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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인기 왜 안 식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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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 결과가 언론에 종종 등장합니다.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날 등 특별한 날이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순위에 오른 선물 목록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집니다. 고급 화장품과 노트북 컴퓨터, 심지어 럭셔리 브랜드 핸드백에 이르기까지 고가의 물건이 상위권에 올라 있는 탓입니다. 선물은 상대방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건네는 것인데, 성의와 정성이 아니라 명품 브랜드만 필요한 모양입니다. 불황 무풍지대라고 불리는 명품 시장. 도대체 어떤 점이 이토록 사람을 잡아끄는지, 또 문제는 없는지 신문과 교과서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생각해볼 문제

지난 설 명절에 백화점에 등장한 200만원 넘는 굴비 세트가 한동안 화제였습니다. 굴비 한 갓(10마리)에 247만2500원의 고가였는데도 불티나게 팔렸다고 합니다. 한 마리에 25만원짜리 생선이라니, 정말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비싼 가격마저 특별히 세일한 가격이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사실 명품 소비가 대중화한 것은 오랜 일입니다. 길거리를 둘러보면 평범한 여대생이 등굣길에 수백만원대 명품 가방을 어깨에 가볍게 걸치고 다니는 걸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요. 스스로를 서민이라 부르는 사람 중에도 값비싼 브랜드의 지갑이나 신발 한 켤레 없는 이가 드물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명품 사랑은 외국에서도 명성이 높습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컨설팅 그룹 매킨지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은 럭셔리 프렌들리(luxury friendly) 국가”라고 보도했습니다. 좋은 물건이니 좀 비싸게 주고 사는 게 뭐가 문제냐고 따진다면 대꾸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난 너보다 좀 높은 사람이야”라는 신분 과시를 위해 명품을 들고 다닌다면 문제가 아닐까요.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는 아끼고 절제하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드라마와 광고에서는 값비싼 브랜드 제품으로 온몸을 휘감은 말끔한 주인공을 통해 승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쟁에서 도태된 패자는 늘 후줄근한 이미지로 그립니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건 사람들 뇌리에 남는 이미지는 결국 황금만능주의입니다.

 북유럽에선 럭셔리 브랜드를 과시하면 오히려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하죠. 화려한 이미지에 열광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은 아직 내면의 풍요에서 오는 자존감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교과서에서는 명품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대안과 해결책

고등학교 경제교과서에는 합리적 소비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한정된 소득의 범위 내에서 만족을 극대화하는 소비가 가장 합리적이라는 의미입니다. 만족의 극대화라는 표현이 모호하다고요? 계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상품을 소비하면서 얻는 만족감(효용)이 소비를 통해 포기된 돈(기회비용)보다 커야 하는 건 기본입니다. 여기에 지금 당장 쓰는 돈이 많아지면 저축이 줄기 때문에 미래에 소비하면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줄어든다는 것까지 계산에 넣습니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합리적인 소비란 최소한의 소비를 말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돈을 소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기쁨, 저축을 통해 미래에 더 큰 돈을 쓸 기회를 얻는다는 즐거움까지 따지며 주판알을 튕기면 지금 당장의 만족을 위해 돈을 펑펑 쓰는 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니까요.

 그렇다면 명품 소비는 합리적인 행위일까요. 교과서의 시각으로만 보면 전형적인 비합리적 소비에 해당합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소비 지출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득이 줄어들 노년기를 생각하지 않고, 소득이 상대적으로 많은 젊은 시절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값비싼 물품을 사들이는 소비 행위는 옳지 않다는 게 교과서의 해석입니다.

 이토록 명명백백한 명품 소비의 비합리성이 정작 현실에서는 왜 이렇게 설득력 없게 들릴까요. 만약 “명품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은 어떤 기회비용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한다면 교과서가 말하는 ‘합리적 소비가 주는 만족의 극대화’에 대한 계산은 적용할 수 없겠죠. 설령 값비싼 명품을 산 뒤 몇 개월 동안 그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고생을 한다 해도 명품을 ‘득템’한 기쁨의 수치가 고생의 수치를 훨씬 넘어선다고 말한다면 명품 소비를 비합리적인 행동이라 평가할 수 없는 거니까요.

 이런 것을 감안한다면 명품의 소비 기준이 합리성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경제교과서를 덮고 고등학교 사회문화교과서를 펼쳐보면 ‘개인과 사회구조’라는 단원에 상징적 상호작용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내가 다른 사람 혹은 집단과 관계를 맺어 나가면서 주고받는 상징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상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관점이 바로 상징적 상호작용론입니다. 이 이론을 대입한다면 명품이라는 하나의 상징을 소유함으로써 나의 부·권력·젊음, 그리고 세련된 감각 등을 상대방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즉 럭셔리 브랜드 가방 하나 메고 다니는 걸 통해 “난 부자야” “난 명문대 졸업하고 좋은 직장 다녀” “난 패션 감각이 뛰어나” 등등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말이죠.

 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와 친한 사람이라면 나의 지적 수준이나 경제적 형편에 대해 대충 알고 있겠지요. 아무리 명품으로 치장한들 실제의 나보다 더 낫게 봐주진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명품으로 치장하는건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익명의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거짓 정보를 뿌리는 행동과 비슷한 행동이 아닐까요.

 중학교 도덕교과서에는 자아 존중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가치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충동구매와 과소비의 유혹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심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자신의 가치에 대해 좌절을 자주 겪다 보면 ‘자기 가치’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고가 브랜드의 점퍼를 제2의 교복인 양 맞춰 입고 다니거나 학교에서는 사용하지도 못할 비싼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것도 ‘자아 존중’ 욕구를 표현하는 몸부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가르치는 방법은 ‘용돈 기입장 작성 요령’이 아니라 ‘자기 가치’를 일깨워주고 ‘자기 존중감’을 높여주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정리=박형수 기자
집필=명덕외고 김영민(국어)·한민석(사회), 양강중 김지연(역사), 청운중 유정민(기술가정)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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