명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원자력발전소 부품 비리와 관련해 여권이 연일 강도 높게 비리 근절을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3일 오전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며 “이번 원전 시험서 위조 사건은 결코 있어서도 안 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이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개인의 사욕과 바꾼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 원전이 멈추고 전력수급에 지장을 주는 것은 물론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엄청난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원전 비리를 강도 높게 비난해 온 박 대통령의 반응은 이날 회의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철저하고 신속하게 조사를 해서 그동안 원전 분야에 고착되어 있는 비리의 사슬구조를 새 정부에서는 원천적으로 끊어버릴 수 있도록 근원적인 제도 개선책을 철저히 마련하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국민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원자로 부품 비리와 함께 ‘원전 마피아’라고 불리는 폐쇄적인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며 “구조적·문화적 측면뿐 아니라 돈에 의한 부패의 사슬 등 비리가 생길 여지, 입찰 제도, 인증 과정 등 전반에 대해 근본적으로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부품의 제도·평가 과정뿐 아니라 평가기관 선정 과정까지도 재점검이 이뤄질 것”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관련 지수는 OECD 국가 가운데 하위권”이라며 “최근 원전비리, 교육비리, 보육비 등 보조금 누수, 사회지도층의 도덕성 문제 등을 보면 우리 사회에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비리나 사고가 단순히 감독 또는 처벌 강화로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제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 데는 3일 시작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과 관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앞서 이명박 정권에서 원전 비리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도 원전 수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응해 결국 더 큰 화(禍)를 키웠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핵연료 재처리 등과 관련된 원자력협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원전산업의 구조적 문제점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만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지 않으면 쉽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이날 “원전 비리에 대한 발본색원의 의지를 갖고 있다”며 “정부의 조치 결과를 봐서 필요하면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도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있어 검찰·감사원의 전면 조사가 마무리된 후 국회 상임위나 특별위원회 차원의 국정조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정치권에선 여당이 앞장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배경과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예산 예측 잘못 질타=박 대통령은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사업들을 보면 수요를 과다하게 예측해 타당성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것을 그대로 추진하거나 오히려 사업비를 증액해 추진하는 경우도 있었고 여러 부처에서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현장 여건이나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이미 필요성이 없어졌는데도 관행적으로 계속 추진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런 사업들만 제대로 조정해도 상당한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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