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부의 인사발령이 있을 때마다 화려한 약력들이 각광을 받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색의 흥미를 갖고 그들의 약력을 한줄한줄 음미한다. 『어? 강원도 출신이...』하는 흥미도 있고, 『고문에 「패스」했었군』하는 관료주의자도 있다.
「화려한 약력」들일수록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것이 한가지 눈에 띈다. 「권위」를 가진 구절만은 길이 보존되고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가령 「동경제국대학」, 「경도제대」하는 학력난.
그런 사람일수록 본적을 「경성부 황금정」이라고는 적지 않는다.
「아나크로니즘」도 이쯤 되면 권위다. 서울대학교 출신은 전신경성제국대학. 현 서울대졸이라고 써야 될 것 같다. 백서에 「제국대학」이 어찌되었다는 뜻인지 어리둥절하다. 요즘의 대학을 다니는 20대는 그런 가치체계로는 정말 약력다운 약력을 한 줄도 쓸 수 없겠다. 「제국」은 커녕, 수학일수도 간신히 될까 말까한 「한가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의 「간세이」(관정)시대, 「이즈마」라는 마을에 여우위문 이라는 석학이 살고 있었다.
비록 그는 상업을 하고 있었지만 마을의 건설과 개화에 덕망이 높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마을의 한 노파는 통곡을 했다.
『그렇게 학문을 닦으셨는데도 선량한 분이었으니 학문만 닦지 않으셨더라면 얼마나 선량한 분이었을까.』
상객들의 가슴을 움직인 것은 그 노파의 구성진 곡성이 아니라, 그 평범한 「아이러니」였다.
학벌과 권위에 등을 기대는 시대는 벌써 사라졌다. 동경제대의 「제국」이란 글자가 사라지기 이전부터 그런 시대는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었다.
약력 속에 「제국」을 장식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사고 속에도 「제국정신」을 장식하고 싶지 않을까 겁난다.
「제국」은 오히려 부끄러운 상처이지 영광스런 훈장은 아니다.
「제국」으로 남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돈·키호테」뿐이다. 명사들은 우선 약력부터 다시 정리해 두고 소명을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