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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서소문 포럼

북한 말 폭탄은 김정은 ‘배짱’선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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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영진
논설위원

북한의 위협 공세가 예년에 비해 이례적으로 강하다.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또는 경제적 어려움을 무마하기 위해 긴장을 높인다는 것 등이다. 이런 분석대로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전쟁이나 국지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 폭탄’은 핵폭탄급이지만 말을 뒷받침할 만한 실질적 행동이 거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들은 일부 있지만 대규모 군사 도발을 준비하는 움직임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방 지역에선 군인들이 모내기에 동원되고 있고 한국군과 충돌이 벌어질 빌미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지침이 전방 군부대에 내려져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기자는 북한이 이번에 군사적 도발을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확신은 없지만 오랜 북한 관찰 경험에 따른 감(感)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은 북한 노동신문 1월 1일자부터 4월 11일자까지 모두 읽어보면서 더 분명해졌다. 북한에서 노동신문은 가장 중요한 선전 매체다. 체제 유지의 가장 유용한 도구요 주민 동원의 핵심적 장치다. 그런 노동신문이 올 들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 동지’의 ‘두둑한 배짱’과 ‘군사적 리더십’이었다.

 북한이 호전적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연말 ‘광명성 3호’ 로켓 발사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 결의를 채택한 뒤부터였다. 25일자 노동신문 1면 머리기사는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전면 대결전에 떨쳐 나서게 될 것이다”라는 제목의 국방위원회 성명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김정은은 각종 군사행동의 선두에 나선다.

 1월 27일자 노동신문 1면은 ‘김정은 국가 안전 및 대외부문 일군협의회 지도’를, 2월 3일자는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지도’를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결정한 듯하다. 13일자에 전날 3차 핵실험을 한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이어 북한은 정례 대규모 군사연습에 돌입하는데 이때부터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군 행사에 참가한 내용을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21, 22, 23, 26일 잇따라 군부대 방문과 군사연습 ‘지도’ 사실을 보도했다.

 재미있는 건 지난달 4일자 2면에 실린 ‘김정은의 판문점 방문’ 기사였다. 1년 전 3월 판문점을 방문한 사실을 기자가 회상하는 내용이었다. 2000자가 넘는 기사는 되풀이해서 김정은의 ‘배짱’을 강조했다. “적들과 총부리를 직접 맞대고 있는 격전 전야의 최전방인 판문점에, 그것도 환한 대낮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오시리라고 과연 누가 생각이나 해보았겠는가”라는 식이다. 이 기사는 지난해 8월 서해 연평도 코앞의 장재도와 무도를 방문한 에피소드 등을 섞어 지난 1년 동안 김정은이 보여준 ‘배짱 있는 행보’를 최대한 ‘칭송’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 기사가 나간 3일 뒤 장재도와 무도를 다시 방문했다. 8일자 노동신문은 1면 전체에 이 사실을 보도했고 2면에는 부교도 없는 섬에 쪽배를 타고 도착한 김정은을 군인들이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의 사진이 실렸다. 다시 한번 ‘배짱을 부린’ 것이다. 12일자에 백령도 맞은편 월내도를 방문한 내용, 14일자에는 백령도와 대연평도를 겨냥한 포사격 훈련 지도, 21일자 순항미사일 요격훈련 지도, 23·24·25일자 군부대 방문, 27일자 동해안 상륙훈련 지도 등이 이어졌다.

 29일자는 이날 새벽 김정은이 작전회의를 소집해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과 남한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게 대기 상태로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는 보도였다. 김정은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도 내릴 수 있음을 과시한 기사였다. 일련의 기사들은 김정은이 ‘두둑한’ 배짱을 가지고 앞장서서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맞받아치고 있다는 이미지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후부터 11일까지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군 관련 활동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기자는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두둑한 배짱과 담력을 가진 군사 지도자 김정은의 모습을 충분히 선전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대결전’을 일단 마무리한 셈이다. 한·미합동군사연습도 끝나가는 시점이라 더 이상 ‘신바람 나는 보도’를 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강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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