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들어오려던 탈북 청소년 9명(남자 7명, 여자 2명)이 라오스까지 왔다가 27일 중국으로 추방돼 강제 북송될 위기에 놓였다. 15~22세인 탈북 청소년들은 굶주림을 이기기 위해 함경북도 접경에서 중국을 넘나들던 일명 꽃제비다. 서로 모르던 사이인 이들 9명은 한국인 선교사 부부를 만나 1년 전쯤부터 단둥(丹東)에 머물다가 지난달 한국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선교사 부부의 인솔로 단둥에서 라오스 국경 근처인 중국 윈난(雲南)성의 한 마을로 이동한 이들은 지난 9일 무사히 국경을 넘었다. 단둥을 떠난 지 10여 일 만이었다. 하지만 10일 봉고차를 타고 한국대사관이 있는 수도 비엔티안으로 이동하다가 비엔티안에서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우돔시에서 라오스 공안의 불심검문에 걸렸다. 이럴 경우 탈북지원활동가들은 사건을 현장에서 ‘조용히’ 해결하는 게 보통이지만 경험이 없던 선교사 부부가 우리 대사관에 신고를 했다. 문제는 여기서 벌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라오스 현지 북한인권활동가는 “대사관 신고 후 현지에 탈북자에 관한 소문이 나면서 북한 공관이 전면에 나서 움직였다”고 말했다.
평소 일주일 전후해 신병 인도를 해 주던 라오스 측이 탈북 청소년들과 선교사 부부를 계속 보호소에 억류시켰다. 16일부터는 라오스 당국이 이들을 수도로 옮겨 이민국에 붙들었다. 20일 라오스 측이 탈북 청소년 인계의사를 비치며 분위기가 바뀌는 듯했지만 23일 갑작스레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이후 라오스 측은 27일 강제 추방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억류 18일 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현지 대사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현지의 한 북한인권활동가는 “여기 나와 보면 알겠지만 대사관에서 탈북자들에게 무슨 관심이 있느냐”며 “북한과의 탈북자 외교에서 완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 다른 활동가는 “북한 공관이 라오스 정부에 외교적 압박을 가한 것 같다”며 “이들이 성인이 아니라 미성년자들이라 북한의 신병 인도 요구를 라오스 정부도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탈북 청소년 9명의 운명은 이제 중국이 쥐게 됐다. 이미 탈북 경험이 있어 북송될 경우 ‘괘씸죄’로 극형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현지 활동가들은 “탈북자들은 현재 중국 윈난성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은 탈북자 문제에 있어 북송을 원칙으로 해 온 데다 북한 측 관료들이 (중국) 여행허가증을 가지고 이동해 중국도 북한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일하게 기대를 걸 수 있는 요인은 6월로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도 정상회담을 신경 쓰고 있고 강제 북송이 정상회담에 짐이 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공식·비공식 루트를 활용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다면 중국의 배려를 이끌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이달 초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끔찍한 일들을 겪는 것으로 안다”며 “중국은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 주기 바란다”고 했었다. 외교부는 27일 윤병세 장관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연 뒤 전담팀을 구성해 강제 북송 저지에 나섰다. 주중 한국대사관 총영사부 관계자는 “ 모든 영사인력을 동원해 북송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