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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룹도 동참한 정규직화 … SK 첫 물꼬 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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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4대 그룹 중 SK그룹이 처음으로 비정규직 5800여 명의 정규직화를 선언했다. 올 초 금융권과 유통업계에서부터 본격화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움직임에 대기업까지 동참한 것이다. SK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는 30일 그룹 내 계열사에서 계약직 신분으로 일해왔던 비정규직 5800명을 연말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게 이해관계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SK는 우선 연말까지 SK텔레콤과 SK플래닛의 계약직 4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바꾼다. 이들은 현재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서비스에이스·서비스탑·에프앤유신용정보, SK플래닛의 자회사인 엠앤서비스 등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SK "2015년 계약직 비율 3%로”

SK는 또 계약직을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 현재 7만9000여 명의 직원 중 12% 정도인 계약직 비율을 2015년까지 3%대로 줄일 계획이다. 이는 국내 전체 비정규직 비율(33%)과 비교해 10분의 1 수준으로 확 낮추는 것이다. SK그룹 관계자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가 곧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며 “대기업인 우리부터 나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자는 취지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한화그룹과 이마트·롯데마트 등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한화그룹은 올해 1월 초 한화 리조트나 호텔 등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2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바꿨다. 이마트는 3월 매장에서 상품 진열이나 판매 등을 담당하던 비정규직 1만2000여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롯데마트 역시 하도급업체 소속으로 매장에서 식품조리 등을 하던 1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이미 우리은행이나 신한은행 등 금융권에서는 2000년대 말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기업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4월 비정규직 사용기업 234개를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이미 전환했다(40.3%)’거나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31.9%)’고 응답한 곳이 70%에 달했다. 기업 10곳 중 7곳은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셈이다.

소속감 강해지고 생산성 높아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기업의 부담은 늘어난다. 그간 비정규직이 양산된 것도, 또 기업이 정규직화를 꺼리는 것도 인건비 증가가 가장 큰 이유다. SK그룹은 5800여 명을 정규직화하면 한 해 약 200억원 안팎이 들어갈 것으로 분석했다.

1만2000여 명을 정규직화한 이마트는 연간 600억원 정도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소속감이 강해지고 생산성이 높아진다. 2007년 계산원(캐셔) 직군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이마트는 계산 속도가 시간당 220건에서 265건으로 늘고 계산 오류는 5년간 75% 감소했다.

 기업들이 최근 비정규직을 잇따라 정규직화하는 데는 ‘고용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고용정책 영향도 크다. 정부는 3월 말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며 “2014년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정부는 공공부문에 있는 비정규직부터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공공부문에는 약 35만 명의 비정규직이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부부터 솔선수범하면 민간부문도 뒤따르지 않겠느냐”며 “가이드라인 역시 강제하는 것은 아니고 권고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돼도 당사자에 따라 시각차는 여전하다. 기존의 정규직이나 기업 측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 후 ‘한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일해 내부 결속력이 높아졌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반면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뀐 비정규직 출신 상당수는 여전히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돼도 별도 직군이기 때문에 ‘딴가족’일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실제로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정년이 보장되고 고용은 안정된다. 또 고용·산재 등 사회보험에 가입되고 상여금이나 퇴직금 등도 받을 수 있다.

고용 안정되지만 별도 직군화

하지만 근무연한이 쌓인다고 부장이 되거나 임원으로 승진하고 사장이 될 수는 없다. 기존 정규직과의 임금격차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 대부분의 기업이 ‘전문직 2’ 같은 별도의 직군을 만들어 정규직화한 ‘비정규직’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한 기업에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바뀌는 걸 거부하기도 했다. 이 직원은 “하도급업체에 근무할 때는 호봉제를 적용받았는데 정규직이 되면 기존 호봉을 모두 무시하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야 돼 월급이 오히려 40% 줄어들더라”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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