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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방황 …매일 면회 온 어머니가 아들을 부활시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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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태원에게 어머니는 삶의 버팀목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였다. 인터뷰 도중 그가 생각에 잠겼다. [박종근 기자]

그는 두 번 감옥에 갔다. 1987년과 91년 대마초 흡입 혐의였다. 하루하루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우울증에 빠졌고, 주위에선 자살을 걱정했다. 그는 당시를 “간접 자살이냐 직접 자살이냐의 기로에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 기간 ‘버팀목’이자 ‘뮤즈’가 있었다. 어머니였다. 수감 기간 어머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를 만나러 갔다. 매일 면회를 받은 사람은 구치소 사상 최초였다고 한다. “인생에서 한두 번씩 힘든 시간이 있는데 저는 대여섯 번이 넘어요. 그때마다 항상 어머니가 계셨어요. 어머니가 없었다면 제가 지금 여기 없을 겁니다.” 록그룹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48)씨의 얘기다.

 최근 그는 ‘국민할매’이자 ‘위대한 탄생’의 자상한 멘토로 익숙하다. 그 이면엔 죽을 고비를 넘긴 암투병 환자, 자폐증 아들을 둔 아버지란 얼굴이 있다. 20일 인터뷰에서 엿본 그의 또 다른 모습은 어머니의 추억을 고이 간직한 소년이었다.

그는 약간 자폐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자주 거짓으로 얘기를 지어내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땐 죽음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적어 친구에게 선물했다. 중·고교 땐 당구장에서 살았다. “불효의 극치였죠. 지독히도 말을 안 들었어요.” 기타를 잡은 건 중3 무렵. 기타를 잘 쳐 인기가 좋았던 친구를 보며 독학으로 배워나갔다.

 어머니 이용옥(76)씨는 그런 그를 곁에서 묵묵히 응원했다. 아들이 당구장에 있을 때면 밖에서 서너 시간씩 기다렸다. 당시 70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기타를 사주기도 했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콩나물 살 돈을 아껴 모은 돈이었다.

“가만 지켜보니 태원이는 달랐어요. 밥만 먹으면 기타를 쳤어요. 다른 사람들은 하다 말다 하잖아요. 꼭 공부로 출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어느 날 이씨는 방을 청소하다 아들이 작곡한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적힌 노트를 봤다.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었구나.” 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부활의 데뷔 1집은 큰 성공을 거뒀다.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이 수록된 첫 앨범은 30만 장 이상 팔렸다. 하지만 인기는 잠시였다. 의견 갈등으로 멤버들이 탈퇴했고, 그는 대마초를 피웠다. 두 번 감옥에 수감되고 정신병원에도 갔다. 위태위태한 날이었다.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속은 여리디 여린 그였다. 감옥에 가야 하는 그에겐 폐소공포증까지 있었다. 그런 그를 어머니가 지탱해줬다. 93년 결혼한 아내 이현주씨도 함께였다.

 “저 자신이 여린 걸 엄마와 아내는 알고 있었어요. 음계라는 칼날로 세상과 싸우느라 피투성이가 된 걸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죠. 그런 저를 두 사람은 매일 보고 싶어 했고, 저도 마찬가지였고…. 그때 다짐했습니다.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이 두 여자를 꼭 지키겠노라고.”

 어머니는 단지 ‘버팀목’만이 아니었다. 영감을 주는 ‘뮤즈’였다. 그가 작곡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어머니가 등장하는 7살 때의 기억이다.

김태원씨는 어머니와 함께한 사진이 많지 않다고 했다. 1986년 집에서 찍은 사진(위)을 어렵게 찾았다. 아래는 지난해 EBS에 함께 출연한 모습.

“72년 증산동. 작곡할 땐 항상 그곳을 생각해요. 아파트가 없었고, 바닥이 다 흙이었어요. 밖에서 놀고 있으면 해 질 무렵 ‘밥 먹어라’라고 엄마가 소리쳤죠. 그래도 계속 놀았고. 이 장면이 제 모든 작업의 모태예요. 노래 가사에서 ‘멀어졌다’ ‘아름답다’ ‘그립다’는 단어는 다 여기서 나온 겁니다.”

 이런 풍경이 스며든 대표적인 곡이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93년 3집 ‘기억상실’ 앨범의 ‘흑백영화’란 곡. 서정적인 멜로디는 어머니와의 7살 때 기억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이 곡은 그가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며 녹음했다. “당시는 부활이 존폐의 위기에 처했을 때였어요. 저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요.”

이 곡의 노랫말은 93년 세상을 떠난 보컬 김재기가 썼다. “제가 재기에게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며 썼다’며 들려주자 ‘형님, 이 곡만큼은 제 어머니를 위해 가사를 쓰도록 해주세요’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러라고 했죠. 그렇게 나온 가사를 보니 딱 제 느낌 그대로였어요.”

 하지만 김재기는 이 노래를 모두 녹음하지 못했다. ‘흑백으로 된 영화를 보고 싶었어. …꿈속 같은 모습이기에 나의 어머니를 닮았어’라는 후렴구만 녹음한 뒤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머지 부분은 김태원이 김재기의 목소리를 모창해 눈물을 흘리며 불렀다. 이 얘기를 하며 그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요즘 어머니의 통화 연결음은 11집 수록곡인 ‘사랑’. 노래방에선 ‘봉선화 연정’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 트로트를 즐겨 부른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김태원도 가끔씩 노래방에 함께 갈 때면 꼭 ‘무정블루스’를 부른다.

 ‘어버이날 어떤 선물을 했느냐’고 물으니 능청스럽게 “제가 가는 게 선물이죠”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는 분당에 사는 어머니를 찾아간다. 만나면 막내아들답게 소소하게 수다를 떨곤 한다.

아버지가 되고 난 뒤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더 애틋해졌다.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자폐아라는 얘길 먼저 꺼냈다. “결혼 전엔 작사할 때면 ‘왜 이렇게 쓸 얘기가 없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어요. 그러다 아들이 태어났죠. 내가 왜 이런 일을 마주쳐야 되나 싶더군요.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런 게 나만의 철학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던 같아요. 어머니의 사랑, 세상에 대한 편견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뭐랄까, 성숙해졌달까요.”

 찾아갈 때마다 어머니가 걱정하는 건 그의 건강. 그는 2011년 위암 수술을 받았다. 최근엔 35년간 피워 온 담배를 끊었다. 활동도 활발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단골 초대 손님이다. 부활 전국 콘서트도 한창 진행하고 있고 곧 미국에서도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14집 앨범도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최근엔 딸 서현(16)양도 앨범을 냈다. “특별히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갑자기 음악을 하겠다더라고요. 앨범을 내면 미국의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를 거라면서요. 음악 자체를 즐기고 싶은 거지, 음악가로서 자기를 드러내는 건 원하지 않는대요. 제가 도와주는 것도 싫다고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아빠로서 기특할 뿐이죠.”

 그는 “효도에 물꼬를 튼 지 3년이 됐다”고 했다. “구약성경에 보면 300년을 살아도 철이 안 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철이라는 건 나이가 들면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어떤 포인트가 있는 것 같아요. 네 살 때 철들 수도 있고, 500살이 돼도 안 들 수 있고. 저는 이제야 철이 좀 드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나이 드신 어머니를 보면서…. 하나씩 하나씩 갚아 나가야죠.”

‘이 정도면 지금도 충분히 잘 갚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가 손사래를 쳤다. “3년 가지고 되겠어요. 앞으로 50년을 갚아도 다 갚을까 말까 할 텐데요(웃음).”

글=이상화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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