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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의 굴레 벗고 「자유의 닻」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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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인천=송평성·장홍근·송영호기자】납북어선 12척은 25일 하오와 26일 상오 잇달아 선원 92명과 함께 약 4개월만에 인천외항 원미도 앞 바다에서 닻을 내렸다. 이날 하오8시30분쯤 납북될 때의 여름옷차림으로 인천내항 「차리」부두에 상륙한 어부들은 모진 학대와 굶주림에 찌든 얼굴이었으나 다시 자유를 찾은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북에는 우리배(백마강호) 1척이 억류되어 있으며 어부 12명이 갇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당신이 돌아왔구려』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의 얼굴들이 줄 이은 인천부두에는 가족들의 환성이 밀물 쳤다. 그러나 이날 함께 돌아올 줄 믿었던 미 귀환자들의 가족들은 끝내 보이지 않는 남편의 얼굴을 찾다 지쳐 땅바닥에 덥썩 주저앉으며 원한 서린 눈으로 북녘 하늘을 노려보았다.
돌아온 납북어부들은 상륙 즉시 해양검역소에서 발진 「티푸스」, 호열자, 천연두 접종을 마치고 「버스」2대에 나눠 타 인천시내를 한바퀴 돈 다음 경찰이 대접하는 따끈한 쇠고기국과 닭고기국으로 메말랐던 속을 훈훈히 적시며 인천시내 북성동 황해여관에서 귀환 첫 밤을 보냈다. 이들은 여관에 들기 앞서 경기도와 대한적십자사가 마련해준 속·겉옷과 신발, 비누, 수건, 잇솔, 치약에 이르기까지 일용품 일습을 받았다. 하오 10시30분엔 경찰학교기숙사에서 악몽 같았던 납북 4개월을 되새기는 합동기자회견이 열렸다. 26일 상오에는 목욕과 이발을 했다.

<짙은 안개 속|"북으로 가자"|기자회견서 밝힌 납북경위와 북한실정>
귀환어부 전일랑(45·백마강호 선장) 씨 등 6명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어부들은 진절머리나는 북괴의 감시와 협박 속에 지샌 4개월 동안의 악몽을 되새겼다.
납북경위
충남 어로지도선 백마강호는 지난 5월23일 상오 5시25분쯤 서해 어로저지선 남쪽 1마일 해상에서 고깃배의 어로지도와 보호임무를 맡고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속을 누비고 있었다.
이때 안개 속에서 북괴무장 쾌속정 1척이 불쑥 나타나 『그 자리에 서라』『북으로 가자』고 총구를 겨누며 협박했다.
총격으로 관통상
항해사 남상훈씨는 재빨리 「키」를 남쪽으로 돌려 호구를 벗어나려는 순간 북괴의 기관총은 조타실을 난사했다. 이 바람에 남씨는 왼쪽 가슴과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고 백마강호의 기름 「탱크」가 폭발, 온통 불바다를 이루었다.
하오 3시쯤 북괴는 백마강호를 해주항까지 끌고 와 항해사 남씨를 그곳 해주 의대 부속병원에 넘겨주고 다른 선원은 모두 감금상태로 평양까지 끌고 갔다는 것.
북괴는 백마강호를 돌려주지 않고 억류하는 이유를 그 배는 『적의 국가 재산이기 때문에 적의 무기와 같은 것』이라고 저희들 멋대로 처리해버렸다고 한다.
"선수를 돌려라"
같은 날 상오 3시쯤 어로저지선 남쪽 「구월이봉」앞 바다에서 평화롭게 조기잡이를 하던 창성호는 경기관총5정과 포1문을 단 시커먼 북괴무장선박에 선수를 가로막혔다.
『불을 끄고 「엔진」을 죽이라, 손을 들고 갑판으로 나오라』 잔학한 북괴의 위협 끝에 역시 해주항까지 끌려갔다는 것.
"살아서 가자고"
해주항 「시멘트」공장 앞에서 백마강호를 만났을 때 두 배의 선원들은 서로 손을 흔들며 살아서 돌아갈 것을 마음속으로 다졌다고 한다.
바짝 마른 북한 동표
북괴(평양) 억류4개월, 충남도 수산지도계장 박창범 (32) 씨는 『북한동포들은 잇달은 강제노동과 가난에 쪼들려 얼굴에 기름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있었다』고 전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할 때는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려 들지 않고 먼 산을 바라보며 괴로움을 숨기려는 듯한 표정이었다고.
변소가는데도 감시
박씨 등 백마강호의 선원들은 공무원이란 이유로 특히 심한 감시를 받았다 하며 심지어 변소에 갈 때까지도 감시의 눈초리는 뒤쫓고 있었다한다. 박씨는 돌아올 때까지 햇볕 한번 제대로 못 보아 얼굴이 창백했다. 고향생각에 울적해진 선원들이 술을 달라고 하면 1주일에 한번쯤 10명 앞에 4홉들이 소주 2병씩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 맛이 맹물에 「알콜」을 탄 것처럼 구역질이 나서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며 그나마 북한의 노동자들은 한 모금 구경조차 못하는 실정이었다고 말했다.
평양엔 대홍수
○…유기상씨는 지난 8월쯤 평양에 홍수가 크게 일어나 시가는 온통 불바다가 되었으며 교통이 마비, 「보트」로 통행하는 등 소동을 벌인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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