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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차머" 미국인들 오바마 부르듯 애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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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주미 대사를 끝으로 41년 공직 생활을 마감하는 최영진 대사는 “폭우나 태풍이 올때가 반드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의연하게 버티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주미 한국대사를 끝으로 외교관 생활 41년을 마무리하는 최영진(65) 대사는 시원섭섭한 표정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치른 첫 한·미 정상회담, 그러나 그 성과를 단숨에 날려버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의혹 사건. 그 한복판에 서 있었던 그는 “공직생활을 40여 년 하며 터득한 건 반드시 폭우나 태풍이 올 때가 있다는 점”이라며 “의연하게 버티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1년 3개월의 대사직을 마치고 30일 서울로 돌아가는 최 대사를 워싱턴 집무실에서 만났다.

 - 한국에서 보는 미국과 워싱턴에서 본 미국의 차이가 뭔가.

 “생각보다 상식선에서 움직인다. 한국에선 미국의 행동 이면에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랄까 걱정을 한다. 하지만 미국은 한·미관계나 북한문제 등에서 정석과 상식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 미국의 파트너들을 만날 때 가장 조심할 부분은 뭔가.

 “국민정서에 기초를 두고 하는 얘기는 전달이 잘 안 된다. 미국인들은 국익을 바탕으로 접근한다. 국익을 얘기해야지, 한국의 국민정서상 안 된다고 하면 이해를 못한다. 리더십이 정서에 좌지우지된다고도 오해할 수 있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측 평가는.

 “오바마를 미국 사람들은 ‘차머(charmer·매력있는 사람)’라고 표현하는데 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같은 표현을 썼다. ‘차머’ 두 사람이 만났다고들 한다. 정상회담 뒤 두 분만 산책을 하며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 아주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 한·미원자력협정에선 이견이 있었지 않았나.

 “2년 연장은 불가피했다. 미국은 핵 비확산 정책을 절대 포기 못하고 우리는 저농축과 건식재처리를 포기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걸 2~3개월 안에 풀기는 역부족이었다. 다시 협상을 시작하면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우리의 목표를 높여가는 식으로 접근해 풀 수 있다.”

 - 윤창중 전 대변인 사건을 언제 알았나.

 “대통령 일행과 (8일 오후) LA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트랩에 오르는 순간 미 국무부의 전화를 받고 처음 알았다.”

 - 기내 대책회의에도 참석했는데.

 “기내 협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의 성격을 파악해야 하는데 인턴직원의 국적이 어딘지 ‘팩트(fact·사실)’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팩트를 모르니 당시 대통령께 보고하기도 어려웠다.”

 - 중국의 부상을 미국에선 어떻게 평가하는가.

 “게임체인저란 말을 많이 한다. 무역에서부터 글로벌 전략,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거대한 사건으로 본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면 한국으로선 선택을 해야하는 곤란한 상황이 온다. 정치인들은 충돌이나 경쟁의 관점에서 본다. 하지만 다행히 행정부 쪽에선 협력과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협력을 앞세우는 만큼 우리로선 균형축 역할을 할 공간이 생긴다.”

 - 주미대사직을 하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박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이 성사됐을 때다. 처음엔 어렵다고 했다. 강창희 국회의장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이 미 의회 인사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총력전을 폈다. 박 대통령이 유교권 국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란 설득이 주효했다.”

 - 후배 외교관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윈스턴 처칠이 어느 강연에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짧은 연설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워싱턴=글·사진 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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