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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벌·물고기의 ‘떼지능<swarm intelligence>’이 미래 세상 바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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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호 25면

1 호주 엑스마우스에 위치한 케이프 레인지 국립공원의 흰개미집. [위키피디아] 2 흰개미집의 구조. A 고미다락, B 육아실, C 버섯재배방, D 여왕의 거처, E 지하실. [위키피디아] 3 흰개미 둔덕에서 영감을 얻어 건설된 이스트게이트 센터.

호주, 우간다, 코트디부아르, 나미비아의 초원에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탑들이 널려 있다. 3m 이상 솟아오른 이 구조물들은 흰개미가 세운 둔덕이다. 흰개미들은 진흙 알갱이에 침과 배설물을 섞어서 둔덕을 쌓아 올린다. 둔덕은 지역에 따라 모양이 제각각이다. 둔덕 안에는 흰개미 군체의 보금자리인 둥지가 있다. 나미비아의 대초원에 있는 원뿔 모양의 탑은 2m쯤 되는 구형의 둥지 안에 왕과 여왕의 거처, 새끼개미를 기르는 육아실, 버섯을 재배하는 방, 식량이 가득한 곳간 등 여러 종류의 방이 들어 있다. 이 둥지 안에서 200만 마리의 흰개미가 버섯을 길러 먹고 산다. 이 버섯은 흰개미의 창자 안에 들어가면 나무나 풀을 소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흰개미와 버섯은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인식의 '과학은 살아 있다' <20> 떼지능

둔덕 안의 둥지는 대개 지표면보다 아래쪽에 자리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곤충들이 힘을 들여 지표면 위로 거대한 탑이 높이 솟아오르는 둔덕을 만든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둥지 안에서는 흰개미 수십만 마리가 엄청난 양의 산소를 소비하여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동시에 열을 발생시킨다. 둔덕 안의 버섯과 퇴비 역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와 열을 내뿜는다. 흰개미들이 질식해서 죽지 않을뿐더러 버섯이 제대로 자라나려면 이산화탄소와 열을 둥지 밖으로 내보내야만 한다. 또한 흰개미는 피부가 연약하므로 건조한 기후 조건에서 피부가 마르지 않으려면 습도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한다. 요컨대 둥지 안의 공기와 온도를 조절하는 환기시스템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둔덕의 높이 솟은 탑이 그러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 곤충학자가 ‘초유기체’ 표현 첫 사용
탑의 중앙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커다란 굴뚝이 수직으로 쭉 뻗어 있다. 둥지 안에서 발생한 열과 이산화탄소가 뒤섞인 뜨거운 공기가 이 굴뚝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둥지 안의 온도는 낮아진다. 한편 둔덕 바깥에서 바람이 불면 찬 공기가 지표면 바로 아래에 있는 다른 관을 통해 둥지 밑의 방으로 들어와서 더운 공기를 위로 밀어 올려 바깥으로 나가도록 한다. 흰개미 집은 어느 곳, 어떤 기후에서도 온도는 섭씨 27도, 습도는 60%를 유지한다.

몸길이가 0.5㎝에 불과하고 지능은 밑바닥이며 시력도 거의 없다시피 한 곤충들에게 둔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청사진이 있을 까닭이 없다. 가령 흰개미는 탑의 높이, 다양한 방의 크기, 각종 통로의 위치 등을 알고 있을 리 만무하고, 환기 시스템이 어느 정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어느 정도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지 알 턱이 없다. 요컨대 개개의 개미는 집을 지을 만한 지능이 없지만 흰개미 집합체는 역할이 상이한 개미들이 협력하여 진흙으로 벽을 만들고 굴을 뚫어 거대한 구조물을 쌓아 올린다.

스웜봇이 무리를 지어 이동 중이다. [위키피디아]

1928년 미국의 곤충학자인 윌리엄 휠러(1865~1937)는 개개의 흰개미가 가진 것의 총화를 훨씬 뛰어넘는 지능과 적응능력을 보여준 흰개미 집단을 지칭하기 위해 초유기체(superorganism)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흰개미의 집합체를 하나의 유기체와 대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초유기체는 구성 요소가 개별적으로 갖지 못한 특성이나 행동을 보여준다. 하위수준(구성 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수준(전체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은 다름 아닌 창발(emergence)이다. 창발은 초유기체의 본질을 정의하는 개념이다. 특히 개미, 흰개미, 꿀벌, 장수말벌 따위의 사회성 곤충이 집단행동을 할 때 창발하는 지능을 일러 떼지능(swarm intelligence)이라 한다.

사막의 개미 집단은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살면서도 매일 아침 일꾼들을 갖가지 업무에 몇 마리씩 할당해야 할지 확실히 알고 있다. 숲의 꿀벌 군체도 단순하기 그지없는 개체들이 힘을 합쳐 집을 짓기에 알맞은 나무를 고를 줄 안다. 카리브해의 수천 마리 물고기 떼는 한 마리의 거대한 은백색 생물인 것처럼 전체가 한순간에 방향을 바꿀 정도로 정확히 행동을 조율한다. 북극 지방을 이주하는 대단한 규모의 순록 무리도 개체 대부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틀림없이 번식지에 도착한다.

2010년 8월 미국의 저술가인 피터 밀러는 사막의 개미 집단, 숲의 꿀벌 군체, 바다의 물고기 떼, 북극의 순록 무리를 통틀어 ‘영리한 무리(smart swarm)’라고 명명하고, 이런 동물의 무리와 인류가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이론을 전개한 저서를 펴냈다. 책 이름 역시 영리한 무리이다. 이 책에서 밀러는 동물 집단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기본 원리를 밝혀내서 활용한다면 인류 사회의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리한 무리의 떼지능은 건축에서 로봇공학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전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도 실내의 공기를 정화하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흰개미 둔덕은 자연친화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고도 남았다. 남아프리카의 짐바브웨 태생인 믹 피어스는 흰개미 둔덕에서 영감을 얻어 이스트게이트센터(Eastgate Center)를 설계했다. 1996년 짐바브웨 수도에 건설된 이 건물은 무더운 아프리카 날씨에 냉난방 장치 없이도 쾌적한 상태가 유지된다. 이스트게이트센터는 벽돌로 지어진 두 개의 10층짜리 건물로 구성된다. 낮에는 열을 저장하고 밤에는 밖으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실내 온도가 조절된다. 이렇게 해서 건물 바깥 온도가 섭씨 5도에서 33도 사이를 큰 폭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에도 실내 온도는 섭씨 21~25도로 유지된다. 이스트게이트센터는 전기로 냉난방을 하는 건물에 견주어 에너지 사용량이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량 폭주 때 최단 통신 경로 찾아 주기도
떼지능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응용된다. 떼지능을 본떠 만든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는 개미 떼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을 응용한 것이다. 먼저 개미 한 마리가 먹이를 발견하면 동료들에게 알리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때 땅 위에 행적을 남긴다. 지나가는 길에 페로몬을 뿌리는 것이다. 요컨대 개미는 냄새로 길을 찾아 먹이와 보금자리 사이를 오간다. 개미가 냄새를 추적하는 행동을 본떠 만든 소프트웨어는 살아있는 개미가 먹이와 보금자리 사이의 최단 경로를 찾아가는 것처럼 길을 추적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러한 소프트웨어는 일종의 인공 개미인 셈이다.

인공 개미 떼의 궤적 추적 능력은 전화회사의 설계기술자들을 흥분시킨다. 통화량이 폭주하는 통신망에서 최단 경로를 찾아내는 인공 개미를 활용할 수 있다면 통화를 경제적으로 연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공 개미가 교통체증을 정리하는 경찰관처럼 통화체증을 해소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개미 떼는 보금자리로 운반해야 할 먹이가 무거우면 여러 마리가 서로 힘을 합쳐 함께 옮긴다. 이런 떼지능을 본떠서 여러 대의 로봇이 협동하여 일을 처리하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도 개발된다.

꿀벌 사회는 분업 체제를 갖추고 있다. 꿀벌 떼가 일을 분담하는 방법을 흉내 내서 생산 공장의 조립 공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소프트웨어가 연구된다.

떼지능은 개미새물고기 등의 집단에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로봇의 무리에서 출현하는 인공적인 것도 있다. 떼지능의 원리를 로봇에 적용하는 분야는 떼로봇공학(swarm robotics)이라 불린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는 미국의 센티봇(Centibot) 계획과 유럽의 스웜봇(Swarm-bot) 계획이다. 자그마한 로봇들로 집단을 구성하여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말하자면 떼지능 로봇 연구계획이다.

유럽선 집단과제 해결하는 스웜봇 개발
미국 국방부(펜타곤)의 자금 지원을 받은 센티봇 계획은 키 30㎝인 로봇의 집단을 개발했다. 2004년 1월 이 작은 로봇 66대로 이루어진 무리를 빈 사무실 건물에 풀어놓았다. 이 로봇 집단의 임무는 건물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건물을 30분 정도 돌아다닌 뒤에 로봇 한 대가 벽장 안에서 수상쩍은 물건을 찾아냈다. 다른 로봇들은 그 물건 주위로 방어선을 쳤다. 마침내 센티봇 집단은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완수한 것이다.

브뤼셀자유대학의 컴퓨터과학자인 마르코 도리고가 주도한 스웜봇 계획은 키 10㎝, 지름 13㎝에 바퀴가 달린 로봇을 개발하여 떼지능을 연구했다. 1991년부터 개미 집단의 행동을 연구한 도리고는 로봇 12대가 스스로 무리를 형성하여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떼로봇공학은 전쟁터를 누비는 무인 차량이나 혈관 속에서 암세포와 싸우는 나노로봇 집단을 제어할 때도 활용될 전망이다. 미국의 곤충 로봇 전문가인 로드니 브룩스 역시 “수백만 마리의 모기 로봇이 민들레 꽃씨처럼 바람에 실려 달이나 화성에 착륙한 뒤에 메뚜기처럼 뜀박질하며 여기저기로 퍼져 나갈 때 모기 로봇 집단에서 떼지능이 창발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곤충 로봇의 무리가 우주 탐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곤충의 무리가 모두 영리한 것만은 아니다. 북아프리카와 인도에 사는 사막메뚜기는 대부분의 시기에 평화롭게 지내는 양순한 곤충이지만 갑자기 공격적으로 바뀌면 대륙 전체를 말 그대로 초토화할 정도이다. 몸길이가 10㎝인 연분홍색 곤충 수백만 마리가 떼 지어서 몇 시간씩 하늘을 온통 뒤덮으며 날아다니는 광경은 마치 외계인이 지구를 공습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004년 서아프리카를 습격한 사막메뚜기 떼는 농경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이스라엘과 포르투갈에서 수백만 명을 기아로 내몰았다.

떼지능은 집단지능(collective inte lligence)의 일종이다.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집단지능을 집단지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가령 흰개미 떼에게 지능은 몰라도 지성이 있다고 할 수야 없지 않은가. 게다가 와글와글하는 군중이나 떼거리처럼 모든 집단이 반드시 지성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인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KAIST 겸직교수를 지냈다. 신문에 490편, 잡지에 160편 이상의 칼럼을 연재했다. 『지식의 대융합』 『이인식의 멋진 과학』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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