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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세계 8000만 명이 수련하는 태권도계에서 쓰레기·오물 투척 소동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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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강일구]

지난달 29일 부산 남부경찰서가 조직폭력배 32명을 붙잡았다. 주먹을 앞세워 빚을 대신 받아주고 ‘수수료’를 챙기거나 남의 돈을 떼먹은 혐의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그저 그런 뉴스였다. 피의자 중 40대 초반의 두 사람만 빼면 말이다. 한 명은 왕년에 한라장사를 두 번이나 지낸 씨름선수 출신, 다른 한 명은 권투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었다. 충격이다. 자기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스포츠맨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추락한 것일까. 우리 스포츠 교육, 특히 격투기·무술 교육이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두 피의자의 행동은 해당 스포츠 아닌 개인적 일탈 탓으로 돌리는 게 옳을 것 같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30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자 국기(國技)로 일컬어지는 태권도의 요람 국기원에서 믿어지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기원 신임 이사장을 선출하기 위한 임시이사회에 시민단체 대표라는 두 명이 들이닥쳐 쓰레기를 뿌리고 오물이 든 물통을 던지고, 책상을 뒤엎으며 회의 진행을 막았다. 아수라장이 펼쳐져 회의는 결국 중단됐다. 당시 동영상과 사진을 보면 과연 무도인(武道人)을 자처하는 이들의 행동인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일부 태권도인이 세력다툼을 벌이다 주먹질·발길질도 서슴지 않던 광경이 연상될 정도다.

 몇몇 태권도계 인사에게 물어보니 배경에 뿌리 깊은 파벌·이해다툼이 깔려 있다고 했다. 게다가 정치가 끼어들어 사태가 더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스포츠 단체도 그렇지만 태권도 단체도 정치인들이 탐을 내는 듯하다. 새누리당 김태환 의원이 대한태권도협회장이고, 같은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다음달 열리는 세계태권도연맹(WTF) 차기 총재 선거에 공식 출마했다. 게다가 문제가 된 국기원 신임 이사장직에 홍 사무총장이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도 돈다. 본인은 “아직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얘기된 것은 없다”고 말했지만. 혹시 생각이 있으시다면, 그 바쁜 여당 사무총장으로서 7월 WTF 총재 선거와 태권도의 올림픽 핵심종목 공인 여부가 최종 결정되는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그리고 10월 국회의원 재·보선을 모두 무난히 치를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격투기나 무술은 인성교육이 최우선이다. 그렇지 못하면 한낱 ‘폭력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우리 고유 무술인 태권도는 한류의 큰 자산이기도 하다. 국기원의 최대 수입원은 승품·승단 심사비인데, 지난해 심사비 수입 85억원 중 45억원이 해외, 40억원은 국내에서 발생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벌어들인 것이다. 전 세계 204개국 8000만 명이 수련하는 신성한 태권도계에 쓰레기·오물 투척 소동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은지 모르겠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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