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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은 웃었고, 암네리스는 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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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개그 → 연기 → 노래 … 늘 새로워진 그
남우주연상 정성화

이제 누가 그를 개그맨이라고 부를까. 3일 더 뮤지컬 어워즈 시상식은 배우 정성화(38)의 존재를, 최정상에 우뚝 선 그를 뚜렷하게 인식시킨 자리였다. 2010년 ‘영웅’의 안중근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지난해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조승우가 이날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정성화는 장발장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파란색 제복에 흰 수염을 붙인 채였다. 이어질 축하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가 갑작스런 호명에 황급히 나왔다. 그럼에도 “3년 전 남우주연상을 탔을 때 종종 믿어달라고 말했고, 다시 화답해주신 심사위원께 감사 드린다”는 위트 있는 소감을 빼놓지 않았다.

 그가 처음 남우주연상을 탔을 때만 해도, 지나가는 바람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수상으로 그는 증명해 냈다. 정성화에게 뮤지컬은 개그맨의 한 차례 외유가 아님을, 뮤지컬 황태자의 자리 역시 어쩌다 얻은 자리가 아니었음을 말이다.

  3년간 그의 행보를 보자. 연극 ‘거미 여인의 키스’와 뮤지컬 ‘라카지’에서 여장 연기의 진수를 보였다. 능청스런 손짓·눈짓이 발군이었다. 이어서 파란만장한 역경을 헤쳐온 장발장으로 변신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노래는 고음에다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무대 위의 장발장 정성화는 소름 돋는 가창력을 선보였다. 정성화의 연기를 본 영국 오리지널팀이 “런던 무대에 데려가 세우고 싶다”고 감탄할 정도였다.

 정성화는 매력적인 바리톤 음색을 가졌다. 그가 깨끗한 진성으로 고음을 쭉 뽑아 올릴 때 소름이 돋는다. 따로 성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배운 게 전부다. 단단한 목소리를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레미제라블’을 위해 올 초 영국 런던에서 한 달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높은 톤의 노래가 대다수인 ‘레미제라블’을 소화해내기 위해서다. ‘라카지’에서 ‘연기하는 배우’로 거듭났다면, ‘레미제라블’에서 ‘노래하는 배우’를 각인시켰다.

 정성화에게도 ‘레미제라블’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는 이날 “공연을 본 지인들이 ‘너 정말 힘들겠다’고 한다. 진짜 힘들고 어려웠다. 그게 모두 스승이었다”고 했다. 가창력이 탄탄한 배우로 꼽혔던 그였지만 다섯 차례나 오디션을 통과해야 했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집요하게 수정 요구가 들어왔고, 그 주문에 맞춰 연습해 오디션을 보고 또 봤다.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마지막까지 올라온 배우들의 오디션 동영상을 보고 정성화를 지목했다. 첫 한국인 장발장의 탄생 스토리다.

  정성화는 10여 년 전 개그맨으로 얼굴을 알렸다. SBS 드라마 ‘카이스트’를 통해 연기자가 됐다. 2004년 ‘아이 러브 유’로 뮤지컬 무대에 발을 들였다. 이후 안중근을 연기했고, 게이가 됐다가 다시 장발장으로 변신했다. 옷을 갈아입듯, 그의 목소리와 눈빛은 무대마다 시시각각 변한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자신이 나아갈 길을 다짐한다. ‘장발장을 떠나자/장발장은 죽었다/새롭게 태어나리라’는 장발장의 외침은 뮤지컬 배우 정성화의 인생과 맞닿아 있다. 그 역시 늘 무대 위에서 죽고 그럼으로써 새롭게 태어나고 있기에.

유독 상복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위해 …
여우주연상 정선아

“2011년에도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션 됐고 (올해도) 다시 한 번 노미네이션이 됐는데 정말 기대를 안했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인사말을 준비도 못했어요.”

 도도한 그도 눈물을 감추진 못했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정선아(29)는 수상 소감을 말하기도 전에 눈물을 훔쳐야 했다. 정선아는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여배우지만 유독 상복이 없었다. 5, 6회 시상식에서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고배를 마셔야 했다. 2, 3회 여우조연상, 4회 인기스타상 등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러 차례 영광을 안았지만 여우주연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선아는 ‘아이다’의 암네리스 공주 역으로 다시 여우주연상에 도전했다. 2011년에 이어 두 번째 암네리스 공주였다. 화려함을 앞세운 2년 전과 달리 이번엔 암네리스 공주의 아픔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힘을 뺐다. 과도한 자신감을 버리자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해졌고 무대도 달리 보였다. 그는 “가벼워만 보였던 무대가 무거워졌다”고 했다. 캐릭터와 함께 배우 정선아도 성장한 것이다.

 정선아는 수상 소감에서 “중학교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꾸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처음부터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끼와 열정으로 했다. 돈과 명예가 아닌 한 무대를 위해 죽기 살기로 함께 한 스태프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에게 (제가) 작은 희망의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11년차 뮤지컬 배우 정선아는 또래 배우들에 비해 데뷔가 빨랐다. 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인 2002년 뮤지컬 ‘렌트’로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섰다. ‘사운드 오브 뮤직(2002)’ ‘맘마미아(2003)’ ‘겜블러(2005)’ 등에 출연하며 연기 폭을 넓혀왔다. 그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건 2006년. ‘지킬 앤 하이드’에서 루시 역을 맡은 그는 데뷔 5년 만에 차세대 뮤지컬 디바로 떠올랐다.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2007년 ‘텔미 온 어 선데이’라는 모노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새로운 연기에 도전했다. 그는 한 눈 팔지 않는 천상 무대 체질이다. 방송 등에서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지만 뮤지컬 무대를 뒤로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기업체의 행사 제의도 모두 거절해왔다. 데뷔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정선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주어진 역할에 모든 것을 바치는 배우’다. 지난해 ‘에비타’가 대표적이다. 금발의 에바 페론을 소화하기 위해 가발 대신 탈색을 택할 정도였다. 남자배우가 주축인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그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이유다.

 홍익대 고희경 교수(공연예술학과)는 “한국 뮤지컬에서 여성 파워를 보여주는 대표적 배우다. 캐릭터·가창력·연기 등 탄탄한 기본기를 자랑한다”고 평가했다.

 이제 정선아라는 이름 석 자는 티켓 파워를 상징하게 됐다.

국내 최대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가 지난해 발표한 ‘골든 티켓 어워즈’에서 그는 뮤지컬 분야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가 뜨면 티켓이 팔린다는 얘기다. 스타성과 실력을 겸비한 ‘블루칩’ 배우 정선아의 앞날이 더 기대되는 시점이다.

◆특별취재팀 문화스포츠 부문=최민우·이영희·강기헌·한은화 기자, 영상 부문=양광삼·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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