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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종가' 영국도 극우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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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럽 극우 정당들의 기세가 등등하다. 민주주의 종주국이라고 주장하는 영국까지 덮쳤다.

 2일 영국 중부 사우스 실즈 지역의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영국독립당(UKIP) 후보가 24.2%를 득표해 2위에 올랐다. 자유민주당과 연립해 집권하고 있는 보수당은 3위(11.6% 득표)로 밀려났다. 당선은 50.5%의 표를 얻은 노동당 후보가 차지했다. 이 지역은 1935년부터 노동당이 져본 적이 없는 곳이다. UKIP는 지난 2월 이스틀리 선거구 하원 보선에서도 득표율 27.8%를 기록하며 25.4%의 표를 얻은 보수당을 눌렀다. UKIP 후보는 그때도 2위였다.

 UKIP는 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영국이 유럽연합(EU)에 완전히 가입하게 된 것을 계기로 93년에 창당했다. 당명의 ‘독립’은 ‘EU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이민자 통제 강화와 영국의 국가적 정체성 확립을 주로 주장한다. 2005년 총선에서 2.3%의 득표로 정당으로서의 존립이 위태로웠으나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16.5%의 지지로 13명의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2년 뒤 총선에서 17%가량의 표를 얻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UKIP의 득세로 같은 우파 진영의 보수당에는 비상이 걸렸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인 ‘집토끼’의 이탈 현상 때문이다. 차기 총선에서 UKIP가 약진하면 노동당에 정권을 넘겨줄 가능성이 크다. 2일 보궐선거와 함께 실시된 35개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보수당은 UKIP에 지지층을 빼앗겨 고전했다. 링컨셔 주의회에선 UKIP가 12석(전체는 77석)을 차지하는 바람에 보수당은 과반 의석 유지에 실패했다. BBC방송은 “연립 정권이 UKIP 때문에 ‘코피가 터졌다’”고 보도했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지난 1월 다음 총선 직후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집토끼들을 다독이기 위한 당근이다. 개표 직후 보수당의 저스틴 그리닝 국제개발부 장관은 “보수당은 UKIP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총선에서 보수당과 UKIP가 연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UKIP 인기의 배경은 경제난이다. 실업률(2월 기준 7.9%)이 치솟고, 긴축 정책이 지속되면서 이민자들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졌다. 나이젤 패러지 UKIP 당수는 “저항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 때는 극우파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 후보가 1차 투표에서 17.9%를 차지했다. 르펜은 1, 2위의 결선 투표 때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지 않아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그리스 총선에서는 극우 세력인 황금새벽당이 6.9%의 지지를 얻어 제3의 정당으로 도약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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