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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사장 덕 봤나 … 금융 공기업 초임 2년 새 26%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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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금융 공기업은 대학생은 물론 이직을 준비하는 구직자에게도 가장 가고 싶은 직장이다. 바로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근무여건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독점적 지위와 역할을 줘서 이익을 내는 곳에 이런 혜택을 주는 것이 정당하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가 공공기관 통합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잡알리오의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산하 12개 금융 공기업 신입사원의 올해 평균 연봉은 3746만원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1년(2979만원)보다 25.7% 오른 금액이다. 같은 기간 대기업 초임 인상률 7%(취업포털 사람인 조사)를 훌쩍 뛰어넘는다. 신입사원 초임은 한국정책금융공사가 431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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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초임이 뛴 것은 지난 정권에서 공기업 초임을 삭감한 영향을 받았다. 정부는 2009년 공기업의 고임금·고복지 구조를 바로잡고, ‘일자리 나누기’를 활성화시키고자 주요 공기업의 신입사원 급여를 줄였다. 대신 채용을 늘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 효과가 미미하고, 고액 연봉에 대한 감시의 끈이 느슨해지자 슬금슬금 초임을 다시 올린 것이다. 금융소비자원 조남희 대표는 “당시 최대 20% 정도 삭감된 것을 감안하면 결국 초임이 원상 회복 이상 수준으로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직원들의 평균 연봉도 월급쟁이로는 최상위급이다. 금융 공기업의 지난해 직원 평균연봉은 8700만원으로,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연봉(7000만원)보다 24% 많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의 평균 연봉은 6850만원이다. 한국거래소의 평균 연봉이 1억140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한국예탁결제원(1억100만원)·한국투자공사(9800만원)·코스콤(9500만원)도 평균연봉이 1억원 안팎이었다.

 복지 수준도 단연 돋보인다. 감사원 등에 따르면 한국예탁결제원은 업무 연관성을 따지지 않고 매월 전 직원에게 통신비 명목으로 6만5000~8만5000원을 지급했다. 데스크톱 컴퓨터와 별도로 노트북을 임대해 주기도 했다. 한국거래소는 현금과 다름없는 ‘복지 포인트’로 받는 돈이 200만~300만원에 달한다. 코스콤은 지난해 총 82억원을 복리후생비로 썼는데, 이 중 ‘경로효친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지급된 금액이 28억원이나 된다. 1인당 418만원 정도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임민욱 팀장은 “요즘 젊은 층은 사회적인 성공보다는 개인적인 삶의 여유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공기업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특히 금융 공기업은 명문대 출신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이런 고임금·고복지 혜택은 비단 금융 공기업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일반 공기업 가운데서도 억대에 가까운 높은 연봉을 지급하는 곳은 수두룩하다. 전력거래소는 310명 직원 가운에 100명가량이 연봉 1억원이 넘는 ‘억대 연봉자’다.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은 억대 연봉자의 비율이 30%에 달한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상당수 직원이 차장급 이상 인력이고, 각종 야간작업으로 수당이 많은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신입사원 연봉의 경우 한국마사회는 2011년 3109만원에서 올해 4407만원으로 2년 새 41.7%나 올랐고, 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무역보험공사·광주과학기술원도 신입사원의 초봉 상승률이 30%가 넘었다. 근속연수도 길다. 경영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삼성·현대차·포스코를 비롯한 10대 그룹의 93개 상장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9.36년에 불과한 반면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9개 공기업의 평균 근속연수는 15년이다.

 이젠 청소년들조차 공기업을 좋은 직장 ‘첫손’에 꼽고 있다. 통계청이 15~24세 청소년층의 의식을 조사한 ‘2012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8.3%는 국가기관, 13.1%는 공기업을 선호 직장으로 꼽았다. 특히 중학생(31.8%)의 선호도가 고등학생(30.2%), 대학생(26.5%) 보다 높았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일에 도전해야 할 청소년들이 벌써부터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특혜의 ‘진원지’로 낙하산 인사를 꼽는다. 전문성이 부족하지만 정권과의 관계로 임명된 공기업 사장은 노조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임단협에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고, 이것이 필요 이상의 임금 인상을 불러와 방만경영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새로 사장이 취임을 하게 되면 노조에서 출근 저지투쟁을 푸는 대가로 임금을 올려 달라는 이면 계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특히 최근에는 임금같이 드러나는 혜택보다는 복지·휴가처럼 보이지 않는 혜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다 보니 공기업에서 취업 공고를 내면 경쟁률이 수백 대 1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토익 만점자는 기본이고 변호사·회계사 등 자격증 소지자까지 스펙도 화려하다. 권혁철 선진화개혁추진회의 사무처장은 “공기업은 업무 강도도 약하고 글로벌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높은 임금을 주고 우수한 인재를 배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해”라며 “젊은이들이 도전을 꺼리면서 ‘기업가 정신’이 악화되면 일본처럼 경제가 활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별취재팀=김창규·주정완·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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