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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달 복역에 5억 너무 많아" "그 돈 받고 고문당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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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81년 6월, 당시 28세로 육군대위였던 김난수(59)씨는 고교 동창생들을 집으로 불러 딸 아람이의 백일잔치를 열었다. 20대 후반인 동창들은 당시 시국 상황 비판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 뒤 헤어졌다. 한 달 뒤 김씨 등 12명은 대전경찰서에 끌려갔다. 김씨 딸 이름을 따 아람회를 만들고 반정부활동을 했다는 죄목이었다. 김씨 등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구타 등 모진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결국 이들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돼 1년6월~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른바 아람회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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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흘러 정부는 2005년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만들었다. 김씨 등도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2007년 7월, 과거사위는 “아람회 사건은 강제연행과 강제구금, 고문 등에 의해 조작됐다”고 결론지었다.

 관련자와 가족 등 37명은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는 2년간의 심리 끝에 “국가는 모두 80억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불법행위 시점부터 이때까지 배상액에 대해 연 5%의 이자도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자만 100억원이 넘었다. 고문과 투옥, 해고와 감시 등으로 맺혔던 한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대법원에선 진보 성향의 박시환 대법관이 주심을 맡아 김씨 등의 기대는 더 부풀었다. 그런데 2011년 1월 나온 선고 결과는 이들 입장에선 실망스러웠다. 대법원3부는 지연 이자에 대해 “항소심 변론이 끝난 날부터 선고일까지 연 5%, 이후 지급일까지 연 20%를 지급하라”고 판결을 바꾼 것이다. 100억원이 넘었던 이자는 4억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앞서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하루 만에 집행된 우홍선씨 등 8명의 유족들은 배상금 246억원과 300억원이 넘는 이자를 받았다. 같은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와 가족 67명은 하급심에서 위자료 액수로 사상 최대인 462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그대로 확정되면 이자만 780억원이었다. 결국 대법원이 판례를 바꾼 것이다. 박시환 당시 대법관은 “위자료는 현재의 통화가치에 따라 산정했는데 이에 대한 이자를 수십 년 전부터 계산한다면 심각한 과잉 배상”이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김씨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청구해 봤으나 지난해 각하 결정을 받았다.

 불법 수사와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고통을 당했던 이들은 뒤늦게 받은 몇 억원의 배상금으로 다 치유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1년 후 출소한 고 김병권(90년 사망)씨의 부인 박모(58·여)씨는 지난달 14일 서울고법에서 약 14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았다. 시댁 식구들과 딸들의 위자료까지 포함된 금액이다. 정부의 상고로 대법원 심리가 1년가량 더 진행될 전망이다. 박씨는 “남편이 고문 후유증으로 무죄 판결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며 “남편 위자료 상속분까지 포함해 내게 인정된 돈 3억원으로 그간의 피해가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과거사 배상사건을 심리한 적이 있는 서울고법의 한 판사도 배상액이 너무 많다는 사람들에게 “5억원을 줄 테니 고문당하고 20년간 감시당해 보라면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들쭉날쭉한 위자료 산정기준, 다른 국가유공자들과의 형평성 등은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최현철·박민제·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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