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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덜 불행하게 해줄 짝 골라, 그에게 헌신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4호 07면

드 보통은 비관론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믿는다. 사랑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제시한 혼인서약문은 이렇다. “나는 (바람피우는 일 없이) 오로지 당신에게만 실망하겠다고 맹세합니다. 나는 다른 여러 불행의 가능성(평생 연애만 하는 것,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 등)에 대해 검토해 본 결과 선택한 당신께 헌신하겠습니다.” 현실성 없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같이 사랑할 것을 맹세”하는 서약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드 보통의 사랑 철학

예나 지금이나 그의 글에는 약간 삐딱하면서도 익살스러운 품위와 멋이 흐른다. 23~25세 때 이미 ‘닥터 러브(Dr. Love)’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 편의 사랑소설―『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1993), 『우리는 사랑일까(The Romantic Movement)』(1994), 『너를 사랑한다는 건(Kiss & Tell)』(1995)―뿐만 아니라 ‘복잡해서 어려운 키스’나 ‘밸런타인데이의 의미’와 같은 대중친화적 주제의 신문 기고를 통해 ‘사랑학의 대가’로 등극했다.

1년이 멀다 하고 내놓은 세 편의 소설은 남녀가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흔하디흔한 구성이다. 등장인물도 평범하다.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앨리스(24세)는 광고업, 에릭(31세)은 국제금융 분야에서 일하는 도시 젊은이들이다. 차별성은 사랑에 철학을 가미한 것이었다. 니체·루소·비트겐슈타인·쇼펜하우어·아리스토텔레스·파스칼·플라톤·하이데거·헤겔이 등장해 사랑의 밀물과 썰물을 고차원적으로 해부했다.

철학은 독서욕을 돋우는 양념이었다. 비평가들은 ‘젠체한다’ ‘가르치려 든다’고 공격했지만 독자들은 킬킬거리며 읽었다. 단순작업에 지친 대졸 직장인들은 문사철(文史哲)로 가벼운 머리 운동을 시켜 주는 그를 아이돌로 삼았다.

초기 세 편 작품의 셀링포인트는 인물·플롯이 아니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랑 프로세스의 분석’이다. ‘어 이거 내 이야기잖아’하는 데자뷰가 있다.

『너를 사랑한다는 건』에서는 사랑의 모든 단계에서 시도해 볼 만한 팁을 제공한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에게 차일 때 ‘남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그래서 다음에 만나게 될 여자를 마치 위인을 대하는 전기(傳記)작가처럼 열심히 관찰하겠노라고 다짐한다.

드 보통은 하버드대 박사 과정에서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다 그만두고 소설가가 됐다. 23세 ‘어린 나이’에 연애소설로 데뷔한 사연을 묻자 대답했다. “나 자신의 사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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