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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사설] 정년 연장의 부담은 누가 떠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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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는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큰 흐름으로 보면 정년 연장은 세계적 추세다. 고령사회의 노동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숙련된 인력을 재활용하는 긍정적 측면이 적지 않다. 퇴직 이후 연금을 받기까지 10년간의 보릿고개를 넘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되짚어 보면 정년 연장은 여야가 앞다투어 내건 대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충분한 논의와 숙려(熟慮)기간을 생략한 채 불쑥 정년을 연장하면 우리 사회가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94년에 정년 연장을 시도한 일본도 90% 이상의 기업이 적응한 98년에야 60세 정년을 의무화했다.

 정년 연장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지도 불투명하다. 이미 공무원과 ‘신의 직장’들은 거의 60세로 정년이 올라가 있다. 이에 비해 민간 기업들은 55~58세 정년이 많지만 실제로 퇴임 연령이 평균 53세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년 연장의 실익은 공기업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 등 10% 안팎의 기득권층에게만 집중될 수 있다. 선진국들처럼 정년 연장으로 신입사원의 채용 문호가 좁아져 세대 간 갈등을 부를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일본은 절반 가까운 기업들이 정년 연장에 따라 청년층을 고용하지 않아 기업 노화(老化)를 재촉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기업들의 체력이다. 개정 법률은 사업주와 노조가 임금체계 개편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지만, 노동계는 “임금 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여기에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연공서열도 생각해야 한다. 근속기간 20년 이상이면 20대 근로자보다 임금이 평균 1.89배나 높다. 정년은 보장하되 일정 연령이 지나면 급여를 삭감하는 임금피크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업들만 죽어난다. 공기업·대기업이야 여력이 있을지 몰라도 중견·중소기업들은 그 충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정년 연장은 여야가 합의했다고 함부로 입법으로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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