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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해 방중은 北 태도 변화 아닌 처세적 전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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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호 05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중한 최용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났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계기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냉정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최용해의 방중은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또 다음 달 하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 대한 중국 측의 기대는 뭘까. 중국 지도부의 숨은 브레인 왕이저우(王逸舟·56)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24일 오전 그의 연구실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그는 최용해의 방중에 대해 “북한이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기보다 마지막 우방인 중국마저와도 사이가 나쁘면 안 되겠다는 북한의 ‘처세적 전술’의 변화”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중국 지도부의 외교 브레인 왕이저우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최용해의 방중은 북·중 어느 쪽이 먼저 제안했나.
“중국은 김정은 집권 후 그를 초대했다. 그 후 장성택이 베이징에 왔고, 리젠궈(李建國) 정치국원이 지난해 말 대북 특사로 평양에 갔다. 내가 보기에 이번엔 북한이 제안한 것이다. 김정은이 중국에 최근 취한 행동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측면이 있다.”

-최용해 특사의 방중을 어떻게 보나.
“그가 핵무기 포기나 6자회담 복귀 같은 카드를 갖고 온 게 아니라고 본다. 긴장 정국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다. 중국마저 화나게 해선 안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거다. 북한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게 아니어서 계속 관찰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은 중국을 매개로 주변국과의 악화된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하거나 한반도의 긴장을 낮추고 대화로 나아가겠다는 방향으로 좀 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중국은 북한이 조성해 온 긴장 정국에 대해 많이 불편하다. 만약 북한이 그런 진일보한 약속을 하지 않는다면 최용해의 방중은 절반의 성공만 거둘 것이다. 그럴 경우 김정은의 중국 방문도 언제 성사될지 기약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방중 시기는.
“불확실하다. 만약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한다면 속히 실현될 수 있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중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나.
“북·중 관계는 많은 사람이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더 가깝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기본 정책은 ‘점진적’으로 동맹 관계를 정상국가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1992년 한·중 수교 때부터 사실상 설정된 방향이다. 그것은 북·중이 단지 혈맹이라는 이유로 이전과 같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 쪽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강조하건대 이건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과정이다. 이는 한·미의 기대와 달리 중국이 단기간에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한·미가 북한에 ‘외과수술적 공격(surgical strike)’을 가한다거나 전쟁을 통해 체제 변혁을 시도한다면 중국은 개입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한다’는 관찰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세 가지 감정의 변화를 거쳤다. 첫째는 저렇게 어린 사람이 지도자가 돼서 잘될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둘째는 김정은이 ‘다시는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는 발언을 하며 경제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 줬을 때 희망을 가졌다. ‘아버지와는 다른 지도자가 되겠구나’ 하는 기대였다. 그래서 중앙·지방정부 차원에서 북한 간부들의 경제지식 배양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셋째는 최근에 생긴 건데 북한의 도발적인 모습에 화를 내고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 가능성은 있나.
“중국은 급하지 않다. 우선 북한은 중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아니다. 경제부터 천천히 안정을 찾아나가면 언젠가 변화될 것이라고 본다. ‘과숙체락(瓜熟蒂落·수박이 익으면 저절로 땅에 떨어진다)’이란 말이 있다. 미국인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인권이 없는 독재국가를 중국이 어떻게 인내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하긴 미국 사람들 눈엔 중국에도 북한과 비슷한 인권 문제가 있지 않은가. (웃음)”

-북한의 핵·미사일 해법은 뭔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다. 첫째는 북·미 관계 정상화다. 둘째는 주변 강대국들이 체제 안전을 보장해 주는 거다. 셋째는 경제 원조다.”

-시진핑 시대에 대북정책과 한반도 전략 구상은 어떻게 바뀔까.
“시진핑 시대에는 내정(内政)이 외정(外政)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에도 뭔가 시사하는 점이 있을 거다. 지도자들의 나이도 젊고 중국이 동원할 수 있는 물질적 자원도 많다. 나는 중국 외교관들에게 강의할 때마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좀 더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미동맹의 한 축인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하길 원하나.
“싱가포르 모델을 참고하라. 싱가포르는 작지만 동남아의 평화와 안정에서 중심축 역할을 한다. 국제안보포럼인 ‘샹그릴라 대화’를 주관하고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사무국이 탄생할 때 주도적 역할을 했다. 최근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난사(南沙)군도에서 각국이 지켜야 할 행동규범을 만드는 걸 선도했다. 한국도 미·중 두 강대국의 갈등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느 때는 미국에 가깝게, 어느 때는 중국과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중국이 구상하는 한반도 안정·평화에 남북 통일 가능성도 포함되나.
“통일은 남북한이 먼저 주도하는 게 중요하다. 강대국에 너무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통일이 언제쯤 가능할까요?’라고 물었더니 ‘20~30년 걸릴 것’이라고 대답하더라. 통일에 대한 장기적인 로드맵을 한국 대통령이 갖고 있는 데 대해 감탄했다. 한국이 먼저 통일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고 주변 국가들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6월 하순 국빈 자격으로 방중한다. 중국 측의 기대는.
“중국 쪽에선 이명박 정부 때 대중 관계를 홀대했다는 느낌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먼저 양국 고위급 인사 사이의 교류와 신뢰 쌓기를 강조하고 싶다. 둘째, 한국이 대북 관계에서 ‘창의적인 접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건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 결정할 일이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관계를 전격적으로 개선한 걸 나는 높이 평가한다. 셋째, 양국 고위급 군인사들 사이에 인간적이고 솔직하고 긴밀한 교류가 많았으면 좋겠다. 넷째, 문화 교류 증진인데 이건 ‘한류’가 중국에서 유행하고 중·한 양쪽을 오가는 유학생들이 가장 많아 딱히 덧붙일 말은 없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 영토분쟁 같은 우경화의 대응방안은 뭔가.
“일본이 저러는 건 과거 아시아에서 일본이 가졌던 종족적 우월감이 후발주자인 한·중에 추격당해 생기는 심리적 기제도 있다고 본다. 우리가 과잉반응을 하거나 주변국들이 공동 행동을 취할 필요까진 없다고 본다. 다만 유엔과 국제사회에 무엇이 옳은 역사인지 지속적으로 설명해 줄 필요는 있다.”



왕이저우 국무원 산하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 중국국제관계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중국 및 국제조직관계 연구’ ‘중국과 비전통안전’ ‘중국 외교 전환’ 등 국가급 프로젝트를 맡아 왔다. 40여 개국에서 초청강연을 했다. 저서로 『세계정치와 중국외교』 『창조적 개입:중국 외교의 새로운 동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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