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치킨게임이 만든 대마 수상전

중앙일보

입력 2013.05.06 00:15

업데이트 2013.05.0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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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12보(120~131)=전보 흑▲의 돌파가 놓이는 순간 박정환 9단은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몹시 아픈 수지요. 그 통증에 비견할 만큼 상처도 깊습니다. 백이 피를 철철 흘리며 흑 대마를 노려봅니다. ‘참고도’ 백1로 두면 흑은 2, 4로 두는 맥점이 있어 패도 안 나고 삽니다. 이렇게 곱게 놔줄 수는 없지요. 흑A의 절단이 채무로 남아 있는 것도 영 기분이 상합니다. 바둑이란 당한 만큼 보복을 하지 못하면 지는 게임이지요. 120으로 파호한 건 필연의 흐름입니다.

 흑의 구리 9단도 121로 끊습니다. 바둑이 ‘치킨게임’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흑 대마가 두 집이 없으니 백 대마를 붙들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는 거지요. 예전 일본 고수들은 이런 바둑을 기피했습니다. “어느 한 쪽이 망하는 바둑을 둔다는 것은 둘 중 하나가 수를 잘못 보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고수들이 대마 수상전을 벌이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험악해지면서 바둑도 변했습니다. 요즘 바둑은 무시무시한 대형 사활이 수시로 등장합니다. 바둑이 타협의 예술이라지만 나는 죽어도 굽힐 수 없다는 거지요. 사실 그런 각오와 기세가 없이는 요즘 바둑 동네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일본 바둑이 어느 날 하수로 전락한 데엔 이런 이유도 없지 않아 있을 것 같습니다.

 131로 포위해 흑도 백 대마를 가뒀습니다. 드디어 어느 한쪽이 반드시 죽어야 할 대마 수상전이 시작됐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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