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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문구점 점원하며 영어로 대화, 학생들 회화 실력 쑥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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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초 영어어머니회 회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도서관에서 학생들에게 영어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다.

학부모들이 5년간 재능기부 활동을 펼치는 학교가 있어 교육기부 활성화에 좋은 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학교 측의 권유나 부탁에 떠밀려 마지 못해 참여하는 일회성 행사나 자원봉사가 아닌 자발적으로 나서 아이들을 위한 영어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쏟으며 봉사하고 있는 엄마들의 재능기부 현장을 찾았다.

“How may I help you?(무엇을 도와줄까요?)” “I want to buy a bandage.(밴드를 사러 왔습니다.)”

23일 천안 백석초등학교 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건물을 연결하는 복도(레드 홀)에 줄지어 섰다. 이곳에는 천안에서 유일하게 교내에 문구점이 있다. 복도까지 길게 줄지어 선 학생들은 점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연필이나 볼펜, 공책 등 학용품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대화는 영어로 해야 한다.

영어어머니회가 운영하는 영어문구점.

영어문구점은 월~목요일 3~6학년까지 반별로 정해진 요일에 맞춰 운영한다.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학용품은 일반 문구점의 절반 가격이면 살 수 있다. 학생들은 현금이 아닌 학기마다 학교에서 나눠준 ‘백석 머니’로 구입해 별도의 돈은 들지 않는다. 외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해 영어회화를 능숙하게 하는 학생들이 가끔 있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수업시간 외에는 평소 영어회화를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이다. 문구점을 운영하는 주체는 이 학교 학부모들이다. 처음엔 아이들이 쑥스러워 문구점 방문을 꺼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녀를 둔 엄마들이 한결같이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자 서로 간의 서먹함은 사라지고 현재는 학생 모두 자신있게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문구점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영어회화 외에도 날씨와 그날의 기분 등 안부를 묻기도 하며 웃었다. 처음에는 연필과 연습장 등 간단한 학용품만 판매했지만 현재는 풀, 테이프, 나침반을 비롯해 휴대용 화장지와 상처를 감싸는 밴드까지 40여 가지에 이른다.

매주 월요일 스터디로 영어회화 지식 공유

영어문구점에서 사용하는 화폐.

백석 영어문구점은 20여 명의 어머니 회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요일 별로 조를 구성, 일주일에 한 번 점원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학생과 영어로 대화하며 문구를 구입할 수 있도록 문구점에서 필요한 다양한 표현을 비롯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대화법을 공부하고 있다.

영어어머니가 봉사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체 학년을 대상으로 북카페에서 영어동화를 읽어주는 스토리텔링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영어스토리텔링을 위해 회원들은 매주 모여 아이들이 읽기에 가장 적합하고 재미있는 내용의 도서를 선정,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참여에 적극적인 아이에게는 작은 선물도 증정하는 등 깜짝 이벤트도 마련해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고 있다.

영어어머니회는 지난 2009년 학부모들의 교육참여와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취지로 결성돼 올해로 5년째 교육기부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회원 중 전·현직 영어강사가 있지만 회원 대부분은 영어에 관심이 없었던 평범한 주부들이다. 영어에 대한 관심만으로 학생들의 영어체험을 도울 수 없어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월요일마다 스터디 활동을 통해 영어회화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가수민(6년)양은 “저렴한 가격에 문구용품을 살 수 있고 편안하게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 문구점을 찾는 날이 즐겁다”고 말했다. 최형원(43) 영어어머니회 회장은 “지원이 크게 줄어 문구점을 운영하지 못할 상황도 처했지만 학부모들이 의지가 강해 현재까지 운영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이 학습한 영어표현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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