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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당선·낙선운동 왜 규제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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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희대의 악법으로 첫손 꼽히는 것은 1920년부터 13년간 실시된 미국의 금주법이다. 금주법의 실시로 음주가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됐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금서목록이 베스트셀러 목록이 됐고, 금서라는 것이 없어진 후 사회과학도서 출판계가 경영난에 허덕였던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술의 제조는 금지돼 있음에 반해 술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 밀주 제조가 성행했고, 밀주 제조와 관련된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마피아들이 캐나다와 멕시코의 밀주 제조공장에서 대규모로 술을 생산해 자신들이 운영하는 지하 술집에서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겼고, 그 이익이 컸던 만큼 마피아 간의 분란으로 도시는 시끄러웠다.

또 밀주자들이 산업용 주정을 구입해 술을 만들어 수천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 선거때 음성정보 판치는 까닭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규제 만능의 발상은 우리의 선거법에서도 발견된다. 우리의 선거법은 과열혼탁선거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단체가 특정후보나 정책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유권자에게 알리는 것을 금지해 왔다.

이러한 우리의 선거법은 정치적 의사의 집단적인 표현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다원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물론 그 효과 역시 부정적인 것이었다.

건강한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금지된 그 빈 자리에 파고 든 것은 선거꾼들이 만들어 내는 음성정보였다.

선거 때가 되면 속칭 구전홍보반이라는 것을 만들어 누구는 여자 문제가 복잡하다더라, 누구는 진짜 영남인 혹은 호남인이 아니라더라와 같은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를 택시나 미장원의 손님을 가장해 입에서 입으로 퍼뜨려 왔다.

이러한 음성정보의 유포를 통한 선거운동의 가능성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 커졌다. 지난 대선에서도 속칭 '메뚜기'라고 불리는 '사이버 알바'들이 PC방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의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방법이 성행했다.

한 명의 네티즌이 장난삼아 올린 글이 재검표 사태를 초래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인터넷을 통한 음성정보 유포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비슷한 경력과 비슷한 공약이 실린 선관위를 통해 날아오는 홍보물 한 장으로 투표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에서는 그 위력이 더 클 수 있다.

결국 건강한 정보가 차단된 곳을 음성정보가 메워 왔던 점을 생각하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각종 단체가 자신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정책과 후보를 표명하고 왜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유권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단체들 상호 간에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과 후보를 두고 토론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가운데 유권자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후보와 정책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각종 단체가 의원들의 본회의는 물론 위원회에서의 법안에 대한 투표 기록을 검토분석해 그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당선운동과 낙선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원들이 민생현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그리고 자국 국민의 이익과 관련된 것이라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까지 소상하게 알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각종 사회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이 무엇인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대안들이 나와야 하는지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시민단체 자금·활동 공개돼야

물론 여기에도 함정이 따른다. 후보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사이비단체를 만들 수도 있으며 거대한 직능단체나 경제단체가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 일방적으로 정책을 홍보해 정보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역효과를 막기 위해서는 당선운동이나 낙선운동을 하는 단체는 자금 조성 내역과 활동이 명백하게 공개돼야 한다.

이제 정치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켜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의 손과 발을 모두 묶어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둔 채 의정보고라는 이름으로 정치인들이 원하는 정보만 국민에게 제공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김민전<경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