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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알록달록 달걀, 쿨리치, 파스하 … 금식 마치고 성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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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East news]

부활절은 러시아에서 중요한 종교 축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 러시아 사람들은 성묘하는 데 더 익숙하다. 모두 소련 체제와 낡은 습속이 결합해 만든 잘못이다.

올해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5월 5일에 부활절을 맞았다. 부활절은 정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축일이지만 소련 시절에는 부활절 행사 참석이 금지돼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러시아의 부활절 축일에는 소련 시절 새롭게 생겨난 전통들이 공존한다. 물론 러시아 정교회는 새로운 전통을 환영하지 않는다.

부활절 기념행사는 십자가 행진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성야 미사로 시작된다. 십자가 행진 시 성직자들은 성상화를 모시고 기도문을 외우며 성당 건물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그 뒤를 신자들이 따른다. 이 의식에 참석하는 사람 중에는 매주 교회에 나가는 신자들뿐 아니라 1년에 단 한 번 부활절에만 교회에 가는 신자들도 있다. 모스크바 구세주 성당 한 곳만 해도 올해 부활 전야 미사에 참석한 사람은 5000여 명에 달했다.

성당 미사를 마치는 것으로 사순대재(四旬大齋)는 끝이 나고 신자들은 금식에서 풀려나게 된다. 이제 러시아 정교신자들은 물감으로 색을 입힌 부활절 달걀, 부활절 빵 ‘쿨리치’, 러시아식 코티지 치즈와 건포도로 만든 부활절 케이크 ‘파스하’를 준비한다. 이 음식들은 교회 미사에서 축성을 받는다. 그리고 축성을 받은 달걀 한 알을 이듬해 부활절까지 보관하는데 축성받은 달걀은 1년 내내 부패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러시아 정교회 최대 가족 명절 ‘부활절’을 맞아 정교회 신부가 축복해 주는 모습. [AFP/East news]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여겨 금지시켰던 소련 시절에도 사실상 모든 가정에서 부활절 달걀을 장식했다. 이러한 의식에 특별히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부활절은 모든 이들이 기념하는 축일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러시아 정교회의 오랜 전통은 아니다. 정교회 신부 알렉산드르는 이렇게 말한다.

“부활절에 친지의 묘를 찾아 그곳에 부활절 달걀과 쿨리치를 놔두는 것은 정교회 전통이 아닙니다. 소련 시절 생긴 이교도적 전통이지요. 참된 신앙이 탄압받게 되면 언제나 복잡한 미신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부활절에는 반드시 성당에 오셔야 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거의 정교신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정작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지요. 그러나 요즘에는 예전 같으면 절대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교회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기적이 아닐는지요?”

부활절 전야에 교회를 다녀온 사람들은 사순대재를 마감하며 1년 중 가장 성스러운 날의 도래를 기념하기 위해 푸짐한 식사를 준비한다.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부활절엔 전통에 따라 식탁을 쿨리치 빵과 물감으로 색칠한 달걀로 꾸미고 가족과 함께 축일을 맞는다. [AFP/East news]

하지만 사순대재의 금식, 특히 교리에 따른 엄격한 금식을 한 경우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인체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가려서 섭취량을 서서히 늘려야 한다. 의사들은 금식 후 갑자기 기름기 많은 육류나 육류와 빵을 함께 먹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부활절 명절은 ‘예수 부활 대축일’을 시작으로 일주일 동안 계속된다. 일주일 내내 성당에서 부활 축하 미사를 집전한다. 부활절 기간에 장례를 치르더라도 장례식은 부활절 교리에 따라 예수 부활의 기적을 찬미하는 기도로 가득 찬다.

특히 부활 주간에는 성당 주임신부의 허락을 받아 누구든 종탑에 올라가 종을 울릴 수 있다. 컴퓨터프로그래머인 세르게이의 말을 들어보자.

“제 아이들은 종 치는 것 때문에 부활절이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친구들과 가족끼리 모여 함께 성당에 가지요. 신부님 중 한 분에게 다가가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종을 울리도록 허락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종을 칠 때면 정말 잊지 못할 감동을 느낄 수 있어요. 아이들도 정말 좋아하고요. 물론 아이들을 잘 살피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종탑이 정말 높잖아요.”

블라디미르 예르코비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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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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