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나라로 살짜기 옵서예

중앙일보

입력 2013.05.10 03:30

업데이트 2015.01.0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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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깊어간다. 꽃이 지고 그 자리에 잎이 돋아난다. 수목원은 신록이 더해가는 이맘때가 가장 아름답다. 메리골드와 주목이 어우러진 충남 아산의 피나클랜드에서.

희귀병도 꺾지 못한 ‘육지의 외도’ 꿈

서른아홉 살에 심장마비가 왔다. 이태 전 장기에 염증을 일으키는 희귀병인 루푸스에 걸렸을 때도 용케 버텨냈는데, 병마가 둘이나 한꺼번에 찾아오자 살아보겠다는 그의 의지도 한풀 꺾이고 말았다. 박건상(54)씨는 당시 아카시 나무만 무성한 돌산 가꾸는 일 탓에 자꾸만 병이 생기는가 싶었다고 한다.

큰 수술을 받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의사가 한사코 말렸지만, 박씨는 돌산이 있는 충남 아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목숨, 아예 돌산에 바칠 작정으로 서울에 있는 집을 경기도 용인으로 옮겼다. 새벽마다 아산의 돌산으로 내려와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세월이 꼬박 8년 이어졌다. 아카시 나무를 뽑은 자리에 돌배나무·살구나무·메타세쿼이아 등 다른 나무를 심었다. 8만㎡에 이르는 거대한 회색 산은 날마다 조금씩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돌산 아래에는 작은 호수도 만들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병은 더 나빠지지 않았다. 나무가 자라는 만큼 시든 몸도 치유가 되는 모양이었다.

10년 넘게 돌산을 수목원으로 일궈낸 피나클랜드 박건상(오른쪽)· 이상민 사장 부부.

우공이산 10년 … 돌산이 푸른산으로

돌산으로 삽을 들고 나선 지 십 년. 고생 끝에 2007년 7월 21일 드디어 수목원을 열었다. 피나클랜드. ‘수목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한 것 같아 ‘랜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피나클(pinnacle·작은 뾰족탑)이라는 이름은 수목원 자리가 뾰족한 돌산이어서 따왔다. 돌산은 예전에 채석장이었다. 여기서 캔 돌로 아산만 방조제를 건설할 때 바다를 메웠다.

채석장이었던 돌산은 이제 수목원이 되었다. 나무는 삭막한 돌산에 푸른 생명을 부여하기도 했지만 병든 인간에게도 새 생명을 안겨줬다. 박씨는 작정했다. 다른 사람에게도 자연을 돌려주자. 이제 막 싹을 틔운 나무처럼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떠올렸다. 수목원 가운데에 조성한 잔디밭을 아이들에게 내주었다. 처음에는 신발을 벗게 했다가 나중에는 신발을 신어도 뭐라 하지 않았다. 1만㎡쯤 되는 잔디밭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온종일 끊이지 않았다.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도 그저 좋았다. 또 다른 치유였다.

5월이 깊어간다. 5월은 꽃이 피고, 꽃이 핀 자리에 파릇파릇 잎이 돋는 계절이다. 전국에 있는 수목원·정원·식물원이 가장 예쁜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마침 다음 주말은 석가탄신일 포함한 사흘 연휴(17∼19일)다. 올봄 유일한 사흘 연휴라 어디든 가서 봄을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쉽진 않다. 전국의 어지간한 나들이 명소는 이미 예약이 꽉 찼다.

그래서 이번 주 week&은 작은 수목원을 찾아다녔다. 서울과 가까워 하루에 다녀올 수 있고, 아직은 덜 유명해서 긴 줄 서지 않아도 되는 수목원을 고르고 골랐다. 수목원에 가면 꽃과 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피나클랜드의 박건상 사장처럼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사람도 있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가 있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제이든가든은 유럽풍 건물과 정원으로 꾸며져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week&이 추천합니다, 소문 덜 난 ‘시크릿 가든’

요즘에는 수목원보다 정원(또는 가든)이라는 이름이 인기다. 여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읽힌다. 규모가 예전보다 작고, 각자 테마를 갖추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최근 불고 있는 힐링 열풍의 영향도 보인다. 서울 근교에 있는 수목원과 정원 중에서 네 곳만 엄선했다. 주제가 분명한 곳들이다.

글=백종현·이석희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강원도 춘천 제이드가든
숲속의 유럽, 드라마 촬영 단골

제이드가든 이끼원 초입에서 볼 수 있는 삼지구엽초.

‘숲 속에서 만나는 작은 유럽’을 테마로 한화그룹이 2011년 개장한 수목원이다. 이탈리아 투스카니풍의 방문센터, 영국 보더가든 등 이국적인 볼거리를 배치해 16만㎡(약 5만 평) 면적의 수목원이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최근 들어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 장소로 자주 등장하는 까닭이다.

방문센터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여자 주인공 오영(송혜교)의 집으로 등장했고, 정원 맨 안쪽에 있는 매점 ‘선베리’는 윤석호 감독의 한류 드라마 ‘사랑비’에서 여자 주인공 정하나(윤아)의 집으로 나왔다. 선베리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 선베리에 들어서면 수목원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제이드가든은 다 둘러보는 데 두 시간 남짓 걸린다. 나무내음길·단풍나무길·숲속바람길 세 코스로 구성돼 있고 24개 테마 정원을 갖추고 있다. 5월에는 튤립이 만개하는 ‘꽃물결원’과 ‘나무놀이집’이 가장 아름답다. 만병초로 가득한 ‘로도덴드론(진달래과 식물) 가든’과 이끼로 뒤덮인 ’이끼원‘은 나무가 우거져 시원하다. 수목원을 가로지르는 나무내음길은 우드칩이 수북이 깔려있어 편히 걸을 수 있다.

●이용 정보=서울에서 출발해 46번 경춘국도를 따라 가다 경강교 건너 1㎞쯤 가면 안내판이 나온다. 경춘선 전철을 이용해도 편하다. 굴봉산역에 내리면 제이드가든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오전 9시부터 일몰까지 문을 연다. 입장요금 어른 8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5000원. jadegarden.kr, 033-260-8300.

피나클랜드 정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서클 가든.

충남 아산 피나클랜드
뭍으로 온 외도, 어린이들의 천국

병마를 딛고 수목원을 연 박건상(54) 대표에게는 본보기가 되는 장소가 있다. 경남 거제도의 외도 보타니아다. 외도 보타니아를 손수 일군 최호숙(77) 회장이 박 대표의 장모다. 장모의 영향을 받아 수목원을 열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외도 보타니아가 어른을 위한 수목원이라면, 피나클랜드는 아이들을 위한 수목원이다.

8만㎡가 넘는 수목원에 메타세쿼이아·느티나무·잣나무 등 크고 작은 나무가 심어져 있고, 나무 아래에는 다람쥐·토끼·공작 등 동물이 뛰어 논다.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조랑말(1만원)을 태워준다. 수목원 조경부터 체험 프로그램까지 아이들을 위해 맞춰져 있다.

귀한 예술작품도 있다. 수목원 중앙에 설치된 9m 높이의 바람개비 모양 조형물은 세계적인 바람개비 아티스트 신구 스스무(新宮晋)의 ‘태양의 인사’라는 작품이다. 호수에도 그의 바람개비 작품이 물 위에 떠 있다. 박 대표가 3년 동안 편지를 보내 작가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수목원 정상에는 피나클랜드가 예전에 채석장이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진경산수’라는 이름의 연못인데 1970년대 아산만 방조제를 만들 때 돌을 캔 뒤 방치됐던 장소에 인공폭포와 산정호수, 이끼산을 조성해 동양화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5월에는 라일락·복사꽃·배꽃이 만개한다.

●이용 정보=서울시청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 걸린다. 오전 10시에 개장한다. 화요일은 휴원. 입장료 어른 7000원, 어린이 4000원이다. 허브 비누 만들기 1만3000원(입장료 포함). pinnacleland.net, 041-534-2580.

물향기수목원은 시원한 솔바람을 맞으면서 산책하기에 좋다.

경기도 오산 물향기수목원
커다란 놀이터, 가족소풍에 좋아요

경기도가 운영하는 도립수목원이다. 2006년 개장했다.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많아 수목원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자연 놀이터에 가깝다. 음식도 갖고 입장할 수 있어 가족 소풍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대신 수목원 안에서는 음식을 팔지 않는다. 광역자치단체가 주인인 덕분이다.

물향기수목원은 34만㎡(약 10만 평) 면적으로 꽤 넓다. 그러나 관람로가 큰 경사 없이 대체로 평탄해 유모차를 밀고 다녀도 무리가 없다. 수목원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쉬엄쉬엄 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물향기수목원 토피어리원에는 나무로 다양한 동물을 만들어 놓았다.

수목원 안에는 테마정원이 19개 있다.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며 놀기에 좋은 ‘미로원’과 다양한 모양의 나무조각 작품이 전시된 ‘토피어리원’이 특히 인기가 좋다. 닭부터 공작·나비·장수풍뎅이 등 조류와 곤충도 기른다.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예부터 수청동(水淸洞)이라 불리던 터에 자리를 잡고 있어 물을 주제로 한 정원도 3개나 갖췄다. 수생식물원·습지생태원·호습성식물원에서 개구리밥·순채·부들 등 다양한 수생식물을 볼 수 있다. 물향기수목원은 지금 만개한 영산홍과 철쭉이 한창이다.

●이용 정보=경부고속도로 기흥·동탄나들목으로 나와 오산·동탄 방면으로 10㎞쯤 더 가야 한다. 주차공간이 넓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1호선 전철 오산대역 2번 출구 바로 앞에 있다. 오전 9시∼오후 6시 개장. 매주 월요일 휴무. 예약하면 숲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입장요금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주차요금 중형 기준 3000원. mulhyanggi.gg.go.kr, 031-378-1261.

황학산수목원 정문을 지나면 수생식물이 가득한 매룡지를 만날 수 있다.

경기도 여주 황학산수목원
멸종위기 식물 가득 … 돈 안받아요

지난해 경기도 여주군이 개장한 수목원이다. 27만㎡(약 8만 평) 면적의 공간에서 1300종이 넘는 식물을 기르고 있다. 양화소록원·산야초원·강돌정원 등 14개 주제로 꾸며져 있는데, 흔히 보기 힘든 식물이 많다. 왕씀배·쇠채 등 희귀·특산식물은 35종이 있고 섬개야광나무·단양쑥부쟁이·층층둥글레 등 멸종위기 식물 25종이 있다.

공립수목원이어서 학습 공간이 많다. 생태전시관을 갖춘 산림박물관, 여주군의 역사와 문화 자원을 시대에 따라 보여주는 나이테광장도 있다. 여주군의 상징인 도자를 응용한 항아리정원은 다양한 항아리와 야생화가 어우러져 있어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풀향기정원에는 기분을 좋게 해주는 방향성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수수꽃다리와 개회나무가 보기에도 좋고 가장 맑은 향을 낸다.

‘채원’이라는 이름의 정원이 재미있다. 특별한 정원이 아니라 흔히 먹는 채소를 심어 놓았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어서인지 도시 아이들이 의외로 좋아한다. 운이 좋으면 고라니·족제비·다람쥐·딱따구리 등 동물도 볼 수 있다. 수목원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수목원에 몰래 들어와 터를 잡은 야생동물이다.

●이용 정보=영동고속도로 여주나들목에서 약 5㎞ 떨어져 있다. 여주 버스터미널에서 수목원을 오가는 버스가 있지만, 하루 네 차례만 운행할 뿐이어서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하다. 입장료도 없고 주차비도 없다. 오전 9시∼오후 6시 개장. 월요일 휴무. 예약하면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cafe.naver.com/hhsan2012, 031-887-2741.

하루 나들이로 적당한 수도권 인근 수목원 10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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