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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여직원' 수사, 고위층서 압력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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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정원 여직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초기 수사했던 경찰 간부가 수사 과정에서 경찰 고위층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은 19일 “고발장 접수 직후부터 서울지방경찰청이 수사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권 과장은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있던 지난해 12월 이 사건 수사를 처음 맡았지만 지난 2월 4일 송파서로 질책성 전보 발령됐다.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경찰이 황당무계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은 “과도한 왜곡”이라고 맞서고 있어 진실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권 수사과장은 서울청의 부당한 수사 개입 정황에 대해 ▶증거분석 과정에 무리한 요구가 있었고 ▶수사 결과 발표 시점과 언론 대응 방식에 압력이 가해졌다고 주장했다.

 수서서는 지난해 12월 13일 국정원 여직원 김모(29)씨의 컴퓨터 2대에 대해 서울청에 증거분석을 의뢰했다. 권 수사과장은 “선거 개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사팀이 애초 제출했던 대선 관련 키워드는 70여 개가 넘었지만 서울청이 신속한 수사를 위해 키워드 수를 대폭 줄여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충분한 수사가 될 수 없다고 항의했지만 결국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등 4개의 키워드로만 분석을 실시했다”고 했다.

 권 수사과장은 대선 직전인 지난해 12월 16일 밤 수사 결과 발표 시점과 수위에도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사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 발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단을 요구했지만 지휘부가 ‘책임지겠다’면서 강행했다”고 말했다. 또 “선거운동 등 (국정원 여직원에게) 혐의가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말을 쓰지 말도록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서울청은 이날 권 수사과장의 주장에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서울청은 “적법 절차를 지키고 보안을 중시하는 수사를 요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서울청은 또 “당시 수사팀이 선정한 대선 관련 키워드는 ‘호구’ ‘가식적’ ‘위선적’ ‘네이버’ 등 대선과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단어가 대다수였다”며 “분석범위도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글 확인에 한정돼 있어 핵심단어 4개만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언론 대응에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서울청 관계자는 “단지 수사 보안 차원에서 조심해 달라는 요구를 했는데 이를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18일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논란이 더 가열되고 있어 결국 국정 조사와 검찰 수사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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