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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만의 명예회복 … "아버지, 이젠 편히 잠드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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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부산 남부경찰서 용호지구대 소속 최봉규(32) 순경은 대를 이어 경찰관으로 근무 중이다. 그는 24년 전의 어린이날을 잊지 못한다. 기동대 근무로 바빠 평소 얼굴 보기도 힘들던 아버지가 “어린이날엔 꼭 놀이공원에 놀러 가자”고 약속했었다. 그랬던 아버지는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1989년 5월 3일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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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의대 사태 당시 시위 학생 진압을 위해 출동했다가 임무 수행 중 중앙도서관 건물 7층에서 추락해 순직한 것이다. 그는 이후 어린이날을 놀이공원 대신 아버지의 빈소에서 보내야 했다. 장례식장에서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던 어머니의 상복 치마를 잡고 동그란 눈을 두리번거려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당시 동의대 사태로 숨진 경찰관 7명의 유족 가운데 유일한 유자녀였던 그는 2010년 10월 특채로 경찰관이 됐다. 나머지 순직 경찰관 6명은 당시 미혼이었다.

 최 순경은 동의대 사태 순직 경찰관의 다른 유족들과 함께 3일 오전 부산지방경찰청 앞 동백광장에서 열린 추도식 겸 순직 경찰관 흉상(胸像) 제막식에 참석했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동의대 사건의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통과돼 이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진 이후 처음 마련된 추도식이었다. 부산경찰청이 주최한 행사에는 국무위원으로는 처음으로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이성한 부산지방경찰청장, 허남식 부산시장, 새누리당 서병수 사무총장, 유족대표 정유환(55·고 정영환 경사 형)씨 등 500여 명이 함께했다.

 “고 최동문 경위, 고 박병환 경사, 고 정영환 경사, 고 조덕래 경사, 고 김명화 수경, 고 모성태 수경, 고 서원석 수경….” 희생자 이름이 한 사람씩 호명되자 행사장은 숙연해졌다. 유족 30여 명은 울음을 터트렸다. 유 장관은 “희생 경찰에 대한 명예회복과 적절한 보상이 뒤늦게나마 이뤄져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 국가질서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해 정부는 반드시 명예를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면서도 명예회복에 오랜 세월이 걸린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유족대표 정씨는 “이런 자리가 마련되기까지 무려 24년이 걸렸다”며 “불행한 경찰관과 우리 같은 유가족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제막식에서 당시 순직한 경찰관의 흉상 부조(浮彫) 동판이 차례로 공개됐다. 동백광장에 설치된 흉상은 가로 33㎝, 세로 43㎝ 크기다. 지난해 제정된 관련법에 따라 지원된 국가예산 9000여만원으로 제작됐다. 충남 서산 한서대 문종승(디자인) 교수가 당시 경찰관들의 작은 증명사진을 정밀하게 분석해 얼굴 형태를 재현해냈다. 유족들은 흉상을 어루만지며 ‘아들과 삼촌,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고 조덕래 경사의 조카인 조민지(27)·현지(26) 자매는 “삼촌이 저희들을 안고 환하게 웃던 모습만 기억나는데 흉상을 보니 살아 돌아온 것 같다”며 울먹였다.

 동의대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유족들은 그때마다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4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당시 시위 적극 가담자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1인당 평균 2500만원의 보상금도 지급했다. 정유환씨는 이때부터 ‘동의대 사건 경찰유족회’를 조직해 경찰 희생자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나섰다. 민주화운동자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 ‘결정 취소’에 대한 헌법소원은 5대 4로 각하됐다.

 이 결정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뒤집혔다. 2009년 9월 국회에서 ‘동의대 사건 등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이 제정됐다. 이어 지난 2월 동의대 사건에서 사망한 경찰관 7명과 부상자 10명에 대한 보상금 지급을 최종 의결했다.

 5·3 동의대 사태 당시 시위 참가 학생들로 구성된 ‘5·3 동지회’는 정부 차원의 첫 추도식에 대해 “그분들도 시대의 희생자다”고 밝혔다. 이남우(48·당시 법학과 4학년) 동지회 대표는 “당시 사건에는 경찰관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과 시위 학생들의 희생 등 양 측면이 존재한다”며 “이제 서로 화해하고 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도식을 마치고 근무지로 향하던 최봉규 순경은 “이제 마음이 조금 놓인다”고 했다. 그는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아버지 못지않게 사명감 투철하고 임무에 충실한 경찰관이 되는 것 뿐”이라 고 다짐했다.

부산 글=김상진·위성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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