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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숭례문 복원, 멋지고 위대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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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수종
연기인

5년 전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차라리 사극의 한 장면이었으면 했다. 사극에 나오는 흔한 전투 장면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랬다면 그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화재로 인해 처참히 훼손된 숭례문의 모습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모든 국민이 참으로 아프고 힘들어했다.

 그리고 5년3개월. 이제 숭례문이 화마의 아픔을 딛고 우리 앞에 다시 섰다. 지난날 잘못 복원했던 부분까지 원형에 가깝게 복구했다고 한다.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숭례문 복구 과정과 사극은 참 많이 닮았다. 사극은 우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대본을 만들고 세트를 짓는다. 등장인물의 복장·소품·분장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가 없다. 잘못하면 여론의 질타는 물론이고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다.

 숭례문 복구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철저한 고증을 통해 조선 전기의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둥 하나, 기와 한 장, 단청 하나, 성곽의 돌 하나까지 철저하게 고증했을 뿐만 아니라 복구에 쓰인 재료와 도구까지도 전통기법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그 정성이 사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인 것 같다.

 배우 입장에서도 사극은 까다롭다. 드라마 ‘대조영’을 연출했던 김종선 PD가 “대조영이 다시 살아온다 해도 욕하지 않게 하라”는 주문을 할 정도로 그 역할에 몰입해야 했다. 인물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해 말투·걸음걸이·얼굴 표정·손짓 하나까지 역사적 인물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숭례문 복구공사에 참여한 장인들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창건 당시의 원형을 살리기 위해 편한 길을 마다하고 600년 전의 전통기법을 연구하고 재현했다고 한다. 과연 숭례문 창건 당시의 장인들이 살아온다 해도 욕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사극에서 맡은 역할들이 대부분 어려운 시기에 역경을 극복하고 나라를 세우거나 시대를 호령한 영웅들이었다. 힘들다고, 그만 하겠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사극에 출연한 이유는 그 인물들을 통해 우리 민족이 얼마나 강하고 위대하며 멋있는 민족이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찬란하고 위대했던 우리 조상의 정신을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분명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탄 것은 아프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조상의 전통기법까지 연구해 원형 그대로 되살렸다. 이 얼마나 멋지고 위대한 일인가. 우리는 바로 그런 민족이다.

 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의 의미와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화재를 보호하는 일은 특정 기관이나 전문가 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보호에 나서야 한다.

 우리 연예인들도 그 일에 동참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문화재청과 함께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 ‘내 고장 문화재 가꾸는 날’ 행사에도 참가한다. 지역사회의 문화재 현장에서 주변 청소와 환경정화·모니터링·체험활동 등 각자 특성에 맞는 다양한 문화재 가꾸기 활동을 수행하는 행사다. 또한 문화재 무인 안내 시스템에 목소리 녹음을 하는 재능 기부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의 상흔을 딛고 5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후세에 어떤 환경을 어떻게 물려주는가 하는 문제도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에게는 조상이 물려준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를 제대로 보존하고 발전시켜 미래에 전해줄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최수종 연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