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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직장의 신' 무 팀장이 꿈꾸던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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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윤호
논설위원

“회사도 돈을 버는 곳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좀 모자라면 끌어주기도 하고 좀 채워주기도 하고 그렇게 같이 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얼마 전 끝난 TV드라마 ‘직장의 신’에 나온 대사다. 무정한 팀장이 미스 김에게 고정도 과장을 짐짝 취급하지 말라며 한 말이다. 또 정리해고 직전 미스 김의 도움으로 살아난 고 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혼자서는 못 가 김양.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작은 바늘도 가고 큰 바늘도 가고 그렇게 다 같이 가야 갈 수 있는 거지.”

 닭살 돋는다는 분도 있을 듯하다. 그래도 명대사로 꼽는 시청자들이 많다. 무 팀장은 직원들에게 가족이다, 식구다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에게 회사란 ‘한 솥밥 먹는 공동체’다.

 그의 의식은 기업보다 협동조합에 딱 어울린다. 협동조합이란 조합원이 십시일반으로 출자해 사업을 도모하는 조직이다. 자본가가 거금으로 세운 기업과 여러 모로 다르다. 조합엔 대주주도, 오너도 있을 수 없다. 1인 1표의 조합원들이 민주적으로 운영한다. 경영하는 이는 사장이 아니라 경영노동자다. 이익이 남으면 나눠 갖고 손해 보면 서로 고통을 분담한다. 탈퇴는 있어도 해고는 웬만해선 없다. 기업이 왕정이라면 조합은 공화정이다. 무 팀장이 꿈꾸던 직장은 바로 이것 아닐까.

 그런 이상적인 일터의 모델로 요즘 국내에서 뜨는 게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이다. 협동조합 붐을 타고 정치인들도 몬드라곤에 대해 뭔가 아는 척하는 분위기다.

 산골마을 몬드라곤은 전체가 수많은 협동조합의 연합체로 돼 있다. ‘용의 산’이란 뜻의 몬드라곤은 내란과 빈곤, 탄압과 차별에 시달리던 보잘것없는 촌이었다. 그러다 1941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라는 젊은 신부가 부임해 기적의 씨앗을 뿌렸다. 그는 마을사람들에게 노동의 존엄성과 연대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또 기술을 가르쳐 엔지니어를 키웠다. 이게 협동조합의 인적 인프라였다. 56년 23명으로 출발한 협동조합이 지금은 258개로 울창한 가지를 뻗었다. 경공업에서 기계·유통·금융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몬드라곤의 성공은 기적으로 통한다.

 몬드라곤이 국내에 알려진 건 80년대 말부터다. 90년엔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가 한겨레신문에 현지 방문기를 써 화제가 됐다. 그 뒤 몬드라곤의 기초지식은 어느 정도 공유된 상태다. 우리의 관심을 반영해서인지 몬드라곤도 홈페이지에 한국어 자료를 띄우고 있다.

 그러나 이 모델을 직수입할 수 있다고 본다면 순진한 낭만주의다. 몬드라곤은 저절로 큰 게 아니다.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진화한 결과다. 호세 마리아 신부의 종교적 지도력, 바스크인들의 유대감, 고립된 지리조건 등이 갈라파고스처럼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어 냈다. 외부인에겐 쉬워 보여도 실제론 어려움이 많았다. 파업도 있었고, 불황기엔 노동자은행이 개입해 구조조정도 했다. 물론 유휴인력을 재배치해 해고는 피할 수 있었다. 또 몬드라곤의 규모도 썩 크진 않다. 총자산은 47조원. 현대중공업보다 조금 작다. 연간 매출은 약 20조원. 기아자동차의 절반도 안 된다. 근로자 수는 8만4000명으로 기아차의 2.5배다. 대기업의 대안으로선 좀 약해 보이지 않나.

 그렇다고 몬드라곤이 그저 구경거리만은 아니다. 제한된 지역이나 동질적 집단에선 해볼 만한 모델이다. 다만 중요한 전제가 필요하다. 가늘더라도 길게, 그리고 모두 함께 가자는 상부상조 정신이 그것이다. 또 큰돈 벌 욕심일랑 싹 버려야 한다. 몬드라곤에선 임금격차가 6 대 1로 제한된다. 주식상장으로 떼돈 벌 길도 없다. 이 조건을 충족해도 몬드라곤의 꽃이 우리 땅에서도 100% 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근로자가 모두 허허 웃으며 범사에 감사해 하고, 만족해 하는 ‘직장의 신’ 무 팀장이라면 모를까.

남윤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