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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색깔·식당 … 이 검색어 줄면 주식 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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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빅 데이터가 펀드매니저보다 낫다.’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 결과가 나왔다. 빅 데이터를 활용한 투자 기법을 적용하면 미국 증시에서 2004년 초부터 2011년 초까지 7년여 동안 326% 수익률을 낼 수 있음을 증명한 연구다.

 연구진은 영국 워윅대 경영대학원 토비아스 프라이스 교수와 미국 보스턴대 물리학과의 헬렌 수재너 모트, 해리 유진 스탠리 교수. 이들은 최근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구글 트렌드를 활용한 금융거래의 계량화(Quantifying Trading Behavior in Financial Markets Using Google Trends)’라는 논문을 실었다. 요지는 ‘구글 검색어의 변화를 잘 포착해 투자하면 미국 주식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도 구글 트렌드(www.google.com/trends)를 이용해 특정 단어를 검색하면 시간 흐름에 따른 해당 단어의 검색량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연구 방법은 이렇다. 이들은 일단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98개를 골라냈다. ‘빚(debt)’ ‘주식(stocks)’ 같은 경제용어가 많지만 ‘식당(restaurant)’ 등 주식과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단어도 상당수였다.

 연구진은 1주일 동안 구글 트렌드에서 이들 단어가 얼마나 많이 검색됐는지를 살폈다. 만일 단어 검색 비중이 종전 3주보다 줄어들면 주초에 다우존스 산업지수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사고, 늘어나면 공매도를 하는 식의 투자전략을 짰다. ETF 공매도는 주가지수가 떨어졌을 때 하락률만큼의 이익을 투자자에게 안겨준다. 다시 말해 연구진은 해당 단어가 주식시장에 부정적이라고 가정하고 투자를 한 것이다.

 투자는 1주일 단위로 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펀드를 샀을 경우엔 주말 종가에 팔고, 공매도를 한 것은 주말에 정리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2004년 1월 5일부터 2011년 2월 22일까지 모의 투자를 했을 때의 수익률을 따졌다.

 결과는 어땠을까. ‘빚’이란 단어 하나를 바탕으로 이렇게 투자했을 때의 수익률이 326%가 나왔다. 다우지수가 17.3% 오르는 동안 올린 성적이다. 부정적인 단어 검색이 많아졌을 때 주식을 팔면 수익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주가지수가 떨어질 것 같으면 투자자들이 불안해지고, 정보를 얻기 위해 관련 단어를 인터넷에서 많이 찾아본다는 가설이 입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투매가 이뤄져 주가지수가 급락하기 전에 ‘검색량 증가’란 신호등이 켜진다는 소리다.

 7년여 동안 326%는 연평균 20%에 해당한다.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이라면 모를까, 난다 긴다 하는 유명 펀드매니저조차 올리기 힘든 성적이다. 버핏이 50년 가까이 투자해 올린 성적은 연평균 19.7%다.

 주식시장과 연관이 깊은 단어 중에는 쉽사리 관련성을 파악하기 힘든 것도 있었다. 예컨대 ‘색깔(color)’이 그랬다. 이 단어의 검색 비중에 따라 투자를 했을 때 7년간 누적 수익률은 213%였다. 신한금융투자 곽현수 연구원은 “주식시장에서 빨간색은 상승, 파란색은 하락을 의미한다”며 “상대적으로 경기가 불안정할 때 주가의 상승·하락에 더욱 민감해 ‘색깔’이란 단어의 검색 횟수가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당(restaurant)’이 많이 검색됐을 때도 주식을 팔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증권 김승현 투자전략부장은 “경기가 나빠져 주가지수가 빠질 때는 저렴한 식당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종교(religion)’도 마찬가지였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일시적으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통계가 있다”며 “어려울 때 종교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라고 말했다. ‘다우존스(dow jones)’는 대문자로 검색을 할 때보다 소문자를 쓸 때 주가지수가 더 많이 떨어졌다. 급박하면 대문자 전환 키를 누르지 않고 바로 검색을 하기에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

‘환경(environment)’과 ‘재미(fun)’는 거꾸로 검색이 늘었을 때 주식을 사야 하는 단어로 분류됐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환경을 생각하고 재미를 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국에서도 이미 몇몇 증권사가 한국판 빅 데이터 투자전략 연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현 부장은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문화적 차이가 있어서 결과에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 빅 데이터(Big data)

기존의 일반적인 데이터 수집·저장·관리·분석 역량을 넘어서는 대량의 데이터 군. 빅 데이터 기술은 대규모의 데이터 집합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에 다변화된 현대사회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효과적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은 ‘2012년 떠오르는 10대 기술’ 중 첫 번째로 빅 데이터 기술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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