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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가 무서워요” 초보운전 스티커 그래서 어쩌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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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운전하다 보면 앞차 뒷유리창에 붙은 스티커 문구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주로 초보운전자 또는 아기·임신부가 타고 있다고 알리는 내용이다. ‘초보운전’ ‘아기가 타고 있어요’가 대표적이지만, 요즘엔 다른 표현도 늘었다. 인터넷 쇼핑몰에는 위트 넘치는 차량 스티커들이 용도별·차종별로 많이 나와 있다. ‘어제 면허 땄어요’ ‘당황하면 후진’ ‘꽃초보. 추월하면 500원’ ‘오대 독자. 안전하게 대(代) 좀 이읍시다’ ‘이 이상 빨라지지 않아요’ 등은 애교가 있다. 웃음을 머금게 한다.

 그러나 ‘조금 무서운 형들이 타고 있어요’ ‘개초보. 차주 성격 있음’ ‘오가는 경적 속에 꽃피는 주먹다짐’ 같은 건 좀 심하다. 최근 몇 차례 마주친 ‘저도 제가 무서워요’도 마찬가지. 애교를 넘어 위하(威<5687>)를 준다. 스스로 조심할 일이지 뒤차에 대고 겁까지 주다니. 게다가 존댓말을 쓰니 왠지 더 으스스하다.

 자동차는 일종의 흉기다. 우리나라 운전면허 소지자는 2826만3000여 명. 덩달아 교통법규 위반 건수도 천문학적이다. 지난해 1138만7088명(건)의 운전자가 형사입건·즉심·범칙금 처벌을 받았다. 일등공신은 속도측정 카메라 등 무인단속기. 965만3741명이 여기에 걸려들었다. 이 중 범칙금 스티커를 통고받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3만원, 운전 중 휴대전화를 쓰면 6만원(승용차) 또는 7만원(승합차)이다. 속도 위반도 대상이다. 규정 속도보다 시속 60㎞를 더 냈다면 12만원(승용차), 13만원(승합차)씩 내야 한다.

 비록 잘못은 했지만 생돈 내는 입장에선 당연히 아깝다. 얼마 전 정부 관계부처 회의에서 교통범칙금 인상 아이디어가 제기됐다가 반발이 일자 없던 일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어제 안전행정부에 물어보니 “회의에서 경찰 측 참석자가 인상 얘기를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청 측은 “발언한 적도, 인상을 검토한 적도 없다”는 해명이다. 정부로선 세수(稅收) 부족을 범칙금 따위로 벌충하느냐는 비판이 껄끄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위반도 위반 나름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교통법규 위반은 범칙금을 대폭 올려야 마땅하다고 본다. 안전띠 미착용이 18년 동안 3만원에 묶여 있다지만, 사고 나서 다치는 건 어디까지나 자기 소관이다. 휴대전화는 다르다. 남을 다치거나 죽게 할 수 있으니 대폭 올려야 마땅하다. 경제학자들은 ‘외부 비용’ 개념을 사용해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이 혈중 알코올 농도 0.1% 상태로 운전하는 것과 같으므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경제학 스케치』, 김영욱 저). 자기 책임 원칙을 적용할 곳이 교통범칙금뿐일까. 자기만 생각해 남의 행복을 깎아먹는 행태는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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