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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이 백허그를? 아무리 퓨전사극이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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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위에서부터 이승기가 반인반수역으로 나오는 ‘구가의 서’, 김혜수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직장의 신’, 미스캐스팅 논란이 불거진 김태희와 유아인이 커플로 나오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 [사진 MBC·KBS·SBS]

지상파 3사 월화드라마 경쟁이 뜨겁다. 한 주를 열어가는 기세 싸움 성격이 강하다. 드라마 전문가 그룹 ‘드라마의 모든 것’과 함께하는 중앙일보 ‘드라마 썰전[舌戰]’이 두 번째로 다룬 주제는 ‘지상파 3사 월화 미니시리즈’다. 비정규직의 애환을 그린 KBS ‘직장의 신’,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로맨스와 무협활극을 버무린 판타지 사극 MBC ‘구가의 서’, 새로운 장희빈 스토리인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집중 비평했다.

지상파 3사는 지난달 초 이례적으로 월화 드라마를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 이들 드라마는 제각각 다른 시청층을 겨냥한 것으로 보였다. 일반 식품회사를 소재로 남성층 공략에 나선 ‘직장의 신’, 중·장년에게 익숙한 한국 사극의 인기 소재 ‘장옥정, 사랑에 살다’, 그리고 여기에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파리의 연인’ 등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아온 로맨틱 코미디계의 스타 신우철PD의 첫 사극인 ‘구가의 서’가 맞붙었다.

 각기 중반기에 접어든 현재 상황을 놓고 볼 때 세 드라마 가운데 일단 ‘장옥정’의 완패가 점쳐지고 있다.

실제 시청률도 ‘구가의 서’ ‘직장의 신’ ‘장옥정’ 순으로 나타났다. [그래픽 참조] 전문가들의 작품성 평가도 ‘구가의 서’ ‘직장의 신’ ‘장옥정’ 순이었다.

장옥정, 지나친 각색 비판 줄이어

 특히 ‘김태희 버전의 장옥정’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던 ‘장옥정’은 기획·연기·연출 등 총체적 난맥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 코드를 적극 활용해 젊은층까지 겨냥했지만 과도한 현대적 각색이 도리어 악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총체적 엇박자=‘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김태희 연기력 논란이 또 다시 불거졌다. 대사를 앵커가 뉴스 읽듯이 한다며 극중 장면에 ‘앵커’라는 제목을 붙인 동영상이 온라인에 회자되기도 했다.

“(김태희는) ‘아이리스’‘마이 프린세스’로 나아진 듯 하더니 다시 퇴행한 듯. 한복은 어울리지만 사극은 노 생큐”(김지연 제작PD)라는 반응이다.

 숙종 역의 유아인은 유일한 구원투수로 부각됐다. 그는 ‘착한 남자’의 송중기마냥 드라마의 모든 흠결을 가리며 여성팬들을 무장해제시켰다. 지금도 가장 강력한, 혹은 거의 유일한 시청동인으로 꼽힌다.

 ‘장옥정’은 부실기획의 대명사로 꼽을 만하다. 연출·연기 모두 손이 안 맞았다. 시청자 다수가 꿰고 있는 장옥정 스토리를 새롭게 해석해낸다며 인현왕후 일가를 악으로 규정하고 장옥정을 ‘착한 패션 디자이너’로 설정했으나, ‘요부 악녀 장옥정’이라는 대중의 기대를 깨기엔 힘이 달렸다.

특히 낭창낭창한 한복 패션 이야기는 공중에 떠서 겉도는 모양새였다. 또 “알려진 인물을 새롭게 해석한다기엔 너무 관습적인 드라마에 그쳤다.”(홍석경 서울대 교수).

 현대 로맨스물의 클리셰(상투적 표현)를 조선 왕 버전으로 바꾸어 대거 포진시켰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짜릿한 몰입은 ‘해를 품은 달’에 미치지 못했고, 도리어 실소가 터졌다.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은 왕이 궁중 빨래터 물속으로 뛰어들어 침방나인 옥정에게 기습키스를 퍼붓는 8회 엔딩 장면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소설의 문법이나 스토리텔링 구조를 똑 빼닮은 드라마다. 여기서 왕은 인터넷 소설속 판타지의 결정체다. 왕의 백허그라니? 그냥 재벌 회장님의 조선 버전!”(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어린 숙종과 옥정의 만남 장면에선, 실내는 봄가을인데 느닷없이 야외로 가면 겨울신이 펼쳐졌다. 똑같은 침방나인인데 유독 장옥정만 짧은 키를 커버해주는 짧은 저고리 차림은 왜일까. "차라리 ‘해를 품은 달’처럼 완전 픽션으로 가는 게 나았을 드라마”(임영호 부산대 교수)라는 의견이 많았다.

구가의 서, 짜임새 있는 이야기 호평

 ◆탄탄한 스토리텔링의 승리=‘구가의 서’는 ‘제빵왕 김탁구’의 강은경 작가와 신우철 PD의 첫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의 만남이 시너지를 냈다는 평.

사람이 되고픈 반인반수의 로맨스로 시작해 이순신 등 실제 역사로까지 서사를 넓혀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를 뛰어넘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줬다. 신우철 PD의 영상미까지 더해져 월화극 최강자로 꼽혔다.

 액션 연기에 도전한 이승기는 반인반수 최강치 역을 무난하게 소화해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아이돌 캐스팅의 그리 나쁘지 않은 사례다. “얼굴 선이 거칠면서도 아이 같은 부분이 있어 동화적인 야수 캐릭터에 맞아 떨어졌다.”(홍석경)

 남장여자 검객 담여울 역의 수지는 액션이든 감정연기든 아직 갈 길이 아직 멀어 보이지만 그 풋풋함과 미숙함이 오히려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평가됐다.

많은 남성 평자들은 “수지는 무조건 옳아요!”라며 적극 옹호했다.

주연들의 설익은 연기를 이성재·이유비·김효섭 등 탄탄한 조연들과 다양한 캐릭터가 받쳐주었다. 특히 이성재는 TV를 부숴버리고 싶을 만큼, 공분을 자아내는 악역으로 변신했다. ‘발연기’ 논란에 늘 휩싸였던 이연희가 1·2회에 출연, 필생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 것도 화제였다. 잘 짜인 듯 하나 “어디서 본 듯? 일본 애니메이션의 클리셰 집합 같은?”이라는 (김수아) 소수의견도 있었다.

직장의 신, 김혜수 연기 큰 반향

 ◆사회적 이슈로 승부=‘직장의 신’은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리메이크했다. 자발적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와 김혜수의 독보적 연기, 세태반영으로 초반 이목을 집중시켰다. ‘토씨 하나 바꿀 수 없다’는 원작자의 조건 때문에 세트도 원작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직 김혜수의 연기는 그야말로 수퍼갑이었다. “구질의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묵직한 직구도 겸비, 1명이 3.5명 몫을 했다”(손병우 충남대 교수). 애초 원작의 일본만화적 웃음 코드가 한국에선 안 먹힐 수 있다는 예상도 빗나갔다.

 문제는 중반부로 달려가면서 초기의 탄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주인공 원톱 캐릭터 플레이로 가는 50분 10회 일본 원작을, 60분 16회로 늘이면서 추가된 러브라인이 오히려 직장드라마의 참신함을 깨버린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과장된 연기에 대한 피로감도 커졌다.

 하지만 아이돌과 스타감독·작가로 무장한 ‘구가의 서’에 크게 밀리지 않는 것을 보면 비정규직의 애환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그만큼 큰 공감대를 끌어냈다는 증거다. 각박한 현실의 덕을 본 셈이다.

 “너무 직접적인 상황들. 세련된 세태풍자가 아쉽다.”(김주옥 템플대 박사과정) “창작 아닌 수정·보완만으로도 한드(한국 드라마)의 실력은 믿을 만 하다.”(손병우) “지금 미스 김, 예비 미스 김과 그의 가족·친지들까지 모두가 공감한 직장드라마의 수퍼갑”(김일중 한국콘텐츠진흥원 팀장)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정리=양성희 기자

교수·PD·평론가·시청자 … '드라마 썰전' 집단비평 시도

‘드라마 썰전’을 진행하는 ‘드라마의 모든 것’은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입니다. 국내 신문방송학과 교수, 드라마PD, 업계 관계자, 문화평론가, 기자, 국내외 거주 시청자 68명으로 이루어진 드라마·예능 전문 비평팀입니다. 지난해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제안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맞추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집단비평을 시도합니다. 본지 양성희·이영희·전영선 기자도 참여합니다.

[J Choice](★ 5개 만점, ☆는 ★의 반 개)

▶KBS ‘직장의 신’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원작에 기댄 안전한 구성과 기획. 하지만 결코 다음 회를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지는 못하는 평작.

★★★(김주옥 미국 템플대 박사과정):생존을 위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회사에서 미스 김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MBC ‘구가의 서’

★★★★(김지연 프리랜서 제작PD):쫀쫀한 얼개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 러브스토리. 2% 부족한 수지의 연기쯤은 덮어주는 매혹적인 판타지.

★★★☆(김주옥):성웅 이순신과 ‘반인반수’ 최강치가 아는 사이라고? 발칙한 발상을 어른동화로 만드는 베테랑의 힘.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김주옥):우연도 이쯤 되면 악연. 옆 방송사로 파견 나간 미스 김이 그리울 지경. 2002년 KBS 드라마에서 7대 장희빈이었던 김혜수가 그립다.

★(전영선 기자):김태희만 탓하기엔 총체적 난국. 아무리 퓨전이지만 그래도 사극인데 시공간을 무시한 막가파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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