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6억 절도 피의자 1년 추적 끝에 검거 회수 못한 24억 찾아 국고 귀속할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심종식 아산경찰서 강력계장이 피의자 김씨의 범행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회사 돈 8000억여 원의 불법 대출을 주도한 혐의로 수감 중인 김찬경(57)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비자금 중 56억원을 훔친 측근이 1년여 만에 붙잡혔다. 아산경찰서는 16일 김 전 회장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측근인 김모(57)씨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피의자 김씨는 지난 1년간 휴대폰, 신용카드 등 일체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용의주도한 수법으로 경찰들의 감시망을 피해 다녔다.

아산경찰서는 1년간의 끈질긴 수사 끝에 김씨의 도피를 도왔던 내연녀 송모(45)씨의 휴대전화를 추적했고 15일 새벽 김씨를 붙잡았다. 심종식 강력계장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되돌아보고 추후 수사 방향을 짚어본다. 다음은 심 계장의 일문일답.

-수사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일단 피의자의 도주 행각이 아주 치밀했다. 전문 절도범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겼다. 신용카드나 휴대폰은 물론이고 의료보험까지 타인의 것을 빌려 사용했다. 이용 수단 역시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고 다녔다. 자신의 거처는 경기, 춘천 등 세 곳을 마련해놓고 한 곳은 돈을 숨기는 곳으로 썼으며 두 곳은 자신의 은신처로 사용했다. 또한 성형(보톡스 2차례)까지 해서 얼굴을 식별하기 어려웠다. 여러 경찰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잠복근무를 펼친 탓에 몸도 마음도 힘들었었다.”

-56억 중 회수된 돈은 얼마이며 사건의 전말을 얘기하자면.

 “회수된 돈의 액수는 현금 31억9300만원이다. 훔친 돈으로 산 골프채 세트, 고급 의류 등도 증거물로 압수했다. 김씨는 지난해 4월 미래저축은행 법인 소유 랜드로버 차량 트렁크에 있던 5만원권 56억원(A4용지 박스 10개 분량)을 훔쳐 자신의 쏘렌토 차량에 싣고 달아났다. 김씨는 이날 낮 경남 거창 석산에 도피 자금 2억원을 뺀 나머지를 비닐에 넣어 땅에 묻었다. 김 전 회장 측 소유였던 이 석산은 김씨가 2000년부터 2년 여 간 관리인으로 일했던 곳이다. 두 달간 용인·분당·충주의 여관을 돌던 김씨는 지난해 6월 성남에 숨어 지낼 17평 P오피스텔을 얻었다. 이어 4개월 뒤인 10월 말 땅에 묻었던 돈을 꺼냈고, 성남에 또 다른 L오피스텔을 얻어 장롱과 침대 밑에 돈을 숨겼다.”

-피의자 김씨는 어떤 인물인가.

 “김 전회장과는 절친한 사이다. 초·중학교 동창이며 김 전 회장이 별장처럼 쓴 아산 외암민속마을 안 건재고택(건재 이상익이 고종 6년에 지은 집·중요 민속자료 233호)의 관리인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방면에서 김 전 회장을 도왔던 인물이다. 김 전 회장이 자신의 가족 이외에 가장 믿고 있던 측근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의리를 져버리고 돈을 훔친 까닭은.

 “김 전 회장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 피의자에게 자신이 밀항하겠다는 정보를 흘렸다고 한다. 김씨는 ‘밀항하면 평생 곁을 지켜오던 나는 어떻게 되는가’라고 생각하며 실의에 빠졌다. 결국 횡령한 돈 일부가 김 전 회장의 차에 보관돼 있다는 것을 알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돈을 훔치고 난 뒤에는 이렇게 액수가 큰 줄 몰랐다고 한다.”

-내연녀 송씨의 관한 얘기를 한다면.

 “송씨는 중국교포로 김 전회장 소유의 골프장 식당 주방에서 일하던 여자였다. 피의자 김씨는 내연녀 송씨와 2년 전부터 가까운 사이였다. 우리 경찰에서는 김씨에게 분명 내연녀가 있을 것이라 예상해 함께 수사를 벌여왔다. 내연녀 송씨는 김씨로부터 매달 평균 1000만원씩 받아 고가 백화점에서 명품·핸드백 등을 구입하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물론 모두 현금만 써서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

-김씨와 송씨를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 단서는.

 “송씨가 자주 가던 백화점 명품샵에서 핸드폰 번호 등의 고객 정보를 남겼고 결정적으로 포인트(고객 포인트)를 쓴 것이 단서가 됐다. 그리고 송씨의 휴대전화의 통화내역을 추적한 끝에 김씨가 아직 국내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성남 분당에 있는 P오피스텔에 잠적해 김씨를 붙잡은 것이다. 내연녀를 끝까지 추적했던 것이 주요했다고 본다.”

-앞으로 어떤 조사를 중점으로 수사할 계획인가.

 “김씨로부터 현금 32억여 원을 회수했지만 나머지 24억여 원의 행방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머지 돈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김씨는 24억원을 유흥비로만 썼다고 했지만 그 많은 돈을 유흥비로 쓰기에는 의심 가는 점이 많다. 특히 송씨가 변호사를 세 명이나 고용한 것을 봐도 그렇다.”

-변호사를 그렇게 많이 고용했나.

 “그렇다. 변호사를 한 명만 고용해도 수 천 만원이 드는데 세 명이나 고용한 것을 보면 나머지 돈을 어딘가에 분명 숨겨뒀을 것이라 예상된다.”

-현재 김씨의 상태는 어떠한가.

 “변호사를 세 명 고용한 뒤에는 아주 여유가 넘친다. 조사에 순순히 응하기는 하지만 깊은 질문이 들어가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회피하기 일쑤다. 징역만 살고 나오면 숨겨둔 돈으로 호위호식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끝으로 한 말씀.

 “김 전회장의 동생이 얼마 전 참고인 조사를 왔는데 피의자 김씨를 감싸더라. 아마도 김 전회장의 죄목이 더 추가될까 두려워 그러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돈은 김 전 회장의 돈도 아니며 김씨나 송씨의 돈도 아닌 국민의 피와 땀이 묻은 돈이다. 꼭 나머지 돈의 행방을 찾아 국가로 귀속시키도록 하겠다.”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