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태준·현제명 … 예술가 혼 깃든 '대구 몽마르뜨르 언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가곡 ‘동무생각’의 배경인 청라언덕에는 100년 전 선교사 주택과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져 있다. 22일 현장 체험학습을 나온 대구 구남보건고 학생과 교사가 ‘동무생각’을 합창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22일 오전 10시 대구시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 조용하던 언덕길에 가곡 ‘동무생각’이 울려퍼졌다. 대구 구남보건고 학생 20여 명이 손을 잡고 화음을 만들어냈다. 현장 체험학습에 나선 이 학교 사진동아리 회원들이다. 사진 촬영을 나왔다가 중학교 때 배운 노래를 합창한 것이다. 민은혜(15·1년)양은 “지금까지 노래를 부르기만 했지 가사에 첫 사랑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지는 몰랐다”며 신기해 했다. 동아리 담당 구달이 교사는 “청라언덕에 얽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으니 체험학습 장소를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동무생각’의 작곡자는 박태준(1901~86), 작사가는 노산 이은상(1903~82)이다. 가사에 나오는 청라언덕은 푸른(靑·청) 담쟁이(蘿·라)가 우거진 언덕이란 뜻이다. 백합 같은 내 동무는 박태준이 짝사랑했던 여고생이라고 한다. 당시 박태준은 담쟁이가 우거진 이곳을 지나 서쪽에 있는 계성학교(현 계성고)에 다녔다. 언덕 아래에는 신명여학교(현 신명고)가 있었다. 그는 등하굣길에 본 한 여학생을 짝사랑했다. 이후 경남의 한 고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동료인 이은상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은상은 이를 노랫말로 썼고 박태준에게 곡을 짓도록 했다고 한다. 동산의료원과 대구 중구문화원은 2009년 이곳에 ‘동무생각’ 노래비를 세웠다. 이는 오페라로 제작돼 지난해 10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무대에도 올랐다.

청라언덕이 관광지가 된 배경이다. 부산에서 왔다는 이현숙(55·여)씨는 “이곳에 오니 여고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청라언덕에는 또 다른 예술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역시 계성학교를 다닌 음악가 현제명(1902~60)이다. 그는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으로 시작하는 ‘그집앞’과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라는 가사의 ‘고향생각’ 등 주옥같은 가곡을 만들었다. 대구시는 그가 이 길을 통해 학교에 다녔을 것으로 보고 언덕에 있는 수령 200여 년의 이팝나무를 ‘현제명 나무’라고 이름지었다.

청라언덕에는 붉은 벽돌로 된 100여 년 전 건물이 많다. 옛 선교사들의 사택이다. 세월을 말해 주듯 아름드리 향나무·느티나무·벚나무·느릅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언덕길 옆에는 대구의 원조 사과나무 2, 3세 목도 있다.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은 “청라언덕은 예술가의 혼이 깃든 대구의 몽마르뜨르 언덕”이라며 “이를 알리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어 대구의 대표적인 근대문화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글=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