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년 전통 영국 보딩스쿨 이튼

중앙일보

입력 2013.04.24 04:04

업데이트 2014.10.3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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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튼은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학교다. 이런 의미에서 서양 전통예복인 연미복을 교복으로 입는다. 연미복 입은 학생들이 이튼 교정을 걷고 있다. 이튼 칼리지 홈페이지]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이하 이튼)는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보딩스쿨 중 하나다. 2011년엔 졸업생 266명 중 81명이 영국 최고 명문인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 진학했고, 나머지 학생 대부분도 임피리얼 칼리지·에든버러대 등 세계 20위권 내 영국 명문대에 입학했다. 또 29명은 하버드·MIT 등 미 명문대로 진학했다. 이튼의 명성은 단순히 명문대 진학률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이튼 졸업생을 뜻하는 이트니언(Etonian)이라는 단어가 어학사전에 등록돼 있을 정도로 이튼 졸업장은 영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튼은 1440년 당시 영국 왕이던 헨리 6세가 세웠다. 600여 년 역사를 거치며 이튼을 빛낸 유명 인사를 다 꼽기도 어렵다. 현재 영국 왕자인 윌리엄과 해리를 비롯해 총리 19명을 배출했다. 현재 영국 총리인 데이비드 캐머론도 이튼 출신이다. 워털루 전투로 유명한 웰링턴 공작도 이튼을 거쳐 갔다. 또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수많은 왕족도 이튼 동문이다.

 이튼의 저력은 정치계를 넘어 과학·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재를 배출해 온 데서 엿볼 수 있다. 『1984』의 조지 오웰과 『007』시리즈의 이언 플레밍 등 유명 작가는 물론 재즈 트럼펫 연주자 험프리 리틀턴 같은 예술계 인사까지 다양하다. 또 『십자군의 역사』를 쓴 역사학자 스티븐 런시맨 경, 경제학자 존 케인스를 배출해 영국 지성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이튼은 런던 외곽의 윈저 지역에 있다. 런던 서쪽 관문인 워털루 역을 출발해 기차로 50분 거리다. 도착하면 윈저 앤드 이튼이라는 역 이름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1066년 정복왕 윌리엄 이래 영국 왕실의 요새 역할을 해 온 윈저성이 이곳에 있다. 템스강 상류의 좁은 수로 주변으로 윈저성과 이튼이 마주 보고 있다. 헨리 6세가 이튼을 세웠다는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듯, 영국 왕실과 이튼은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튼 설립 이래 영국 왕들은 종종 이튼을 찾아 교수·학생과 담소를 나눴고, 이튼 학생은 충성을 다짐했다고 한다.

 영국 왕실에 대한 충성과 존중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매년 5~6월 사이에 열리는 세인트 조지스 데이(St. George’s Day) 행사가 대표적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25개의 각 기숙사 동별로 뽑힌 학생 대표 8명이 양복을 차려입고 강 위에 띄운 보트 위에 올라선다. 이들은 구령에 맞춰 노를 하늘 높이 치켜들며 영국 왕실에 대한 기념과 충성을 되새긴다. 이튼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열려 왔다. 무려 573년을 이어온 의식이다. 이튼 13학년에 재학 중인 최진우군은 “이 행사에 대표로 뽑힌다는 것은 굉장히 큰 영광”이라며 “대표로 뽑히면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고 말했다.

 이튼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에 뿌리를 둔 교육을 한다. 이튼뿐 아니라 귀족사회에 근간을 둔 유럽 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온 정신적 지주다. 이런 이튼의 교육철학을 엿볼 수 있는 상징물이 있다. 학교 정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마주치는 학교 본부의 벽이다. 이 벽 전체에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이튼 출신 전사자 2000여 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각각의 전사자 이름 앞에는 ‘1919년 9월 15일 사망, 전장에서 숨져간 존을 기리며’와 같은 문구가 붙어 있다. 최군은 “본부 건물을 지나칠 때마다 이 벽을 보면서 과감히 기득권을 버리고 사회에 봉사한 선배를 떠올리게 된다”며 “이튼 재학생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교복으로 연미복을 입는 것도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다. 연미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이튼 학생의 행렬은 윈저 지역의 자랑거리다.

 이튼 학생은 사회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실천하기 위해 이튼 액션(Eton Action)이란 행사를 매년 연다. 크림 티(영국 홍차에 과자류를 곁들인 오후 간식) 팔기와 같은 자선 바자를 통해 기금을 조성해 지역사회 단체에 기부하는 활동이다. 기숙사 동별로 몇 개 그룹으로 나누고, 투표를 통해 대표·총무·진행위원회 등을 직접 선출한다.

 이날 학생들은 부모와 지역 주민을 초청해 ‘평상복의 날’ 등 다양한 행사와 공연을 선보인다. 이 행사를 기획하면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사회 리더로서의 자긍심과 책임감도 배운다. 이튼을 졸업하고 옥스퍼드 역사경제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김우재(19)씨는 “학교에선 항상 사회 지도층이 될 것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줬다”며 “이런 환경 덕분에 사회성과 예절을 배우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튼은 다양한 클럽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체육을 강조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나고 등 몇몇 자율형사립고가 1인 1악기·1체육 교육을 강조하며 이튼의 교육과정을 벤치마킹할 정도다. 이튼의 스포츠 활동은 축구·럭비·폴로·유도를 포함해 수십 개에 달한다. 다른 학교에선 경험해 볼 수 없는 헬리콥터 타기, 패러글라이딩, 스피트 보트 운전 등 수준 높은 과외활동도 이뤄진다. 이튼 학생은 화·목요일 오후에는 의무적으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한다. 클럽 활동 수준은 웬만한 프로 운동팀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정식 감독과 코치, 매니저를 두고 프로팀 가까운 훈련을 받는다. 각 팀은 학생의 실력에 따라 A·B·C 팀으로 나눠지는데, 가장 실력이 좋은 사람은 A팀에 소속된다.

 이튼 11학년에 재학 중인 김정우군은 “하키A팀에 소속돼 운동을 했었다”며 “매일 상당 시간을 할애해 훈련을 해야 할 만큼 운동량이 많았지만 공부에 방해된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팀 운동을 통해 리더십을 배우고 선후배 관계도 돈독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1805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해로 스쿨(Harrow School)과의 크리켓 시합은 빠질 수 없는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다. 이런 식으로 웨스트민스터·윈체스터 등 명문 사립학교와 매주 토요일 친선경기를 갖고 그해의 우승팀을 가려낸다.

 그런가 하면 월 게임은 이튼만의 독특한 스포츠로 유명하다. 10명씩 짝을 이룬 두 팀이 벽돌 담장을 따라 형성된 길이 120야드, 폭 8야드의 운동장에서 거친 태클과 스크럼으로 밀고 당기면서 상대편 골문에 골을 넣는 게임이다. 축구와 럭비가 섞인 운동이다. 이런 팀 스포츠를 통해 이튼 학생들은 협동심과 리더십, 정당한 승부를 존중할 줄 아는 태도와 도덕심을 익힌다. 웰링턴 공작은 1881년 모교를 방문해 “나의 용기와 기상은 이튼 운동장에서 갈고닦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감사를 표현한 적도 있다.

 이튼 교사 수준은 영국 최고 수준이다. 옥스브리지 출신이 대부분이고 석·박사 학위 소지자가 즐비하다. 이런 교사의 질은 수준 높은 수업으로 이어진다. 김우재씨는 “신청 인원이 적은 과목과 일부 예체능 과목을 제외하곤 모두 수준별로 반을 편성해 수업한다”며 “수학은 심지어 14개 반까지 수준별로 반을 편성한다”고 말했다. 학급당 인원 수는 평균 15명이다. edm런던유학닷컴 서동성 대표는 “12~13학년에 해당하는 A레벨 과정에선 목표 대학·학과에서 요구하는 3~4개 과목에 집중해 수업을 듣기 때문에 학급당 인원 수는 10명까지 떨어진다”고 말했다.

 튜터 제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영국 사립학교는 대학처럼 학생이 듣기 원하는 과목의 수강신청을 하고 교실을 옮겨다니며 수업을 듣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담임제도가 없다. 하지만 이튼은 학생 관리와 수업지도를 위해 교사 1인당 평균 학생 6명을 관리하는 튜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최진우군은 “저학년 때는 학교에서 교사를 배정해 주지만 학년이 올라가면 내가 원하는 선생님을 튜터로 신청할 수 있다”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전공을 미리 정하고 일찍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해당 학과 출신 선생님을 튜터로 두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촘촘한 학사관리 덕분에 이튼 재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실시된 A레벨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A* 와 그 다음 단계인 A를 받은 학생은 재학생의 82%에 달했다. A레벨 시험은 목표 대학·학과에서 요구하는 과목을 선택해 치르는 시험으로 A*부터 A, B, C, D, E, U, N까지 8등급으로 성적을 받는다. 서 대표는 “옥스퍼드·케임브리지 입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A레벨 성적”이라며 “이튼 재학생 중 82%이상 A를 받았다는 것은 적어도 학업적인 측면에선 대부분 옥스브리지에 합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이튼은 한국 학생과 얼마나 인연이 있을까. 1990년 박준호씨가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석 졸업한 바 있고, 현재도 20여 명이 다니고 있다.

정현진 기자

[입학 팁]

이튼은 영국 사립 중·고교 과정에 해당되는 시니어 스쿨(Senior School)이다. 9학년(만 13세)부터 13학년(만 17세)까지 있다. 전원 기숙생활을 한다. 매년 260여 명이 9학년으로 입학한다. 대부분 졸업 때까지 다니기 때문에 10학년 이후 학교에 들어가기는 사실상 어렵다. 9~11학년이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에 해당하고, 12~13학년이 고교 과정이다. 이때 영국 대학 입학시험인 A레벨 과목을 배운다.

 9학년으로 입학하기 위해선 만 10세6개월이 되기 전에 입학 등록을 마쳐야 한다. 입학 등록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등록을 마치면 영국 학년으로 6학년 11월께 입학시험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튼을 찾아와야 한다. 이때 재학 중인 학교에서의 학업 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 추천서를 제출해야 한다. 입학 시험으로는 수학·영어와 지능·논리력 테스트를 본다. 인터뷰는 개별 인터뷰다. 개인의 학업 역량뿐 아니라 지원 동기, 학업 계획, 취미활동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내가 동물이라면 어떤 동물이 되고 싶은가’와 같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묻는 질문도 주어진다.

 테스트와 인터뷰를 통과하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다. 대기자 명단에 오른 학생은 기숙사를 정하기 위해 한번 더 이튼을 방문해 하우스마스터(기숙사 동별 책임자)와 인터뷰한다. 이때 사회성, 생활 태도, 선배에 대한 존중과 예의 등 인성적 측면을 평가한다. 그런 단계를 거쳐 최종 합격 여부는 CEE(영국 주니어 스쿨 졸업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받거나 이튼 장학금 선발 시험인 킹스 스칼라십(King’s Scholarship) 성적으로 판가름난다.

 이튼 입학을 위해선 최소 2년 반에서 3년의 긴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이튼은 초등학교 성적도 중요하게 보지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갖춘 사회 리더형 인재를 원한다. 또 기숙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동체 생활과 타인과의 의사소통 등 인성적 측면도 눈여겨본다.

 외국 학생에 대한 별도의 인원 배정은 없다. 들어가려면 영국 학생과 동일한 입학시험을 치른다. CEE 시험 성적과 초등학교 교장의 추천서 등이 입학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영국 현지에서 초등학교를 나와야 유리한 게 사실이다.

김민수(이튼 10학년), 김정우(11학년 오른쪽)

[김정우·김민수 학생이 말하는 이튼]

Q. 수준별 반 편성이 부담스럽지 않나.

 “물론 더 수준 높은 반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 하지만 그게 스트레스는 아니다. 이튼은 한 학년이 3학기제다. 첫 학기와 마지막 학기 일주일 동안 시험을 치르고 과목별로 반을 편성한다. 수업을 듣다 어렵다고 느끼면 언제든 자기 수준에 맞는 반으로 옮길 수 있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차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Q. 교사 수준이 관건일 것 같다.

 “대부분이 옥스브리지 출신이다. 학생 사이에선 수학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특히 높다. 무엇보다 교사들이 열정적이다. 일요일까지 반납하며 학생 공부를 돕는다. 이튼 학생이라면 상위권이든 하위권이든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동일하게 주어진다. 수준별 수업은 교과서까지 모두 다르다. 선생님이 학생 수준에 맞게 교과서를 직접 집필하거나 기존 교재에 다양한 자료를 첨부해 가면서 교과서를 업그레이드한다.”

Q. 선배에 대한 존중을 중요하게 가르친다던데.

 “맞다. 학교 전통이다. 25개 기숙사가 있는데, 각 기숙사 식당에서 식사할 때 후배는 최고 학년인 13학년 선배가 모두 착석할 때까지 기다린다. 식사가 끝난 후에도 선배가 먼저 자리를 떠야 일어난다. 이런 걸 강압으로 느낀 적은 없다. 선배는 또 후배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12학년이 기숙사에서 후배를 관리한다. 취침 시간 전 점검이라든가 기숙사 입실 체크를 책임진다. 선배한테 무례하게 굴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관리 책임을 맡은 12학년이 하우스 마스터(기숙사 책임자)에게 허락을 받고 후배에게 벌을 줄 수도 있다. 벌은 아침마다 하우스 마스터와 면담을 하거나 문장을 반복해 쓰기 같은 간단한 것이다. 이를 통해 책임감을 배운다. 선후배 사이가 더 가까워진다고 느꼈다.”

Q. 하우스 마스터와의 관계도 중요하겠다.

 “하우스 마스터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심지어 입학 과정에서 하우스 마스터와의 별도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다. 하우스 마스터는 인터뷰를 통해 학생 성향을 파악한 후 적절한 기숙사에 배치한다. 대학 입학 과정에서 추천서도 쓴다. 교칙을 자주 어기거나 교사·선배한테 무례하게 굴면 하우스 마스터로부터 좋은 추천서를 받을 수 없다. 교장 선생님보다 하우스 마스터에게 더 잘 보여야 한다.”

Q. 학생 관리를 담당하는 튜터 교사를 학생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부족한 학업지도뿐 아니라 학교생활, 대학진학상담까지 학생 생활 전반을 관리한다. 인기 있는 교사는 신청이 몰려 조기 마감된다. 학생의 신청을 받은 튜터 교사가 학생을 거부할 수도 있다.”

Q.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오전 8시30분부터 목요일을 빼고 매일 예배가 진행된다. 필수로 참가해야 한다. 목요일엔 유일하게 늦잠을 잘 수 있다.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되는데, 월·수·금은 오후 1시까지 수업을 진행한 뒤 자유시간을 갖고 오후 4시30분부터 다시 수업을 한다. 화·목·토는 오후 1시에 모든 수업이 끝난다. 중간에 비는 시간이나 수업 후 시간은 모두 자유시간이다. 이 시간을 이용해 숙제를 하거나 운동·음악 등 클럽활동을 한다.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철저하게 학생의 몫이다. 그래서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할 줄 아는 태도·습관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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