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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14개월, 세 번째 CEO 뽑는 농협금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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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상렬
경제부문 기자

출범 14개월여 만에 세 번째로 최고경영자(CEO)를 물색해야 하는 금융회사가 있다. 첫 번째 CEO는 100일도 안 돼 물러났다. 두 번째 CEO는 1년도 안 돼 사표를 썼다. 대형 전산사고도 세 번이나 겪었다. 2년 전 해킹으로 인터넷 뱅킹과 자동화기기·폰 뱅킹 등이 전면 마비되는 대형사고를 겪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던 것이다. 크고 작은 금융 사고도 끊이질 않는다. 외부 진단을 받아보니 생산성은 다른 금융회사의 80%밖에 안 된다.

이쯤 되면 이 회사에 탈이 나도 단단히 났음을 알 수 있다. 바로 농협금융지주 얘기다. 지난해 3월 출범한 농협금융에 유독 잡음이 많은 것은 금융권의 미스터리였다. 그 의문의 단초가 최근 신동규 농협금융회장의 사표를 통해 풀렸다. 신 회장은 “농협중앙회와 갈등이 있었다. 경영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농협 지배구조에서는 제갈공명이 와도 안 된다”는 말까지 했다.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대주주인 중앙회가 보장해 주지 않으면 자율경영은 꿈도 꿀 수 없다. 신 회장 말의 진위는 따져볼 일이다. 하지만 대주주가 사사건건 간섭하고, 그로 인해 CEO가 더는 못 견디겠다며 사표를 던질 지경이라면 회사가 온전히 돌아갈 리 만무하다. 농협 사정에 정통한 금융권 인사는 “농협금융 회장 선임에는 중앙회장의 의중이 폭넓게 반영된다. 조합원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중앙회장 입장에선 농협금융 회장을 자신이 뽑은 임명직쯤으로 여길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회가 농협금융의 계열 금융회사까지 지도·감독할 수 있게 한 법 규정도 농협금융을 옭아맸다. 중앙회가 옥상옥으로 있는 기형적인 지배구조가 농협금융 문제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농협금융지주는 24일께 임시이사회를 열어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시작한다. 병의 뿌리를 고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진통제만 맞는 꼴이다. 사정을 아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금융위도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다. 농협금융과 거래하는 2000만 고객들만 속을 끓이고 있다.

이상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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